스타트업? 게임 한 판 하고 갈래?
개발자로 전향한 이후로 보통 문과생이 쉽게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고, 특히 브런치에 개발 관련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연락을 받았다. 상해에 오기 전에는 이메일로 정성스럽게 자기소개와 개발에 관한 관심 혹은 열의를 보여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내가 다녔던 학원이나 공부법을 소개해주기도 했고, 지인들을 통해 연락이 오면 답변을 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내가 개발자로 만든 사람이 10명 정도가 되는 것 같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뭐하고 살고 있는지 연락해보면 좋을 거 같다. 그중에는 지금은 로켓(성공한 스타트업을 이르는 말)이 되어버린 스타트업에 들어간 사람도 있고, 프리랜싱을 하게 된 사람도 있고, 혹은 자기 사업을 하게 된 사람들도 있다. 그렇게 개발자로 만든 가까운 지인 한 분이 로켓에 다니고 계셔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꾸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한다. 이 회사는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그런 회사가 되었고, 시장에서 1위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는데 회사가 커지면서 점점 대기업 놀이를 하고 싶어 하더란다. 누구나 부러워할 대기업에 다니다 그 권위주의적인 기업문화가 싫어서 나왔는데, 스타트업이 다시 대기업 흉내를 내기 시작하니 더 못 다니겠단다. 그 회사에 다니던 초기 멤버 중에는 받은 주식으로 강남에 집도 한 채, 차도 한 대 살 수 있게 돈을 벌었다고 하니 몇 년의 투자치곤 나쁘지 않은 듯하지만, 그런데 묻고 싶다 너님들 돈 잘 벌고 있나요?
너님들 돈 잘 벌고 있나요?
친한 형이 한 명 있다. 대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동아리 선배인데, 동아리 더 윗 기수 선배가 운영하는 여행 관련 스타트업에 일을 했었다. 회사가 기로에 서있던 무렵 투자 건 하나가 있어서 죽을 힘을 다해 매달렸는데 결국 투자받지 못했고, 직원들은 다 흩어졌다고 한다. 그 형은 그 투자를 평가한 사람이 누군데 이 서비스 하나의 목숨을 쥐고 있는지 너무 궁금했고, 그 사람의 직업이 '회계사'라는 것을 보고는 공부를 해서 회계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학창 시절의 울분(?)을 담아 커다란 외국계 회계법인에서 국내 스타트업 투자 관련 업무를 도맡아서 진행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회계사를 그만두시고, '나를 찾는 시간'을 갖고 계신데 워낙 재미있게 사시는 형이라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가 된다.
아무튼 이 형에 따르면, 투자자는 결국 본인의 돈으로 투자를 하는 게 아니라(물론 소액 투자의 경우 개인이 직접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정부 혹은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아서 그 돈을 굴리는 사람이다. 그럼 정부나 기업은 왜 이 투자자에게 돈을 주는가? 결국 돈을 줄 테니 스타트업에게 투자해서 돈을 벌어오라는 이야기다. 다만 이 사람들이 참여하는 '투자판'이 다소 안정적인 채권이나 부동산, 혹은 조금 더 위험한 자산으로 분류되는 주식이나 금융상품이 아니라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스타트업인 것이다. 스타트업에게 투자자는 태산 같은 존재이지만 이 투자자의 삶도 결코 쉽지 만은 않은 것이라서, 자기 앞으로 돈을 끌어오려면 영업도 잘해야 되고, 스타트업 붐이 일면서 정부 돈이 풀리면서 투자자로 전향한 경우가 많아 이 분야 관련 전문성이 없는 경우도 많아서 다른 경험 많은 투자자 혹은 투자사 눈치도 봐가면서 "끼워달라"라고 이야기도 하고, 좋은 투자처를 찾느라 고생하시는 분들 되시겠다. 그래서 투자자들 사이에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돈 주기 불안한 놈은 돈 달라고 하고, 돈 주고 싶은 놈은 받기 싫다고 한다." 무슨 소리인가 하니, 스타트업도 양극화가 심해서 될 법한 스타트업에 서로 돈 주고 싶어서 난리인데 아예 투자를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수익 구조가 탄탄한 경우에는 투자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경우가 많고, 투자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어지간한 투자자는 잘 끼워주지 않는단다.
나는 기본적으로 스타트업 투자를 주식시장처럼 시장 경제가 허락한 '합법적 투기판'이라고 본다. 물론 주식회사가 자본을 조달하기 위한 주식시장의 순기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초기 자본이 필요한 기술형 스타트업의 자본 조달을 위한 투자의 순기능 역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하나 알아야 할 점은 스타트업은 '미래가치'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여 투자를 받는다는 사실이다. 미래 가치가 무엇이냐면, 지금은 돈을 그만큼(혹은 전혀) 벌고 있지 못하지만 미래에 그 정도의 가치를 돌려줄 것이라고 측정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아무것도 없는 회사(사실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고 상대적으로 높은 트래픽과 낮은 수익)가 투자를 받음과 동시에 '벨류에이션'이라는 이름으로 가치가 수직 상승하게 된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예를 들어, 한 달에 방문자가 10만 명이 있는 서비스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매출은 0원이다. 그리고 직원이며, 마케팅 비용이며, 사무실 비용이고 어쩌고 저쩌고 해서 쓰고 있는 돈이 한 달에 수 천 만원이다. 그런데 투자자가 와서 이 회사를 검토하고 말한다. "회사 가치를 10억으로 잡고, 20%인 2억을 투자하겠다." 투자를 받고, 회사는 10억 짜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 2억 원을 가지고 한 달 방문자를 100만 명으로 만들어라는 미션이 주어진다. 그리고 1년 후에 한 달 방문자가 100만 명이 되면, 다시 다른 투자자에 찾아가서 "회사 가치를 200억으로 잡고, 20%인 40억을 투자해 주시오"라고 이야기한다. 투자를 받았다. 회사는 200억짜리가 되었다.여전히 이 회사의 매출은 0원이다.
재밌는 점은 지금 실리콘밸리의 거물이 되어버린 많은 기업들이 이렇게 컸다는 사실이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이 이런 성공 사례가 되면서 많은 이들이 이와 비슷한 한 편의 드라마를 쓰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나는 이것이 상대적으로 새로운 기술이나 트렌드에 둔감하거나 혹은 본인들이 직접 참여하기엔 껄끄러운 분야에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과 '젊음'을 동원해 사업을 시작하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서 빠르게 시세 차익을 실현하는 새로운 자본의 놀이터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이 무조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여기서 질문해야 할 점은 과연 투자를 받은 기업들이 그 정도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거나 혹은 앞으로 만들어낼 것이냐는 점이다?
아직도 Angelist(링크) 같은 사이트를 들어가 보면, 제2의 페이스북이 되고 싶은 기업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예전에는 트래픽이 많다는 것만으로 쉽게 투자를 받을 수 있었지만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처음에는 트래픽이 조금만 많아도 눈에 확 들어왔지만, 이제는 어지간한 숫자로는 쳐다봐주지도 않는다. 기준이 점점 상향 평준화되면서 투자받기는 점점 어려워졌다.
그리고 많은 사업자가 서비스에 뛰어들면서 기존의 산업 중에 스타트업이 들어가지 않은 곳을 찾기 힘들 정도다. 물론 그 안에서 지배적인 기업이 있느냐 아직 군웅할거의 시대이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신규 사업자는 기존의 시장에서 성과를 내려면 더 좁은 시장을 타깃으로 시장에 진입해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경우에 문제는 예상 가능한 수익이 급격히 낮아진다는 것이다. 더 좁은 시장을 타깃으로 잡기 때문에, 예상 수익, 즉, 미래 가치는 하락하고 더 좋은 투자는 받기 힘들어진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는 막대한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유니콘이라고도 부른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휘청휘청하고 있는 에버노트가 그 대표적인 예인데, 돈만 얹으면 돈방석에 앉을 것 같았던 옛날과는 다르게 투자자도 훨씬 심혈을 기울여서 서비스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한 마디로, 투자받기 어려워졌다는 거다.
그러면 "스타트업하지 말라는 이야기냐?"라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그런 말은 당연히 아니다. 여전히 투자자는 좋은 스타트업을 찾고 있다.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더 열정적으로 찾고 있다. 다만 지금 대표적인 한국 스타트업이 들어가 있는 분야(외식 배달, 부동산 중개, 차량 공유 등)는 이미 어느 정도 시장이 안정화되었고, 아직도 한참 전쟁 중인 분야(자동차 수리, 주차장, 이커머스 등)도 아직 지배적인 사업자는 없지만 소리 없이 피 튀기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제는 다들 요령이 생겨서 돈 한 두 푼으로는 시장을 제대로 가져가기는 힘들기도 하다. 그래도 제2의 배달의 민족, 직방, 쏘카라고 생각된다면 투자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겠지.
그런데 또 하나 생각해야 할 점은 투자를 받았다고 성공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투자를 크게 받고 외제차를 끌고 다니다 욕먹은 기업이 있다. 그리고 투자를 좀 받고 나면 대기업이라도 된 마냥 중간 관리자들 앉혀놓고 시스템으로 다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혹은 겨우 몇 억 투자받은 후로 새로 들어오는 직원을 차별 대우하기도 한다. 실제로 만났던 한 대표님은 큰 투자를 받은 직후에 "우리 회사도 마케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돈으로 성공한 걸 보여주고 싶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수익 구조가 취약한 기존 스타트업의 구조상 투자받은 돈으로 규모를 늘리지 못하면, 즉 트래픽을 늘이지 못하면 망한다. 무슨 소리인가 하니, 트래픽이 늘지 않으면 이미 미래 가치를 기반으로 투자를 받았는데 미래 가치에 도달할 가망이 보이지 않으니 추가 투자를 받기가 힘들어진다. 그러면 기업 가치가 하락하게 되는데, 기존의 투자자는 벨류에이션을 떨어트리면서까지 후속 투자를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러다 서비스 체질 개선에 실패하면 기업 공개 전이라면 몇 년의 공이 종이조각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돈이 마르면 기업은 죽는다.
처음부터 돈 버는 서비스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돈을 받는 서비스는 초기에 급격히 확장하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조금은 기다리면서 착실히 돈이 들어오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당장 오늘 방문자를 10만 명 만드는 것보다, 이번 달 매출 1,000만 원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여전히 페이스북과 같은 기회도 열려있다. 대신 앞으로 그 문은 더 좁을 것이다. 나는 기존의 대기업이 지금까지 걸어온 방식을 제1의 길, 그리고 초기 스타트업이 걸어온 길을 제2의 길이라고 불러본다. 그리고 제3의 길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이 글을 열었다. 화려한 겉모습보다는 실속을 챙겨보는 게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