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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 Mar 12. 2016

더 맛있는 제주

두 번째 이야기

아래는 <제주도 찬가>의 첫 글이자 목차




제주에서 둘째 날은 부인님 생신 전야였다. 특별하게, 하지만 가볍지 않은 하루를 만들어 드려야 한다. 하지만 시작부터 문제가 조금 있었다. 전날 너무나 흡족한 저녁을 먹었던 우리는 이제 더 흡족한 점심을 먹어야 했는데, 한껏 기대하고 간 '아루요'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귀여운 아들 하나 딸 하나와 산책 나온 제주도에 정착한 지 1달 되셨다는 여성분께서 아루요는 일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단다. 본인도 이미 두세 차례 실패의 쓴 맛을 맛보셨다고. 점심을 매우 흡족히 먹을 생각에 아침도 가볍게 먹었는데 이제 이를 어쩐다.



사장님 나빠요.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데나 가서 먹을 우리는 아니다. 차를 도로에 세워놓고 열심히 찾아본다. 그런데 덴마크 가정식을 한다는 식당이 내 눈에 포착되었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 사진으로 부인님의 윤허를 받았고 이제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아루요에서 덴마크 가정식을 한다는 후거 키친까지는 약 30분 정도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희망에 룰루랄라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어깨를 들썩 거린다. 가는 길에 전화를 했더니 벌써 4팀이 대기를 하고 있는데, 미리 예약할 수도 없고 얼마나 기다려야 되는지도 알려줄 수 없단다. 오호 이게 얼마만에 만나는 서울에서 맛볼 수 없는 패기란 말인가. 그래도 우리가 제주도에 여행 왔으니 원래는 배고프면 사나워지는 우리지만 참기로 했다.



1시 반쯤 도착하니 앞에 7팀이 기다리고 있다고 1시간을 기다리란다. 사장님 나빠요. 그래도 먹어야지.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어주고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내비게이션에 찍어보니 망고레이가 있다고 해서 망고를 먹으러 가면서 기다리기로 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만 알려드리는 비밀 한 가지.  "망고레이이라는 망고 전문점은 원래 해안가에 있었는데, 그곳을 처분하고 근처로 가게를 옮겼다고 한다. 그런데 그걸 모르는 관광객들이 원래 자리로 가서 비슷한 가게를 꾸며놓은 곳에서 망고를 먹고 있다고!"라고 망고레이 가게 화장실에 적혀있다. 우리는 부인님 직장 동료의 정보 제공으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망고 주스를 한 손에 하나씩 물고 기다리고 있으니 30분 만에 부른다. "5분 안에 갈게요."라고 공손히 말씀드리고 달려가서 차를 몰았다.



아, 정말 제주도 이 나쁜 사람. 엄청난 비주얼의  새우구이와 전복 스파게티를 시켰는데, 정말 너무 나쁘다. 서울에다 분점을 차려달라고 때 쓰려다 밥 먹고 정신 차려서 겨우 참았다. 요즘 요리사분들이 제주도로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서울과 달리 신선한 재료를 마음껏 쓸 수 있다는 점은 정말 매력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발자가 새로 산 풀옵션 맥북프로를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는 것처럼? 오랜 염원 끝에 에르메스 버킨백을 처음으로 손에 걸었을 때처럼?


배를 든든히 채우고 다시 차를 타고 주위에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는다.  운전하면서 가는 길에 부인님께서 극동이라는 단어가 많은데 그게 무슨 의미이냐고 물어보길래, 유럽이 끝나는 지점부터 서아시아가 시작해서 한국과 일반은 동아시아의 끝에 있어서 극동 아시아라고 부른다고  말씀드렸더니 눈이 동그랗게 커지신다. 아니, 어떻게 아랍 사람이 아시아 사람일 수 있는 거냐는 질문에 나의 역사학적 지식을 최대한 이용해서 유럽의 유래와 유럽이 그 영역 밖의 사람들을 아시아로 부르면서 어떻게 타자 화하는지에 대해 짧은 지식으로 설명을 해드렸다. 우리는 제주도에서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전체가 통유리로 되어있는 4면이 풀밭으로 가득 둘러싸여 있는 카페에서 해먹 같은 의자에 앉아 아까 놀랐던 지리학 이야기와 사는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눈다.



케이크를 소화제 삼아 도란도란 토크쇼가 끝나고 오늘의 마지막 행선지로 향한다. 외국에서 본 리조트의 경치가 한국에도 있었다. 사람들의 환대는 따뜻하고, 방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푸르다. 저녁에 내려간 따뜻한 물이 있는 야외 수영장과 커다란 스크린에서 나오는 비긴 어게인의 음악은 잘 어울렸다. 영화에서 그레타가 열심히 찍은 자신의 음원을 1달러에 온라인에 푸는 장면이 나오면서 우리의 제주의 밤도 하얘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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