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르코 Dec 31. 2017

똑똑한 나라 싱가폴

"우리나라 시민권을 사세요"

싱가폴에 이주한 지 3개월이 되었다. 처음에 싱가폴인 직장 동료들이 점심시간에 싱가폴 생활은 어떻냐고 종종 물어봤다. 처음에는 싱가폴 생활이 “길거리도 깨끗하고 사람들도 친절해서” 너무 좋다고 말했더니, 온 지 얼마 안돼서 그렇다며 그렇게 모든 면이 좋은 곳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 모든 면이 좋은 나라가 어디 있겠어?) 3개월이 지난 지금은 살기 좋은 나라라는 느낌은 변함이 없지만, 그와 동시에 굉장히 똑똑하게 정책을 운영하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싱가폴은 태어난 지 50년밖에 되지 않은 나라다. 1963년에 말레이시아 영토로 영국에서 독립했고, 1965년에는 대부분 중국계였던 싱가폴과 말레이시아의 마찰로 말레이시아에서 독립해서 싱가폴을 세웠다. 당연히 가진 것 없이 분리독립 한 싱가폴 경제는 처음에 쉽지 않았을 거다. 서울만 한 면적의 땅에 100만 명 정도의 인구로 할만한 게 무엇이 있었을까? 하지만 싱가폴은 2011년 기준 1인당 명목 국민소득이 5만 달러에 이르는 나라가 되었다.


외국인 비자 정책


무엇이 지금의 싱가폴을 만들었을까? 싱가폴의 경제 성장에 관심은 많지만 아직 자세하게는 알지 못한다. 다만 최근 싱가폴의 외국인 비자 정책을 보면서 한 단면을 살펴볼 수 있었다.


외국인으로 싱가폴에 살면서 처음 느낄 수 있는 점은 세율이 엄청나게 낮다는 점이다. 외국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체감되는 세율은 소득세일 텐데, 싱가폴에서는 연봉을 1억을 벌어도 실질 세율이 10%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최대 소득세율은 20%이다. 그리고 법인세는 17% (미국 35%, 한국 38%) 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면 많은 기업들이 우선 세금 감면의 효과를 얻기 위해 싱가폴로 넘어온다. 국민들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는 것도 싱가폴로 이주를 고려하는 기업에게는 큰 메리트가 된다. 좋은 예로 구글, 페이스북, 그랩, 링크드인, 애플, 유니레버, P&G 등 유명한 회사들의 HQ는 전부 싱가폴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인구 500만 명 밖에 되지 않는 싱가폴에서 많은 기업들의 인력 수요를 다 충족시켜 줄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렇게 이주한 회사들이 만들어내는 좋은 일자리와 낮은 소득세는 전 세계의 인재를 끌어들이는데 매우 훌륭한 장치가 된다.


재밌는 점은 이렇게 만들어진 좋은 일자리가 초기에는 고학력의 싱가폴인 소수와 다수의 외국인으로 채워져 있었는데, 이런 자리의 외국인 비자 발급 기준을 싱가폴 정부에서 조금씩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연봉 3000만 원인 포지션도 외국인으로 채울 수 있었다면, 비자 발급 기준을 4000만 원으로 올리면 자연스럽게 이 인원을 싱가폴인으로 채울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런 방식을 통해 자연스럽게 싱가폴의 실업률을 낮추게 되는 것이다. 


외국인 이민 정책


이렇게 비자를 받고 싱가폴에서 일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영주권에 눈이 간다. 영주권을 받으면 싱가폴에서 주택을 구매 세금 혜택, 자녀 교육비 감면 등 여러 곳에서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만들어 놨는데, 이런 장치들로 영주권 발급을 받도록 유도한다. 참고로 영주권을 받으면 5년 간 그 외에 아무런 비자 없이도 싱가폴에서 거주할 수 있다.  


싱가폴에 외국인 취업 비자는 WP, SP, EP가 있다. 이렇게 비자를 구분하는 데는 다양한 기준이 있지만 그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연봉이다. 대게 WP < SP < EP 순서로 연봉이 높은 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부분은 EP 비자를 발급받은 사람들에게만 선별적으로 영주권을 제공한다고 한다. WP 비자로 싱가폴에 들어와서 일을 했던 사람은 이후에 EP 발급이 거절되는 경우가 많단다. 한국 사람들은 영주권 발급 후 시민권 신청하는 비율이 낮아서, 영주권 심사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는 한다. 하지만 전반적인 비율을 높고 봤을 때 싱가폴에서 영주권/시민권을 제공하고 싶은 대상이 굉장히 명확해 보인다. 바로 싱가폴 사회에 즉각적으로 유의미한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이 싱가폴인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공무원에게 최고의 대우를


이런 싱가폴의 정책 뒤에는 어떻게 하면 싱가폴을 더 발전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싱가폴은 가장 똑똑한 사람이 공무원이 되는 나라다. 물론 한국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공무원 되기가 정말 많이 어려워졌다. 하지만 싱가폴에서는 ‘공무원’이라고 하면 똑똑하다는 인식과 함께 굉장히 고액 연봉을 받는다는 인식이 있다고 한다. 


이런 싱가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실 한국에서는 공무원이 하는 일이 너무나 저평가되어있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국가를 위해서 일한다는 명예 하나로 일을 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확실한 대우를 통해서 정말 똑똑한 정책을 만들어내는 것이 국가 발전에 더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공무원들이 정말 많은 돈을 받고 일한다면 누군가 찔러주는 한 두 푼에 나라의 미래를 팔지도 않을 거고.  

매거진의 이전글 안녕, 싱가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