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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Dec 05. 2016

탄핵, 그 역사의 현장에서

대한민국이 만들어가는 민주주의

지난 12월 3일은 우리 부부와 양가 가족 모두에게 매우 뜻깊은 날이었다. 바로 처제의 결혼식이 있는 날. 그래서 우리는 그 전 날인 12월 2일 저녁에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저녁에 다 같이 모여 결혼식을 축하하고, 그다음 날 있을 결혼식을 위해 다 함께 잠들었다. 아침 일찍부터 정신없이 진행되는 결혼식 준비와 12시 결혼식이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진행되었고, 그렇게 또다시 우리 처가댁에 식구가 한 사람 늘었다. 하지만 전날의 비행,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결혼식 준비, 정신없었던 결혼식이 끝나고 가족과 다 함께 모여 여유 있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없었던 까닭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 즉각 퇴진을 위한 집회에 참여해야 했기 때문이다. 


보통은 외국 생활을 하다 보면 한국 내 정치나 경제 상황에는 조금 무뎌지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워낙 주위에 중국인들이 한국 정치를 걱정하며 이야기를 전해와서 도저히 한국 정치 상황에 무뎌질 틈이 없었고, 그리고 그 사안의 중요성 때문에 도저히 관심을 거둘 수가 없었다. 기술 발전 덕분에 상해에서도 팟캐스트로 매일 JTBC 뉴스룸을 들어가며 흘러가는 정국에 귀를 기울였고,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 속에서 결혼식 후에 꼭 광화문 광장으로 향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이 비선실세 파문에 대한 국민의 마음을 떠보는 정치권의 자세였다. "촛불은 가만히 두면 꺼진다."는 그들의 희망이자 신념을 앞세워, 박근혜 대통령은 퇴진은커녕 정치권의 혼란을 야기하고자 자신의 '진퇴'를 국회에 맡긴다고 공을 넘겼다. 공이 국회로 넘어오자, 새누리당 친박계(친 박근혜계 의원들)는 이것이 그들이 살 유일한 길이라며 개헌 후 4월 하야, 6월 대통령 선거를 주장했다. 비박계는 처음에는 즉각 탄핵을 주장하다가 역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있은 후 친박계와 이해를 함께하기로 노선을 변경했다. 그것이 그들이 후일(대선)을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야 3당 중 국민의당은 캐스팅보트로서 향후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속셈으로 2일 탄핵에 반대하고 9일 탄핵을 주장하였다. 이 상황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정말 국회는 국민을 "개돼지"로 알고 있구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광장으로 향하기로 결심했다.



전날 한국에 도착해서 결혼식을 마치고 집회에 바로 참여하는터라 교통을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숙지하지 못했고, 바보 같이 버스를 타고 광화문으로 향했는데 광화문 근처에 도착할 거라 예상했던 버스는 무려 충정로역에서 서울역으로 빠지더니 회현역 명동역을 거쳐서 왼쪽 위의 지도에 보이는 저 외딴곳에 날 떨어트려 놓았다. 확인해보니 이 안으로 버스는 들어오지 않고, 광화문 광장 쪽으로는 지하철로으로만 이동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저기서 지하철을 타고 다시 이동하느니 바로 이동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걷기 시작했다. 



갑자기 길 위에 인적이 줄어들고 통제하는 사람들이 있길래 무슨 일인가 했는데 도로 위를 행진하는 시위대가 있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박근혜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해서 그 사람들을 따라가 봤는데, 글쎄 이 날의 시위를 "정권쟁취를 위한 국가 혼란 조장 행위"라고 묘사하는 사람들의 행진이었다. 사복 경찰들이 시위대가 아닌 사람들을 인도 위로 올려 보냈는데 아마 분노한 시민들과 위험한 대치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했나 보다. 새누리당이 그리고 보수언론이 툭하면 좌빨(좌파 빨갱이)라고 평범한 시민들의 입을 막아버리는 사회지만, 그리고 당신들의 뜻을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당신들 역시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당신들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 그 자체를 존중한다. 부디 당신들이 이 탄핵 정국의 소수자로서 누릴 수 있었던 표현의 자유를 다수가 되었을 때도 잊지 않기를. 



점점 광장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 추운 겨울날, 가족과 혹은 친구와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던 토요일 사람들은 가족과 친구의 손을 잡고 광장으로 향했다. 뒤에서 도란도란 들려오는 자식에게는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는 한 부부의 이야기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광장에 가까워지자 사람들은 훨씬 더 많아졌고, 간혹 통제하고 있던 넓은 도로 위에서는 통행을 위해서 다 함께 길을 기다렸다가 건너기도 했다.



마침내 도착한 광장에 모여있던 수백만명의 사람들. 이날 광화문 광장에만 170만 명, 전국에는 230만 명의 시민들이 박근혜의 즉각 퇴진을 위해 광장에 모였다고 한다. 이 광장에 도착해서 질서 정연하게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들을 보자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다들 먹고살기에 바빠서 그동안 신경을 쓰지 못했을 뿐이지, 좋은 세상, 정의로운 세상, 자식에게 물려주기에 아깝지 않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다들 이 자리에 모여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다 함께 소리 내어 외쳤다. 정치인들은 더 이상 자신의 이익을 위한 계산에 몰두하지 말고, 한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박근혜 대통령을 당장 저 자리에서 끌어내려라. 우리가 원하는 것은 개헌도 여야 합의도 아닌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적인 탄핵이고 퇴진이다. 그녀가 자랑스럽게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자리에서 내려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버지"가 세운 나라가 위험에 빠지는 걸 볼 수 없어 정치를 시작했다'는 그녀가 가장 치욕스러운 대통령으로 기록되기를 원한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역대 최대 인원이 광장에 모인 그 주말이 지난 후,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은 자신들은 적극 탄핵을 찬성한다며 다시 한번 말을 바꿨다. 한 사람이 무엇을 바꿀 수 있겠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 말은 맞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바꾸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누군가는 그것이 잊히기를 원한다. 하지만 시민들이 행동으로 진정 원하는 것을 보여준다면 국회의원은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4년 혹은 5년마다 한 번 참정권을 행사하는 국민이 휘두를 수 있는 유일한 칼이다. 


아직 9일에 탄핵안이 가결되기 전까지 아무도 결과는 모른다. 분명히 청와대와 새누리당, 그리고 보수언론(특히 조선일보)은 그다음 판을 꾸미고 있을 거다. 그들의 탐욕에는 끝이 없다. 나는 이 박근혜 탄핵안 처리가 끝나고 나면, 국민이 직접 투표로 국회의원을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국민소환제 발의를 제한해볼 참이다. 민주주의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담아낸다. 물론 국민 모두가 정치에 참여할 만큼 충분히 현명하지 못하다고 주장하는 엘리트주의자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아름다운 점은 "잘못된 선택"을 할지도 모르지만 그 잘못을 국민이 원할 때 수정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래서 나는 존경하는 대한민국 시민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다. 부디 박근혜 대통령이 9일 탄핵안이 통과되고, 헌법 재판소가 위헌 판결을 내릴 때까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이다. 저런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올라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더욱 참을 수 없이 부끄러운 일은 저 사람이 저 자리에서 대통령으로서 내려오는 일이다. 잘못된 것을 고쳐나가는 것, 그것이 진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 자식 세대에게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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