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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영신 May 30. 2016

공정무역,  ​지진으로 무너진 삶을 일으켜 세우다

Imaginepeace 세상을 바꾸는 여행 _ 공정무역 커피 추수 여행

                                                                                                                                       Photo by Juheeshin 


아름다운커피 농부들을 만난 건, 어쩌면 지진 덕분이었다. 여러 차례 네팔을 오가는 걸음 속에서도 커피 마을은 늘 너무 높고 먼 곳에 있어 쉬이 가 닿을 수 없었다.
그 아득한 산 위의 마을에 지진이 찾아오던 봄, 땅이 흔들리고 산이 무너져 내리며 마을이 완파되었다는 소식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지진으로 무너진 집은 무려 84만 채 그중에서도 가장 피해가 큰 지역은 신두팔촉 지역이었다. 마을이 ‘완파’ 되었다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지진이란 두 글자가 얼마나 크고 광폭한 뜻을 지닌 말인지 무너진 마을들에 다다른 후에야 비로소 그 단어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진이 사람만 무서운 게 아니었나 봐요


지진 후 100여 일이 지난 후 다다른 신두팔촉의 커피 마을, 산 위의 네팔 사람들에게 '지진'은 여전히 지나간 사건이 아니었다. 매일 찾아오는 강도 4.0 이상의 여진은 지진을 잊을 수도, 일상을 복구할 수도 없게 하는 통증의 진원지였다. 강도 4.0 이상의 여진만을 기록하고 있는 네팔 지진센터의 여진 기록은 100일간 무려 140여 차례. 여진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왔던 일상이었던 것이다.

지진으로 무너진 마당에서 커피 농부들은 무너진 커피나무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옥수수를 거두어 마당에 널어 두었다. 마당 가득 널린 옥수수를 밟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지나가는 길, 네팔에 이 년간 머물며 커피 농부들을 지원했던 아름다운 커피 한수정 선생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설명을 해 주었다.


“네팔 농부들이 이렇게 마당에 옥수수를 널어 말리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원래는 처마 밑에 가지런히 널어 말리는데 집이 다 무너지니 옥수수를 널어 말릴 처마조차 사라졌네요 “


마당으로 내려앉은 것은 옥수수만이 아니었다. 집안의 세간도, 아이들도, 기르는 짐승들도 언제 무너질지 모를 집에 쉬이 들어서질 못하고 서성이고 있었다. 무너진 폐허에서 꺼내온 나무막대들과 구호단체들이 가져다준 천막 밑에서 우기를 건너고 언제일지 모를 집을 다시 세워가는 삶은 얼마나 가파를 것인가.. 집 안에 있어도 집 밖에 있어도 안심할 수 없는 어떤 불안. 그것은 다만 사람에게만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었나 보다. 마당의 송아지가 너무 귀여워 만지려 하니 흠칫 놀라 물러서니 농부 아저씨가 소들을 가만히 바라보시더니 상태를 설명해 주셨다.
"지진이란 게 사람만 무서운 게 아니었나 봐요. 저 어미 소가 지진이 나고 두 달 동안 젖이 나질 않았어요. 염소들도 마찬가지고요. 전에 없이 사람이 다가가면 손길을 피하고 눈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요. 소도 염소도 다 아직 아물지 않은 거죠."

하물며 아이들이야. 겉으로는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들 대부분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고, 트라우마 치유를 위해 아이들을 만나가고 있지만 여진 위의 치유작업은 집을 짓는 것만큼이나 더디고 느린 걸음으로 나아가는 일이었다.



쓰러진 커피나무 숲, 다시 삶을 일으켜 세우는 농부들


그 무서운 지진 속에서도 농부들은 쓰러진 커피나무 숲으로 달려가 커피나무들을 일으켜 세우고, 저장해둔 커피를 덮어버린 흙더미를 파헤쳐 커피콩들을 거두었다. 아름다운커피 팀이 도착하니 그 흙더미 속에서 꺼낸 커피를 소중히 보듬어 보여주신다. 사람도 생명도 죽어나가는 그 무서운 지진 속에서 커피나무를 일으켜 세우고 파묻힌 커피를 꺼낸 그 극진한 손길에 마음이 아득해왔다. 늘 오르내리던 마을들이 지진을 무너졌건만 모금 때문에 애만 태우다가 뒤늦게 달려온 아름다운커피 한수정 팀장은 그 따스한 손에 담긴 커피들을 보고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신두팔촉의 커피 농부들에게 커피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산길을 걸으며 여쭙는 질문들에 프라찬다 선생님은 찬찬히 답해 주셨다.  
“ 아무것도 추수할 수 없는 겨울, 마지막으로 추수하는 작물인 커피는 다음 농사를 지어 추수를 하기까지 가족들의 겨울을 건너게 해 줄, 또 아이들의 학비를 도와줄 소중한 작물이에요. 공정무역 커피는 소농들의 협동조합과 거래를 하죠. 그리고 해마다 구입하기로 한 커피 추수 물량에 대한 대금의 60%를 선불로 건네요. 물론 커피를 종묘하는 법, 유기농으로 짓는 법, 농사일기를 쓰는 법... 커피를 어떻게 키우고 가꾸어 가는지 가르쳐주는 것도 협동조합의 중요한 일이죠. 네팔 커피는 다른 나라보다 조금 늦게 시작한 편이니까요 ” 가는 곳마다 커피 잎의 상태부터 살피고 농부들에게 커피나무에 대해 묻는 프라 찬다 선생님은 네팔 커피의 역사와 삶을 함께 해 산 증인이라고 아름다운커피 선생님들이 귀띔해 주신다.
올해도 그렇듯 아름다운 커피는 네팔 농부들에게 선구매금을 지원했을 터..  그러나 신두팔촉의 마을들을 덮친 지진은 그냥 나무와 커피나무를 가리지 않았다. 산 사람도, 짐승도, 커피나무도 그저 마을을 쓸어내리는 지진 속에 휩쓸려가는 아프고 쓰린 날들이 지나갔을 뿐이다. 어떤 농부는 커피나무 전부를 잃어버리기도 했을 터이고, 또 삼 년을 키워 이제 추수를 고대하던 어린 나무들이 쓰러지기도 했을 터였다. 게다가 집은 무너져 내리고 삶은 뿌리 채 흔들린 곤궁한 시절, 미리 받은 돈을 돌려주어야 하는 시름 속에 무너진 흙더미 속에서 보관한 커피는 얼마나 귀하고 소중했을 것인지..

산비탈 가파른 마을 길들을 걷는데 커피 농부인 구릉 아저씨가 말씀하셨다.

“지진이 있고 나서 아름다운 커피 직원들이 커피 마을을 찾아왔어요. 사람들은 무너진 집도 집이지만 이미 선금을 60%나 받았는데 커피나무가 부러지고, 커피를 수확할 수 없게 된 현실이 너무 미안하고 암담했어요. 그런데 아름다운 커피에서 온 사람 누구도 커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 않는 거예요. 그저 다친 사람 없느냐고, 죽거나 아픈 사람은 없느냐고 살펴요. 무너진 집들은 몇 채나 되는지,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 하느냐고 가가호호 찾아다니며 그 산자락을 몇 달간 오르내렸죠. 한 달치 식량을 가져다주고, 또 당장 우기를 넘길 함석지붕과 심어서 먹을 채소 씨앗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그러니 우리도 살아남은 커피나무들을 소중히 돌보아야죠. 멀리 한국의 벗들이 우리를 돌보아 주었듯이...”

아름다운커피는 신두팔촉 지역의 높은 산 위에 흩어져 있는 400여 명의 조합원들을 찾아다니며 지진으로 다치거나 아픈 이는 없는지, 농가와 펄핑 센터는 어떤지 살피고 돌보며 지진 직후부터 농부들과 마을 사람들을 지원해 온 커피 협동조합 수더르산 블라케 조합장님은 지진이 가져다준 가장 소중한 것을 가만히 이야기해 주신다.
“지진으로 많은 것을 잃었죠. 하지만 소중한 것을 얻기도 했어요. 이번 지진이 있고 나서 사람들이 말해요. 이제야 공정무역이 뭔지 알 것 같다고. 공정무역이 뭔가요? 사람이 사람과 만나 서로 나누는 것이 무역이라면 이번 지진은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것을 가르쳐 주었어요. 진짜 무역이 무엇인지, 공정무역이 어떻게 얼마나 다른 것인지..”


지진으로 무너진 폐허속에서 간신히 구해낸 커피콩, 어느새 새 잎이 돋아 생명을 틔우고 있다.



1월엔 함께 커피를 추수해요


한창 더운 8월의 태양 속에서 함께 커피 농부들을 만나고 난 후 헤어지는 자리, 다음 해 1월, 재건을 위해 마음과 사람을 모아 다시 오는 마음의 여정을 준비 중이라 말씀드리자 아름다운커피 프라찬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1월 말이요? 그때 온다면 커피 추수를 함께 할 수 있겠네요.”


지진을 이기고 붉게 익은 커피 체리를 추수할 수 있다는 말에 이미 가슴 한편이 뛰기 시작했다.


Photos by juhee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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