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아래는 <제주도 찬가>의 첫 글이자 목차
우리는 공항 가는 날 항상 달린다. 눈을 처음 봐서 한없이 들뜬 마음에 눈밭을 뛰어다니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은 아니고, 짐도 전날 다 챙겨놓고 자는데 항상 마지막에는 시간이 부족해서 뛴다. 이번에도 뛰었다. 디지털 미디어시티역에서 환승해서 김포공항으로 가는데 디지털 미디어시티역에서 환승하기까지 여행용 캐리어를 하나 들고 정말 열심히 달렸다. 아마 우리 부부가 열심히 운동을 하는 건 비행기를 타는 날 공항까지 뜀박질을 숨차지 않고 하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너무 오랜만에 제주도를 가서 그런지 20분 전까지만 체크인을 까마득하게 잊은 채 김포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허탈했다. 무려 1시간이나 일찍 도착했지만 허탈해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우리는 일찍 도착해서 좋은 이유를 100가지쯤 찾았을 때, 1층에 있는 엔젤리너스에서 커피를 하나씩 시켜서 마시면서 각자 가져온 책을 읽으며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부인님은 Sheryl Sandberg의 Lean In을 원서로 읽는 것에 크게 빠져있었고, 각 챕터를 읽으면 나와 함께 내용을 나누고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한다. 책은 정말 서로 생각을 나누는데 좋은 도구다. 책은 대화에 방향을 제시하는데, 방향성이 있는 대화는 더욱 서로의 깊은 곳을 넘나 든다. 페이스북 전 COO인 셰릴의 글은 더 많은 여성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의 역할에 순종하지 않고 좀 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사회에 나갈 것을 주장한다고 한다.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하는 여자는 멋있다, 그 전에 너무나 아름답다. 그렇게 Lean In은 올해 읽어보고 싶은 책 리스트에 들어가게 되었다.
제주도로 향하는 짧은 비행 속에 그녀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기분 좋게 눈을 붙이고, 나는 가져간 책을 읽는다. 짧지만 가득 찬 여유다.
제주도에 도착하니 벌써 8시다. 부인님께서 매우 배가 고프실 시간이다. 우리 집에서 배고픔은 금지되어 있다. 어서 부인님께 식사를 대령해야 한다. 미리 예약한 쏘카를 끌고 공항 가까운 곳의 호텔에 체크인해서 짐을 놓고, 전직장 동료의 극찬을 받은 올댓제주라는 식당에 연락을 하니 9시에 와야 한단다. 부인님 배고프신데 큰 일이다. 호텔 엘리베이터에 루프탑에 바가 있다고 한 이야기가 기억나서 맥주 한 병 시켜놓고, 허니버터 칩 같은 감자칩을 먹으며 여행객의 기분을 만끽한다. 창 밖으로 보이는 새까만 하늘은 서울과 별로 다를 게 없지만, 왠지 모르게 더 검고 더 붉고 더 파랗다.
9시가 돼서 올댓 제주에 도착했더니, 재료가 다 떨어졌다며 우리가 먹고 싶은 메뉴는 다 고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거기서 가능하다는 음식을 두 개 주문했다. 그분들이 옳았다. 그리고 우리는 너무 경솔했다. 특히 '해물토마토스튜'라는 메뉴를 추천해주시길래, '저건 정말 먹고 싶지 않은데'라고 생각을 했었다. 스튜라는 이름은 나에게 마치 수프 같은 인상을 주는데, 수프에 해산물과 토마토라니 정말 먹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나빴다. 아주 잘못했다.
이 아름다운 스튜의 자태를 보라. 스파게티 면을 넣을 거냐고 물어보시길래 당연히 그럴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살짝 매콤한 소스 많은 스파게티가 되었다. 왜 저걸 이름을 스튜라고 붙였을까 아직도 의문이다. 차라리 해물탕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 메뉴는 기간 한정 메뉴라 다음번에 갔을 때 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홍합 하나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다 해치워버렸다.
정식은 1인 당 5만 원이라는데 다음번엔 이번에 다 못 먹은 아쉬움을 가득 담아 정식을 먹기로 했다. 맛있는 음식은 항상 옳다. 내일은 더 엄청난 음식이 기다리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