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르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최근 딥러닝을 공부하느라 뜻하지 않게 수학을 공부하고 있다. 유다시티라는 프로그래밍 전문 교육 플랫폼을 통해서 공부하고 있는데, 해당 강의 리뷰는 조만간 따로 업로드할 예정이다. 개발자로 일하는 친동생한테 이 강의를 들을 거라고 이야기했다가 관심을 보여서 같이 듣고 있는데, 같이 듣지 않았다면 크게 고생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면 딥러닝을 공부하기 위한 수학적 배경지식이 꽤나 깊었기 때문이다. 공대를 졸업한 동생 덕분에 내가 모르는 게 뭔지라도 물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로 나를 처음 접하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나는 역사학도 출신이고, 웹사이트, 아이폰 앱, 안드로이드 앱을 개발하는 4년 차 개발자다. 처음에 개발을 배우기 전에는 개발자라고 하면 엄청난 수학 공식과 알고리즘에 파묻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개발은 컴퓨터를 제어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논리력은 필요하지만, 사실 수학은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외국어에 훨씬 가깝다고 느껴질 만큼, 프로그래밍 언어를 먼저 익히고 그 프로그래밍 언어로 이뤄진 웹/앱 프레임워크를 공부하면 충분히 서비스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범위를 새롭게 확장하려는 딥러닝이라는 분야는 꽤 수학적 지식(미적분 등)이 필요한 분야였다. 그래서 칸 아카데미라는 사이트를 통해서 수학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유다시티 강의 자체도 절대로 적지 않은데, 부족한 수학까지 공부하려니 정말 죽을 맛인데, 그래도 인공지능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해서 인공지능 공부에 발판이 될 딥러닝 공부에 한참 몰두하고 있는 중이다.
수학은 학창 시절 나에게 개념을 배우고 공식을 외워서 문제를 푸는 굉장히 기계적인 과목이었다. 물론 좀 더 잘해보겠다며 개념에서 공식을 도출해내는 증명도 해보기도 하고 많은 문제를 풀어보기도 했지만, 결코 재미는 없었다. 다른 글에서도 밝혔지만 최종적으로 내가 문과를 선택했던 데는, 이과에 가서 수학을 잘할 수 없을 것다는 두려움도 컸다. 그런데 필요해서 수학을 배우기 시작하자, 수학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수학이 이전에는 시간은 걸리더라도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재미없는 과목이었다면, 필요해서 배우기 시작한 수학은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숫자로 옮겨내고, 그 숫자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이 사람에 관심을 갖는다는 점에서 인문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학교에 역사학을 전공했는데, 고등학교 다닐 때 역사 시험공부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온통 시험지에는 사람 이름에 구멍을 비워놓고 채워 넣으라든가, 사건을 날짜 순서대로 배치하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교 역사 수업은 정말 재밌다. 역사적 사건을 하나 놓고 기존의 역사적 판단이 참인지 묻는다거나, 대중이 주목받는 사회사나 문화사 수업은 정말 재미가 있었다. 대학교 다니는 4년 동안 단 한 번도 빈칸 채워 넣기 같은 시험은 본 적이 없다. 보통 시험에 들어가면 1~2시간 동안 내 생각을 써내려 오면 충분했다. 그리고 많은 교수님들이 책이나 노트를 들고 들어와도 된다고 말씀하시기도 했고. 그럼에도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 역사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말하면, 얼굴을 짧게 스치고 지나가는 '역사가 정말 싫었어요'라는 표정을 나는 수도 없이 봐왔다. 왜 사람들은 역사를 재밌게 배울 기회를 박탈당했을까?
이렇게 흥미로울 수 있는 공부가 왜 재미없는 것이 되었을까? 나는 그 원인을 주입식 교육과 입시제도에서 찾는다. 한국 교육을 조금 변호해보자면 물론 모르는 분야에 대한 배움은 중요하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모르는 것에 흥미나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사람이 재미있다, 혹은 관심이 있다고 말하는 많은 것들은 실상 익숙한 대상인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학교 교육이 비록 주입식 교육을 한다고 하더라도, 학생들에게 모르는 개념에 대한 노출의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봤을 때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지도 있다.
그런데 내가 하려는 말은 '더 좋은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도 한 곳에 가둬놓고 10시간 넘게 매일 그것만 하라고 하면 질린다. 그런데 학교 교육 더 나은 방법에 대한 별다른 고민 없이 수십 년 전의 교육 방식을 그대로 가져다가, 좁은 교실에 수 십 명의 학생을 앉혀다놓고 칠판에 쓰면 받아 적는 그런 수업을 하고 있다. 말만 들어도 질리고 하기 싫어지지 않는가?
내가 빠르게 배웠다고 생각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외국어고, 다른 하나는 프로그래밍 언어다. 다른 매거진에 글을 쓰고 있으니 관심이 있는 사람은 참고하면 좋겠다.
우선 외국어부터 이야기하면 공교육을 통해 영어를 공부했던 10여 년 가까운 생활 동안 나는 정말 외국어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들 다 지원하는 카투사도 토익 점수를 만들지 못해 지원서 한 번 써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제대하고 단 6개월 만에 완벽하지는 않지만 외국인 친구들과 충분히 사귀고 이야기할 수 있을 영어 실력을 갖출 수 있었고, 그때 얻은 자신감 덕분에 스페인 생활 9개월 만에 스페인 정부 공인 인증시험인 델레(DELE)의 C1 레벨에 합격할 수 있었다. 중국어도 상해에 살면서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중국어는 영어나 스페인어를 공부할 때 비해 성취도가 높지 않은데, 나는 그 이유를 '중국에서의 삶에서 중국어가 가장 중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찾는다. 제대 후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을 때, 난 '지금 영어를 못하면 앞으로 평생 외국에서 일하거나 살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것이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살 때도 '스페인에서 살면서 스페인어만큼은 얻어가겠다.'는 각오가 있었다. 그런데 중국어는 중국에 와서 중국어 없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생활에 어려움이 없을 정도만 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느껴진다. 그래서 영어를 공부하던 나와 스페인어를 공부하던 나, 그리고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나는 모두 다른 사람인데도 배우는 속도에 차이가 정말 많이 난다. 무엇인가를 배울 때 얼마나 동기 부여되어 있는가는 정말 많은 것을 바꾸어 놓는다.
그다음으로 프로그래밍 언어는 지금 되돌아 생각해보면 첫 회사에 입사한 이후에 정말 많이 배웠다. 물론 회사에서 실제로 돌아가는 코드를 통해서 배운 것도 많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출퇴근하면서, 그리고 퇴근 후 집에 와서 외국 강의와 자료를 찾아가며 공부했다. 내가 만들고 싶은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 공부했고, 그러다 보면 그렇게 배운 기술이 회사에 필요한 경우도 많았다. 나는 그때 '나 혼자서 내가 필요한 서비스를 혼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지만, 내가 공부하고 싶어서 만들었던 서비스가 포트폴리오가 되었고, 쉽게 이직의 기회도 주어졌다. 개발 분야가 워낙 방대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것이 나오기 때문에 막막할 때도 있었지만 모르는 부분을 채워나가는 느낌이 항상 좋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렇게 혼자서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개발자가 된다는 꿈이 가까워져 갔기 때문이다.
보통 성인이 되고 나면 사람들은 '학습'에 멀어진다. 나는 이것이 학창 시절 경험했던 학습을 통한 불쾌한 감정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사회적 변화가 크지 않았던 농경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간다. 그리고 이 변화의 속도는 앞으로 더 빨라질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3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더니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이 왔다고 하지 않나.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다양한 신기술을 빠르게 익히고, 그 기술들 사이에서 연관성을 빠르게 찾아서 접목 시키고 비지니스 기회를 찾아야 하는 시대다.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사람은 더 빨리 배워야 한다. 그런데 일방적이고 불쾌한 교육을 경험한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배우기가 두렵다. 여기서 기존 학교 교육의 문제가 드러나는데, 강제적인 교육은 자발성을 이끌어내기가 극도로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양한 분야가 서로 융합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시킨 것만 공부한' 수동적인 사람이 살아남기는 정말 힘들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방식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수십 년 전에 나온 이론을 수십 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방식으로 가르치는 건 미래가 없다. 그럼 어떻게 하냐고? 학교에서 배우는 교육과 학생의 실생활의 괴리를 줄여줘야 한다. 다시 말해, 학교 생활에서 배운 내용이 학생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딥러닝을 공부하면서 미분, 즉 '그래프의 특정 지점에서 기울기를 구하는 것'이 쓸데없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수학적으로 풀어내는데 꼭 필요한 지식이 되었던 것처럼. 이것을 위해서 개념을 배우고, 이후 문제 풀이를 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학생이 스스로 이 지식을 공부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말이다. 혹은 학생이 관심을 갖는 분야를 파고들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거나.
사람들은 내가 배워야 하는 것이 내 일상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을 때 흥미를 잃는다. 흥미를 느끼지 못한 학습은 시험지를 덮는 그 순간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지금까지 '무엇'을 가르칠지에만 관심을 가졌다면 이제 그건 뒤로 미뤄두자.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서도 최근에 말을 많이 하지만 이것도 잠시 미뤄두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왜 배우는지'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찾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사람은 배워야 하는 이유만 있으면 책이 없어도, 시간이 없어도 공부한다. 어떻게 효과적으로 가르칠지는 그 다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