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름에서 배운다
혹시 너무나 달라서 싸웠다는 이야기를 들으시려면 잘못 들어왔다. 다만 내가 확신이 있어서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흔들리는 눈동자를 여럿 보았기 때문에 지금껏 비슷한 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장인어른은 무역회사에서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장모님을 거기서 만나서 따라다니셨다고 한다. 장인어른은 당시 상사맨이 그랬던 것처럼 전 세계를 누비셨고, 부인이 태어났을 때도 남녀 성역할 같은 것은 구분하시지 않고 "오대양 육대주"를 넘나드는 뛰어난 인재가 되길 기원하셨다고 한다. 장인어른은 보통 딸 바보가 아니시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그걸 뛰어넘는 아내 바보가 되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다.
장모님은 배려와 신뢰가 몸에 베여 있으신 분이다. 당신 생각을 먼저 내세우시기 보다는 항상 당사자가 선택하는 것을 믿고 지지해주신다. 부모님의 무한한 신뢰는 자식을 슈퍼맨으로 만든다. 믿어주는 부모님이 있는 자식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가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성한 몸뚱이만 들고 장모님을 찾아뵈었을 때, "너라면 믿는다."라고 하셨다. 나는 아직 그 말을 잊을 수 없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부인을 원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하면서 사는 행복한 아이로 키우셨다. 부인이 하고 싶은 일에 빠졌을 때 나오는 집중력과 열의는 요즘처럼 어른이 시킨 것만 하면서 살아온 아이들에게서 찾아보긴 힘든 것이다.
아버지는 처음 다니기 시작한 회사에서 36년을 근속하셨다. 나는 한 달도 하기 힘들었던 대기업 생활을 400달을 넘게 가족을 위해서 다니셨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바로 취업을 하신 아버지는 어머니를 같은 곳에서 만나셨다. 어머니는 아직도 아이스크림 사준다고 그때 따라 나가는 게 아니었다고 땅을 치시지만, 잘 어울리신다. 아버지는 그 바쁜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온라인으로 대학을 졸업하셨고, 심지어 회사를 다니면서 MBA도 마치셨다. 우리 집에서 가장 고학력 자시다.
어머니는 남자로 태어났으면 장군감의 사주를 안고 태어나셨다. 내 살아생전 이렇게 독한 사람을 만난 역사가 없다. 말을 내뱉으면, 무조건 지킨다. 명절을 보내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와도, 가장 피곤하셨을 어머니는 3시, 5시가 되도록 모든 뒷정리를 마치고 주무신다. 나는 그게 모든 사람들이 하는 행동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너무나 따뜻하셔서 동네에서 큰언니로 모신단다.
나는 부모님께 끈기를 배웠다. 어머니는 아파도 학교에 나가서 양호실에 누워있으라고 하실 정도로 꾸준함과 성실함을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덕분에 끈기라는 자산이 내 안에 남아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에는 해내고 마는 뚝심을 얻을 수 있었다.
부인은 나를 만나기 전까지 인터넷 강의를 다 들어본 적이 없단다. 내가 프로그래밍 공부를 한창 하고 있을 때, 공부한다며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공부를 1~2달 계속했던 적이 있는데 ‘무슨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단다. 그런데 같이 있으면 닮는다. 부인은 회사를 다니면서 퇴근하고 인터넷 강의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인 교원 자격증 수업을 한 학기 동안 모두 들었고, 시험에도 합격했다. 나 덕분에 끈기를 배웠다며 감사한다.
나는 부인을 만나기 전에 싫은 일도 다 해내야만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참고 견뎌내야만 했다. 그런데 부인을 통해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그것을 성취해나가는 과정이 훨씬 더 즐겁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계를 누비며 자유롭게 살겠다는 그 꿈은 부인을 만나지 못했다면, 마음 한 구석에 묻어두고 수십 년 뒤에 꺼내보았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우리는 서로 닮음에 행복하고, 서로 다름에 배운다. 두 사람이 완벽하게 똑같을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옆에 한 명 더 있다고 하면 안 싸울 거라고 믿는다면 안이한 생각이라고 말하고 싶다. 서로의 다른 점을 존중하고 존경하면, 그 순간 그 다름은 배울 점이 된다.
온전히 한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연애부터 결혼까지 다양한 사랑 이야기를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