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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Jan 18. 2017

오늘은 무슨 일을 안 해볼까?

효과적으로 일하는 방법

개발자로 경력을 전환한 이후로는 효율성 덕후로 살았다. 개발자라는 직업이 외부에서 보기에는 그 작업 내용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결과물을 빨리 만들어내는 개발자가 좋은 개발자라고 생각하는 이상한 문화 혹은 무지가 존재한다. 사실 'A4 용지 10장 분량의 좋은 글을 쓰라'라고 요구해놓고, 3시간 안에 쓰라고 단서를 다는 거랑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공을 들여도 내가 공들여서 써놓은 걸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니 아무 말이나 가져다 놓기가 쉽다. 동료 개발자가 봐주라고 하면 되지 않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옆에 앉은 개발자도 똑같이 바쁘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돌봐줄 여력 같은 건 없다. 시간이 모자라서 일이나 떠넘기지 않으면 다행이지.


개발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 데드라인을 정해주는 탑다운(Top-Down) 방식의 회사에서 살아남으려다 보니 자연스레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내 결과물에 대해서 만큼은 최대한 높은 품질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면서. 한창 온라인으로 직장인 대상 코딩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데, 타자가 빨라서 따라 치기 힘들다는 피드백을 듣고 있다. 다행히 온라인 강의라 다시 보거나 느리게 재생하면 돼서 큰 문제는 되진 않지만, 이게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기 위해 자주 쓰는 단축키를 다 익혀버리고 마우스에 거의 손을 대지 않으면서 생긴 결과다. 가끔은 생각보다 손이 빠를 때도 있는 거 같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


그 외에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많은 방법을 시도해봤다. 생산성을 극대화해보겠다며 뽀모도로(pomodoro) 기법을 회사에서도 적용해서, 25분 간 인터넷 브라우저 하나도 켜놓지 않고 일만 하다가 5분 간 쉬기도 오랫동안 했었다. 트렐로, 슬랙 등 효율성을 높여주는 툴이라면 써보지 않은 것도 없고, 피들리(feedly)라는 RSS 구독 프로그램에는 내가 사용하는 다양한 업무 효율성 관련 서비스의 블로그를 구독하며 효율성 증진을 시도했다. 매달 사용료 1만 원쯤 하는 Toggl이라는 서비스도 써봤고, 맥과 아이폰을 동시에 사용하는지라 Tyme2이라는 소프트웨어도 맥북과 아이폰용 모두 유료로 다운로드하여서 사용했다. 효율성에 대한 집착이 어느 정도였냐면, 무려 매주 내 수면 시간과 업무 전체 시간, 그리고 시간 대비 업무량을 줄줄 외울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이런 다양한 도구들은 개인적으로 생산성 향상을 가져다줬다. 그리고 효율성에 관한 많은 글을 읽으며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효율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스스로 정리해볼 수 있었다. 특히 이런 효율성에 대한 집착은 프리랜싱을 하면서 심해졌다. 실제로 개발 프리랜싱을 할 때 만약 1달짜리 프로젝트라고 하면 그 프로젝트의 개발에 관련된 세부 항목을 모두 적고, 그 세부 항목에 예상 소요 시간을 적는다. 만약 그 예상 소요 시간이 2시간을 넘어가면 실제 세부 항목이 충분히 구체적이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업무를 더 잘게 쪼개서 작업한다. 이런 식으로 프로젝트를 관리하면 거의 처음에 잡았던 업무량과 큰 차이가 나지 않고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프리랜싱은 결국 시간과의 싸움라서 내가 업무량과 예상 시간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 결국 시간을 낭비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목표에 '효과적'으로 도달하기 위해 불필요한 업무를 없애는 것이었다. 이렇게 스스로를 도구화하고 측정해서 아주 미세한 효율성도 개선하려고 노력하던 어느 날, 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렇게 일하는 것이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에 정말 도움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열심히 일한다고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나를 채찍질하고 있는 것인가?


정말 부끄럽게도 나는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 썼던 많은 툴들과 방법론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는 조금 더 나은 결과를 만들었을지 몰라도, 내가 원하는 삶을 이루기 위해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결론에 도달했을 즈음 만났던 워렌 버핏의 일화는 다음과 같다.


워렌 버핏의 전용기 조종사가 워렌 버핏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까?"
워렌 버핏은 그 조종사에게 이번 생에 이루고 싶은 것 25가지를 적어보라고 시켰다.
그리고 그가 다 적자, 거기서 더 중요한 5가지에 동그라미를 치라고 시켰다.
조종사가 어렵게 5가지를 고르고 동그라미를 치고 말했다.
"나머지 20가지도 정말 중요한 건데, 틈틈이 이루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자 워렌 버핏이 말했다.
"아니요. 당신이 5가지를 다 이루기 전에는 나머지는 눈길도 주지 마세요."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더 많은 일을 빨리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는 일(굉장히 급해 보이지만 사실은 하지 않아도 전혀 무관한)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20시간짜리 일을 효율적으로 15시간에 하는 것보다, 꼭 필요한 3시간짜리 일로 만드는 게 효과도 좋고 정신 건강에도 좋다. 그래서 요즘은 매일 아침 해야 할 일을 적으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중에 꼭 해야 되는 일이 뭐지?
안 해도 되는 건 어떤 일이지?


또 다른 방법은 업무가 있을 때 그걸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다. <The 1-Page Marketing Plan>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학교에서 우리는 독립적일 것을 요구받는다. 우리는 다음 레벨로 넘어가기 위해서, 수학, 과학, 영어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만약에 몇몇의 친구들과 각각의 재능을 교환한다고 생각해보자. 수학을 잘하는 한 친구는 수학 시험을 모두 대신 봐준다. 과학을 잘하는 친구는 과학 시험을 모두 봐준다. 그리고 영어를 잘하는 당신은 영어 시험을 봐주면 되고. 물론 학교에서 이런 형태의 '분업'은 커닝으로 치부될 테고 퇴학당하기 좋겠지. 그런데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하나의 목표(역주: 학교에서는 성적)를 위한 이런 분업이 성공을 위한 길이다. 비즈니스는 팀으로 하는 스포츠다.


자, 이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감이 오는가? 우리는 현재 산업 구조와 어울리지 않는 학교 생활의 영향으로 '나에게 주어진 일은 내가 해결하는 습관'에 길들여져 있다. 그래서 내가 하면 3시간이 걸릴 일을 내 동료가 대신해주면 20분밖에 걸리지 않는데, 굳이 그걸 붙잡고 끙끙대고 시간을 쏟는다. 심지어 한국의 조직 문화는 어떤가? 이미 1~2년 해본 업무를 연차가 찼다는 이후로 후배에게 넘긴다. 그럼 그 후배는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느라 시간을 쏟아야 되고, 그 선배도 새로운 업무를 배우며 기존 업무를 가르치느라 더 힘들어진다.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면, 디자이너가 아니라면 직접 디자인하지 마라. 개발자가 아니라면 직접 개발하지 마라. 외국어가 유창하지 않다면 직접 번역하지 마라. 그 시간에 돈을 주고 나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의 용역을 구매하는 게 내 정신 건강에 이롭다. 이게 고등학교 경제 시간에 배운 무역이 모두에게 이롭다고 주장하는 그 유명한 '상대 우위' 이론이 아닌가. 물론 새로운 걸 배우는 그 열정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새로운 걸 배우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최근에는 동영상 편집을 배우고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지금 당장 필요한 동영상 편집을 내가 해서는 안된다. 합당한 금액을 지불하고 전문가에게 맡겨라. 물론 취미가 직업이 되는 경우도 많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거다.


더 적극적으로 '일'을 하지 마라. 많은 사람들(특히 상사들)의 착각이 더 많은 시간 책상에 앉아 있으면 아이디어가 쏟아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틀렸다. 다시 한번 말한다. 다른 게 아니다, 틀렸다. 만약 프로젝트에 애정이 있고, 그 프로젝트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할 수 있다면 그 프로젝트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대게 하루 안에 처리하기 힘든 일을 줘놓고, 그 일도 하고 아이디어도 내라고 하니 그게 미칠 노릇 아닌가.


아웃풋(output)이라는 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충분한 여유와 자료 수집 같은 좋은 인풋(input)이 있으면 자연스레 나오는 건데. 옛날에 배운 방식 그대로 '사람들을 쪼면 결과가 나온다'며 시간은 안 주고 밀어붙이기만 하니 좋은 결과가 나올 리가 있나. 보고서 10~20장은 사람을 쥐어짜서 나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놀라울 정도의 혁신은 쥐어짠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일은 많이 한다고 잘하는 게 아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상사한테 그렇게 말했다가 한 소리 들을 거라고? 그 회사라는 '일'도 한 번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내가 정말 내가 그리는 삶을 향해 살게 도움이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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