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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Mar 11. 2016

나는 지옥에 떨어질 뻔 했다

[후기:책]신곡

2012년에 1년가량 스페인 마드리드에 살면서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다른 나라로 여행을 다녔다. 워낙 유럽 안의 나라를 연결하는 여행 편이 저렴했기 때문에 최대한 여행을 많이 다니자고 생각했다. 유럽에는 다닐 곳이 많아서 매번 다른 곳을 다녔는데, 내가 같은 곳을 두 번 이상 간 곳이 딱 두 곳 있으니 바로 포르투갈과 바르셀로나다. 그중에서도 바르셀로나는 세 번 정도 갔던 것 같은 데 갈 때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줘서 놀랐다.


나에게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도시로 기억되어 있다. 도시 곳곳에 가우디가 남겨놓은 건축을 찾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바르셀로나는 굉장히 즐거웠다. 그중에서도 1882년부터 건축을 시작해서 아직까지도 계속 건설 중이라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가톨릭 신자인 가우디가 신에게 헌정하기 위해 짓기 시작했다고 알려져있다. 그래서인지 신이 창조한 자연의 모습을 모방하여 대성당의 구석구석을 채워 놓았는데, 사그라다 파밀리아 특유의 디테일을 보고 있으면 건축에 문외한인 사람조차도 고개를 절로 흔들게 된다. 


단테의 신곡은 나에게 비슷한 느낌의 책이었다. 단테가 신곡을 쓴 것이 14세기라고 하니, 가우디가 단테를 따라 했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다. 그는 이탈리아어로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을 묘사해냈다. 그는 그의 글 속에서 어느 날 저녁 갑자기 베르길리우스라는 로마의 시인의 안내로 지옥에 이른다. 그리고 지옥에서 천국에 가기에는 충분하지 못한 사람이 죄를 뉘우치는 연옥을 거쳐서 천국에 이르는 여행을 한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마치 정말로 사후 세계를 여행한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살아있는 사람 중에서 자신의 정적이었던 사람도 영혼을 지옥으로 보내버렸다고 하니 펜을 든 작가의 복수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책 제목을 La comedia라고 이름 붙였다고 하는데, 코미디는 희극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희극은 어떤 추한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반면, 그 내용면에서 즐겁게 끝을 맺는다.'라고 했다는데, 지옥에서 시작해서 천국으로 끝난다는 말이었겠다. 처음에 지옥편을 읽으면서 사후 세계가 없다고 믿은 에피쿠로스 학파 6번째 지옥 옆자리에 눕겠구나 했는데, 책을 읽다 보니 비기독교인도 연옥도 가고 천국도 간다. 역시 착하게 살아야 되겠다.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는 신곡을 동네 서점에서 만났다. 김영하 소설가의 <살인자의 기억법>을 찾다가 재고가 없다고 해서 뽑아 든 신곡에서 자신이 믿는 세계를 자신의 글로 새롭게 창조해 나가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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