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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Feb 26. 2016

[우먼 인 러브] 결혼은 잘한 미친 짓이다

가장 잘한 미친 짓

결혼은 미친 짓이다. 한 배에서 태어나 한 부모 아래서 같은 밥을 먹고 자란 내 형제 자매 조차 나와 이렇게 다른 것을, 다른 환경에서 이십 수년을 자라 온 둘이 만나 한 가족이 되겠다니. 미친 짓이 틀림 없다. 엄마, 아빠, 언니, 동생 하물며 할머니, 할아버지, 큰아빠, 이모, 사촌언니.. 누구 하나 내 ‘선택’이 아니다. 세상에 태어난 순간 부터 그들은 이미 내 ‘가족’이었다. 하지만 배우자만은 다르다. 내 의지를 발현해 가족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어떤 일을 하면서 살 것인가, 어떤 사람과 시간을 보낼 것인가. 누구나가 인생에서 마주하는 가장 크고 어려운 질문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평생 끌어안고 풀어 나가야 하는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가이드라인은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단언컨데, 모두를 만족 시킬 수 있는 일이란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 나와 가장 잘 맞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는 ‘나’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이 사람이랑 결혼해도 될까요? 저는 어떤 일이 잘 맞을까요? 질문의 답을 타인에게 구하는 것은 부질 없는 일이다. 답변을 준 그 사람은 나 자신에 대해 나보다 잘 알지 못한다. 절대로.

한국 사회에는 직업과 배우자 선택에 있어 사회가 정해 놓은 많은 규율이 있다. 좋은 직업에 대한 정의, 좋은 배우자에 대한 정의, 그리고 그들을 손에 넣기 까지 적절한 수순, 절차 그리고 시기에 대한 정의까지. 그에 맞추어 나도 4학년 2학기를 앞 둔 여름 방학, 모 외국계 기업의 마케팅 부서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다.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심적 여유도 없었다. 그 여름,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듯 나는 자꾸만 그를 찾았다.

모두가 취업 이야기를 할 때, 그는 나에게 인생의 지배가치를 물었고 사랑의 5가지 언어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헤이리마을에 가기 전 합정역 맥도날드에 앉아 내게 지배가치 1순위를 물은 그에게,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가 나에게는 가장 중요하고 그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 외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답했을 때. 나도 그렇다며 신기한 듯 바라보던 그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바람이 제법 차가워진 10월 말, 하늘공원에서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며 우리는 연인이 되기로 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매주 토요일 북코칭을 시작하며 소설 책만 읽던 내가 실용서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책을 매개로 일, 사랑, 죽음, 가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에는 이 시간을 통해 그를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를 수록 나 자신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이럴 때 행복하구나, 나는 이럴 때 슬프구나, 나는 행복함을 이렇게 표현하는구나, 나는 슬플 때 이런 행동을 하는구나. 나를, 그를, 그리고 우리를, 이해하게 되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4개월 만에 우리는 먼 미래를 약속했고, 1년 후 가족이 되었다. 10월 23일, 1주년 기념일에 혼인 신고를 하고 가족관계증명서에 부모님 없이 나란히 올라 있는 둘의 이름을 보며 웃었다. 가족이다.

그와 만나서, 함께라서 내 세계가 더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5년 간 기계치라 불리던 내가 개발을 시작했고, 좋아하던 외국어 공부를 취미에서 그치지 않고 활용할 수 있는 한국어 교사 연수도 받게 되었다. 잠이 하도 많아 사고지각 52번에 수시 조차 쓸 수 없었던 내가 새벽 5시에 일어나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즐거움을 배웠다. 토요일 오전을 일주일 중 가장 기다려지게 만드는 멋진 사람들도 알게 되었다. 나도 내가 미운 순간 조차, 아름답다고 사랑을 담아 말해준다.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순간, 할 수 있다고 손을 꼭 잡아준다. 선뜻 떠날 용기를 내지 못할 때, 살포시 등을 밀어준다. 그와 만나서, 함께라서 더욱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가 들으면 처량하기 짝이 없는 비가 내려 성산일출봉 주차장에 차 대 놓고 바로 앞 스타벅스에서 책만 읽다 온 제주도 여행도, ATM이 없어 2박 3일을 12유로로 보내며 그 유명한 와이너리도 타르트도 먹지 못했던 포르투갈 여행도, 함께했던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둘만의 에피소드로 둔갑한다.

결혼이 정말 미친 짓이라면, 짧다면 짧은 26년 인생에서 가장 잘한 미친 짓이 아닐까 싶다.




'맨 인 러브'와 함께 그녀가 쓰는 사랑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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