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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Dec 14. 2016

만들기 전에 팔아라

21세기 창업법

사업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누군가의 머리에는 검은색 정장에 파란색 넥타이를 맨 단정한 세일즈맨이 사무용 가방을 오른손에 잡고 힘차게 걷는 얼굴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또 다른 누군가에겐 커다란 공장 단지에 포장된 수많은 상품들이 산업용 트럭에 옮겨지고 있는 모습이 그려질지도 모른다. 혹은 삼성, 현대, LG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가의 후계자들이 사무실에서 보고 받는 모습이 생각날지도 모르겠다.


나는 대학교 때 역사학을 전공했는데, 다른 전공 수업을 듣는 걸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왠지 나중에 밥 벌어먹고 살려면 필요할 거 같아서 경영학 수업을 많이 들었다. 학교 다닐 땐 교내 창업 동아리와 서울 지역 연합 창업 동아리 활동을 해서 사업가 분들께 연락해서 연사로 초빙하는 일 등을 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이 '내가 대학교에서 배우는 "경영"은 분명히 사업을 영위하는 행위일 텐데 왜 사업을 세우는 행위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는가?'였다. 예를 들어,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배운다면 당연히 탄생에서 사망에 이르는 생명 주기에 대해서 배울 텐데, 경영학은 마치 한 회사가 아주 작은 신생아 시절이 없던 것처럼, 그리고 한 회사가 끝나지 않을 것처럼 어떻게 경영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쳤다.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은 한국에서의 경영학이란 사업을 일으키기 위한, 즉 사업(혹은 창업)을 위한 경영이 아니라 이미 거대하게 돌아가고 있는 회사의 운영을 위한 기법을 배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면 우선 서비스부터 만들고 본다. 4년 간 학교에서 듣고 배운 건 이미 운영하는 "서비스나 상품이 있다"라는 전제에서 시작을 하다 보니, 무엇인가 실체가 없으면 무엇을 해야 할지 감조차 잘 오지 않는다. 그래서 부모님께 돈을 빌려서든, 아르바이트해가며 모은 돈을 깨 서든, 정부에 지원을 받아서든 자본금을 출자하고 제품 혹은 서비스를 만든다. 요즘은 대부분 창업이라고 하면 IT 쪽을 생각하니 이쪽으로 한정 지어서 말해보자면, 간단하게 말해 앱이나 웹 사이트를 만든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들은 앱 하나 쉽게 만드는 줄 알지만 전혀 저렴하지 않다. 정말 별 거 같아 보이는 앱 하나 만들려면 못해도 천 만원은 줘야 된다. 앱 만드는 과정이 전혀 쉽지 않다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어렵사리 앱을 만들어놨는데 시장은 관심이 없다. 


"사업은 원래 버티는 것이다"라는 스타트업의 오래된 격언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버티고 또 버티다, 자본금을 다 까먹으면(자본잠식) 서비스를 접는다. 원래 성공하는 서비스 비율이 10% 밖에 안된다거나 실패하면서 배운다는 말을 많이 하지만, 실패를 안 하고 성공하면 더 좋을 테고 원래 성공에서 더 많은 걸 배운다. 요즘 정부에서 최대 5천 만원까지도 창업 지원금을 제공하는 걸로 아는데, 시장성은 있는지,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알릴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거기서 3천 만원이나 서비스 개발에 들이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정부는 그 5천 만원을 개발사에 다 주라고 준 돈이 아니라, 서비스를 궤도에 올려서 사람을 채용하고 실업률을 낮추라고 준 것일 텐데. 



미리 검증해라


그럼 서비스도 없는데 나한테 어쩌라는 거냐고? 답은 간단하다. 서비스 기획 단계에서부터 테스트를 해보면 된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든다. 블로그를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를 내 서비스의 잠재 고객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로 채워보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관심 있고 가치가 있는 콘텐츠에 생각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아래의 며칠 전 번역해서 공유했던 콘텐츠는 약 3일 만에 조회수 만 오천 회, 공유수 천 회에 도달하였다. 미디엄을 읽다가 재미있는 글이 있어서 따로 담아뒀다가 번역했던 글인데, 사람들이 얼마나 퇴사 후의 삶에 관심이 많은지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콘텐츠를 구독하는 사람들에게 설문조사의 형태로 예상 고객의 다양한 요구를 미리 확인하고, 이메일을 요청해서 정기적으로 그 사람들이 관심 가질만한 정보를 보내주면 좋다. 단순히 고객으로만 대하거나 생각하지 말고, 나와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는 혹은 나와 비슷한 가치를 가진 사람들과 더 깊은 의사소통을 나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사람들은 당신과 취향이나 가치관을 공유하거나 혹은 당신의 취향을 동경한다는 이유로 앞으로 당신이 준비하는 서비스의 든든한 팬이자 지원군이 되어주기도 한다.



미리 팔아라


그런데 이것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팔아봐야 한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지 말라고 해놓고선 지금 와서 또 팔아보라니 무슨 말인가 싶을 수도 있다. 사업을 준비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일인데, 사람들에게 사업 아이디어를 들고 가서 피드백을 구하면 대체로 "응, 좋다"라는 등의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그걸 그 사람이 방금 좋다고 말한 행위와 실제로 구매로 이어질 것인지는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아예 천국과 지옥 수준으로 다르다고 생각하면 편하겠다. 사람들의 "좋다"라는 피드백을 믿어서는 안 된다. "지금 살래?"라고 물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이 진짜라는 이야기다.


 <The 4-Hour Workweek>(한국에서는 <4시간>으로 번역되었고 현재 절판)의 저자 티모시 페리스는 한 술 더 떠서 가짜 사이트를 만들어보라고 권한다. (워드프레스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면 2시간이면 간단한 테스트용 웹사이트를 하나 만들 수 있다.) 만약 휴대폰 케이스를 판다면, 휴대폰 케이스를 도매로 떼 오기 전에 인터넷 사이트에 실제 상품 정보를 넣어놓고, 사람들이 얼마나 가입을 하고 다시 얼마나 결제 페이지로 이동하는지 측정하라고 한다. 실제로 네이버 키워드 광고나 페이스북 광고를 통해서 가짜 사이트로 사람들을 유입시키고, 그중에서 몇 %가 가입하고, 다시 몇 %가 구매로 전환되는지를 확인하면 정확한 가격 구조를 예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원가가 5천 원인 3만 원짜리 휴대폰 케이스를 판매한다고 생각해보자. 페이스북 광고 기준으로 100명을 사이트로 유입시키는데 1만 원이 들었다고 하자. 한 사람 당 CPC(Cost per click)는 100원쯤 되는 셈이다. 사이트로 유입된 100명 중 가입을 한 사람은 5명, 그리고 실제 구매로 이어진 사람은 2명이라고 하자. 그럼 이 과정에서 한 사람을 구매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 든 마케팅 비용은 5천 원이다.(1만 원에 2명 구매 전환) 그렇다면 원가가 5천 원이고 여기에 마케팅 비용을 더하면 비용은 1만 원이 된다. 즉, 이윤은 2만 원이 된다는 말이다. 배송비를 포함하더라도 해볼 만한 장사가 된다. 이렇게 정확한 테스트를 통해서 검증이 되면 이제 실행에 옮기면 된다. 


가짜 사이트를 만드는 게 어려워 보인다면, B2C라면 블로그 마켓을 열어보고, B2B라면 제안서를 만들어서 예상 고객 업체에 이메일을 뿌리고 영업 전화를 먼저 걸어봐라. 그러면 사람들이 당신의 아이템이 뭐라고 느끼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무엇을 팔 것인가?


처음에 사업을 시작할 때 무엇을 아이템으로 선정할지 난감한 경우가 많다. 나는 개인적으로 자신이 잘 아는 분야를 정하라고 추천하고 싶다. 신발 덕후라면 신발을, 우산 덕후라면 우산을 말이다. 물론 숙달된 마케터라면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분야라도 빠르게 공부하고 마케팅을 집행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주요 타깃이 아닌 시장의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디에 모이는지를 알지 못한다. 사업이 처음이라 가뜩이나 고민할 게 많은데 아이템과 예상 고객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면 딱 망하기 좋다.



만약에 실제로 존재하는 상품을 팔아보고 싶다면 타오바오를 뒤져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시중에 타오바오를 설명한 책들이 많이 나와있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제외하고, 간단하게 말하면 중국 내 제조업자들이 한 공간에 모여있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대량으로 물건을 받아올 경우 굉장히 싼 가격에 물건을 사 올 수 있는데, 앞서 예시를 들었던 휴대폰 케이스 같은 건 개당 몇 십원에서 몇 백 원이면 물건을 받아올 수 있다. 실제로 저런 휴대폰 관련 액세서리나 여성 액세서리 등을 타오바오에서 직구 해서 고수익을 벌어들이는 사람들이 주위에 꽤 많이 있다.

 


콘텐츠도 좋은 상품이 될 수 있다. 요즘은 웹툰도 소설도 유료화 되는 시대다. 유튜브도 유튜브 레드라고 해서 유료로 구독하는 채널을 본격적으로 서비스화하고 있다. 예전에는 노래는 당연히 인터넷에서 공짜로 다운로드하여서 듣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요즘은 다들 스트리밍 서비스를 매달 구독해서 이용하지 공짜로 다운로드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나 역시도 아웃스탠딩이라는 IT 전문 미디어에 매달 만 원씩 돈을 내고 구독하고 있고, 맥을 쓰면서 대부분의 앱은 유료로 구매해서 쓴다. 중국에서 책 읽어볼 땐 아마존에 들어가서 전자책을 사서 본다. 콘텐츠는 초기 콘텐츠 제작 비용을 제외하면, 거의 판매에 대부분이 수익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관심을 가져볼 좋은 분야라고 생각한다.



제품을 보는 눈도 없고, 콘텐츠를 생산할 능력도 없다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방대한 정보를 한 주제로 잘 모아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케터나 디자이너에게는 예쁜 폰트를 찾아다니는 것이 일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한 곳에 모아서 광고를 붙이거나, 혹은 유료 앱으로 만들어서 판매를 하는 형태를 통해서 수익을 벌어들이기도 한다. 또 최근 한창 기업 문화로 이야기가 많은 배달의 민족도 사실은 하나의 정보를 잘 모아둔 서비스이다. 사람들이 기존에 전단지를 쌓아두고 야식을 먹기 위해 영업하는 식당을 찾아 전화를 돌렸다면, 배달의 민족은 주문 실패 확률을 0%로 낮춰주는데 기여를 하지 않았나? 


퇴사 이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퇴사하고 퇴직금으로 사업을 해보고 싶은데 실패하면 어쩌나 걱정도 많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 실패하지 않으면 된다. 사실 퇴직 후 생활비는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사업의 사전 검증을 통해서 실패 확률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만 있다면 사실 겁낼 것은 그 무엇도 없다. 글을 다 읽고 내가 퇴사를 한다면 한 달에 얼마가 필요할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아이템이 있다면 시작해보는 거다. 사실 검증 작업은 퇴사 전에도 충분히 해볼 수 있는 일이다. 검증 작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져서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그럼 나와서 바로 돈을 벌면 된다. 도전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다. 오히려 도전하지 않는 지금이 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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