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페미니스트가 말합니다
예전에 친구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다 보면, 배우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가 있었다. 허물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경우에는 여자애들 중에서 "홀어머니에 효자인 아들"의 끔찍함에 대해 토로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때는 그저 별생각 없이 웃으며 '내가 벌써 결혼을 이야기할 만큼 나이가 들었구나'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주위에서 들리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여자 입장에서는 '그 이야기가 농담이 아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지간하면 "한국 남자보다는 외국 남자랑 결혼해서 살아라."라는 이야기를 엄마가 딸에게 하는 날이 온 걸까. 그 이야기를 해준 부모님도 굳이 딸을 외국으로 보내고 싶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고백컨데, 나는 페미니스트다. 나는 온몸으로 이 사회가 강요하는 '전통적인 성역할'을 거부하는데,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내가 여자라면,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면 끔찍이 싫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처지와 감정을 공감하는 것이 사람과 그 이외의 동물을 구별하는 중요한 차이라고 믿는다. 나는 그저 다른 사람의 처지에 나를 대입해보고, 불합리한 일을 보면 감정이 매우 불쾌하다. 이것이 기본적으로 굉장히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나의 성향이 많이 반영된 것이 틀림없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자주 큰 집에 가서 제사를 지냈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고, 큰 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날은 온갖 친척들을 다 만날 수 있었다. 어릴 때는 제삿날이 그저 먹고 노는 날이었는데, 철이 들면서 고생하시는 어머니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머니도 분명히 결혼하기 전에는 크게 고생하지 않고 집에서 사랑받는 딸이 었을 텐데, 결혼한 것이 죄도 아닌데 무슨 죄로 제사며 명절 때마다 며칠씩 제사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을까? 제사가 끝나고 나면, 제사상 치우기를 거들었던 것이 이때쯤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은 집안 어른 노릇을 하는 남자 어른들의 엉덩이 무게였다. 그분들은 좀처럼 엉덩이를 떼는 법이 없었고, 젊은 남자들이 내오는 음식을 먹고 즐겼다. '젊은 시절엔 나도 다 하던 거야.'라는 보상 심리였을까. 왜 준비는 여자가 하고, 먹는 건 남자가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부인은 종교 이유로 결혼하기 전 제사라는 것을 한 번도 지내본 적이 없었다. 부인에게 명절은 가족들이 다 함께 여행을 가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날이었다. 내가 부인이라면, 그 말도 안 되는 명절의 풍경을 이해하기 너무나 힘들 것 같았다. 나는 뭔가 행동을 해야 했다.
결혼식 날짜가 정해지고 나는 계획을 세웠다. 우선은 제사가 끝나자마자 잽싸게 달려가서, 고무장갑을 손에 꼈다. 설거지를 시작하자, 큰어머니는 아직 결혼 안 한 사촌 형의 등짝을 후려갈기며 "(곧 결혼할) 어른이 설거지 하는데, 너도 얼른 가서 도와라."고 형을 합류시키셨다. 나는 사촌형의 살기를 흘려보내며 부인의 제사와 함께하는 명절 보내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돌아온 첫 명절에도 역시나 같은 작전을 감행했다. 다행히 그 직전 명절에도 잽싸게 움직였던 터라 사람들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왜 어머니가 고생하실 땐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도와드리지 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결혼하고 살이 많이 쪄서인지, 엉덩이가 가벼워 보인다고 생각하셔서 인지, 친척들로부터 '새신랑이 살쪄서 망했다'는 이야기 들으며 사는 요즘이다. 그래도 나는 내가 바르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야겠다. 나는 그냥 그런 사람이다.
온전히 한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연애부터 결혼까지 다양한 사랑 이야기를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