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면 결국 터진다
부인과 처음 사귀기 시작하면서 굉장히 놀랍다고 느낀 것 중에 하나는 친구를 굉장히 잘 소개해준다는 점이었다. 사귀고 둘째 날 대학교에서 제일 가깝게 지냈다는 동기를 소개해준 것부터 시작해서 정말 사귀고 2달 안에 거의 모든 부인의 친구를 만났다. 그러니 나도 자연스럽게 내 친구들을 소개해주게 되었다. 친구들을 만나면 물론 처음에는 신경 쓸 부분도 많지만, 그 친구들을 통해서 부인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었고, 내가 모르는 부인의 추억을 친구의 입을 통해서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그리고 다들 크게 짓궂지 않게 환대해준 덕분에 문제 없이 여러 신고식을 치룰 수 있었다.
알고보니 부인은 친구만 소개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시간에 자신이 한 일과 생각한 것들을 솔직하게 공유하는 일에 매우 능했다. 이것은 나중에 알았지만 집안 환경의 매우 긍정적인 영향이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자녀의 말을 들으면서 가치 판단을 하지 않는 분들이셨고, 항상 자녀의 말을 경청하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주셨다고 한다. 그 덕분에 어떤 말이든 집에서 자유롭게 털어놓을 수 있었고, 자연스레 나에게도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100% 솔직하다는 것은 처음 느껴보는 경험이었는데, <무탄트 메시지>라는 책에서 이야기 하는 것처럼 나중에는 말을 하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은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무탄트 메시지>는 한 여성이 호주의 참사랑 부족이라는 원주민과 함께 생활하면서 경험한 것을 나눈 책인데, 사실관계를 따지는 것은 차치하고 참사람 부족 원주민은 모두 진실되게 행동하기 때문에 텔레파시로 의사소통을 주고 받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한국이 참 터부가 많은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에 나와서 사람은 수도 없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한다. 그리고 특히 '장유유서'에 관한 터부가 굉장히 많다고 생각하는데, "싸가지 없다"는 놀랍게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한다. 특히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어디서 어른 앞에서 ~"라는 훌륭한 문장은 자식이 입을 다물게 하는데 즉효이다. 물론 그 순간만 입을 다무는 게 아니라 영영 다물게 한다는 게 문제지만. 그러면서도 자식이 더 많이 이야기 해주기를 원한다. 나는 이것이 연애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연인 사이에 터부가 생기면 다른 터부가 하나 둘씩 생겨난다. 연인 사이에 생긴 수많은 규칙은 서로의 입을 다물게 하고, 그 터부 않에서 썩어가는 감정의 조각들은 치유 할 길이 없어진다.
물론 연인 사이의 터부를 개인의 사생활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한 편으로는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 혼자고, 태어날 때부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것은 아니다. 연인은 오랜 시간 혼자서 살아가다가 상대방을 만난다. 그렇기 때문에 공유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공유하면 할수록, 즉 연인 사이에 터부가 없으면 없을 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듣는 사람도 상대방의 의견을 가치 판단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누구나 내 생각에 대해서 반박을 하면 기분이 좋지 않다. 상대방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더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정리하자면 나는 터부는 감정의 무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연애에 대하여 유일하게 믿는 것이 하나 있는데,
덮어두면 곪아서 결국에는 터진다
연애가, 결혼은 더더욱 서로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시험대여서는 안된다. 서로가 서로답게 있을 수 있도록 믿어주고 들어주는 것이 그 시작이다. MAY THE TABOO BE AWAY FROM YOU AND YOUR LOVE.
온전히 한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연애부터 결혼까지 다양한 사랑 이야기를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