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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엠미 Mar 22. 2022

있는 그대로 보기

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비슷한 것>을 읽고

영화 라쇼몽은 자기 미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죽을 때까지 어쩌면 죽어서까지 인간은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주관적으로 본다. 구로사와는 서글픈 인간 본성을 영화로 그렸고 자신도 인간이기에 자신이 쓴 자서전의 제목을 <자서전 비슷한 것>이라고 지었다. 자신의 일대기를 자신이 썼지만 의식적으로는 그러지 않더라도 자기 미화가 있을 거라는 얘기다. 이제 막 20대 초반의 구로사와는 화가를 꿈꿨었다. 고흐나 위트릴로처럼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그것을 그리고 싶었던 구로사와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되돌아보며 자신만의 눈을 가지지 못해 안달하고 조급해하고 불안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런 시를 소개한다.


빨간 것을 그 자체로 빨갛다고 말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그것을 그 자체로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어느새 만년이었다. 


자기 현시욕이 지나치면 자기 자신을 잃는다고 한다. 그가 영화도 그림처럼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고 안달했다면 그렇게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영화계에 입문한 것이 아니라 다소 우연찮게 영화계에 입문하여 차근차근 정도를 밟아가며 협업하는 즐거움을 느끼며 영화 기술을 익혔다. 물론 그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 형을 통해 접한 수많은 좋은 영화들과 청년시절 섭취한 다양한 예술들이 그가 그 세계에서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거름이 되었으리라고 본다. 


[집안의 경제 사정을 생각할 때 재료를 넉넉히 사겠다고 손을 내밀 수도 없었다. 결국 나는 그림에 완전히 몰입하지 못한 채, 문학과 연극과 음악과 영화에 탐욕스럽게 손을 댔다. (..) 나는 외국문학, 일본문학, 고전,현대물을 가리지 않고 마구 읽었다. 책상에 앉아서 읽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읽고, 걸으면서도 읽었다. 128p]


있는 그대로 보는 것, 모르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것, 열심히 하는 것, 자신의 생각을 지키는 것 등등 

교과서적이면서 당연한 얘기가 실생활에서 가슴에 새기고 지켜내는 것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로사와는 어린시절 겁쟁이였다고 한다. 툭하면 울고 머리도 나빠서 이해가 느렸다고 그에 관한 일화도 서슴없이 들려주었다.영화일을 하면서는 화를 잘 내는 고집쟁이가 되었다고 시인한다. 무턱대고 화를 낸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자신의 치부들까지 들춰내면서도 자기 미화를 염려한다. 젊은 시절 그는 페르소나인 미후네 도시로의 명연기를 실시간으로 보면서 몸이 실제로 덜덜 떨릴정도로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한다. 나중엔 배우들의 연기를 흥분하며 보지 않고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그게 어떨 땐 씁쓸하다고 한다. 


자기 미화를 지나치게 염려하는 것은 너무 냉정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다. 불알친구 우에쿠사와의 일들을 이야기할 때는 꽤 주관적으로 이야기를 해줘서 좋았다. 라쇼몽을 보면 그런 주관적인 관점이 서글프지만 이렇게 보면 또 그것이 어쩔 수 없이 인간적인 매력이기도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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