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inepeace 세상을 바꾸는 여행 _ 공정무역 커피를 추수하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시간은 늘 더디고 느리다. 촘촘한 걸음으로 일월이 마침내 다가왔고, 다시 산 위의 커피농부들을 만나기 위해 멀고 긴 여행을 시작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산 위의 마을을 향해 함께 오르는 소중한 일행들이 생겼다는 것뿐..
가을과 겨울을 건너 이촉마을에 오르는 길은 무너진 집들이 없었다면 지진은 거짓말이었다는 듯 마냥 아름다웠다. 층층이 푸른 논과 구불구불 고랑을 따라 유채로 가득한 들판을 아이들은 송아지마냥 뛰어다녔다. 제주에서 온 곶자왈 작은학교 친구들은 한 겨울에 핀 유채의 풍경에 반가움에 겨웠고, 유기농업을 배우는 풀무학교 친구들은 아름다운 논의 풍경에 넋을 잃었다.
산 중턱에 차를 멈추고, 산 위의 마을을 향해 짐과 선물을 가지고 올라가는 길, 아름다운커피 권유선 간사님이 넌지시 걱정을 건네 왔다. “커피가 갑자기 잘 익어서 아이들이 도착할 때쯤이면 다 떨어져 못쓰게 된다고 지난주 추수를 많아하셨데요. 커피가 너무 적어서 아이들이 실망하면 어떡하죠?”
그러나 걱정은 늘 어른들의 것이었다. 생전 처음 커피나무를 마주하고 붉은 커피 채리가 익는 커피나무 숲에 깃든 아이들은 흥분과 기쁨에 숲의 야생동물처럼 눈을 반짝였다. 아이들의 흥분을 눈치챈 커피 농부, 팟 바하두르 조합장님은 아이들에게 찬찬히 커피 추수하는 법을 설명해 주주셨다.
“한 알 한 알 조심스럽게 따야 해요”
“커피를 너무 세게 잡아당겨서 따면 열매 끝에 있는 짧은 가지가 끊어져 버려요. 그럼 그 자리엔 다시 열매가 열리지 않아요. 그래서 천천히 살피며 익은 커피를 옆으로 돌려서 살살 따주어야 해요. 커피는 다른 과일과 조금 다르게 한 가지에서도 한 알 한 알 익는 시기가 달라요. 아직 푸른 커피체리도 소중히 다루어야 해요. 익을 때를 기다리는 중이거든요”
아름다운커피의 현지 직원인 먼두와 권유선 선생님이 곁에서 설명을 보태주셨다
“보통 커피 추수 기간은 한 달 이상 걸려요 농부들이 매일 밭을 오가며 익은 체리들을 체크해서 일일이 수작업을 하는 거죠” 기계농을 하는 브라질이나 남미의 커피 대농장(플랜테이션)과는 달리 추수부터 커피 과육을 제거하기까지 한 알 한 알 사람의 손이 가는 수고로운 과정이었다.
네팔의 커피농부들은 많아야 50그루에서 100그루, 그늘이 있는 산비탈이나 짚 앞에 텃밭처럼 조금씩 짓는 소농들이었다. 그 농부들 400여 명이 모여 아름다운 커피와 거래를 하는 커피 협동조합이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공정무역을 배우러 아이들이 온다는 소식에 아이들을 위해 다 따지 않고 일부러 커피를 남겨두셨다는 커피 농부들은 채리를 따며 늘 신기해하는 아이들을 보며 연신 빙글빙글 웃으신다. 커피 농부 할아버지는 추수를 마친 아이들에게 커피 체리가 어떻게 커피콩이 되는지 보여주시려고 다시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하셨다. 아이들은 이제 산양처럼 빠르고 잰걸음으로 할아버지 뒤를 따라간다. 펄핑 머신(커피과육제거기)이 있는 펄핑센터에 간다는 말에 큰 건물을 상상했던 우리가 도착한 곳은 비탈에 세워진 작은 움막이었다. 나무 기둥을 세우고 함석지붕을 받쳐둔 작고 열린 공간에 덩그러니 작은 기계 하나가 놓여있는 곳이 펄핑센터였던 것이다. 조합장님은 아이들의 실망을 눈치챈 듯 펄핑센터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
“원래는 이것보다는 좀 더 멋진 공간이었어요. 하지만 지진에 모두 무너져서 임시로 세운 거예요. 이 기계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마을에서 펄핑을 못하면 커피 채리를 그냥 팔아야 해요. 펄핑을 해서 말리지 않은 생체리는 빨리 상하기 때문에 제 값을 못 받기 일쑤고 또 잘 상해서 싸게 팔아야 할 때도 많죠. 하지만 이렇게 펄핑(커피체리를 벗기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잘 씻고 말려서 우리가 보는 생두가 돼요. 그럼 더 오래 보관할 수 있고, 값도 훨씬 높아지죠”
조합장님은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 펄핑 머신을 돌려서 커피 껍질을 까 보도록 손잡이를 내어주신다. 그런데 의외로 핸들은 쉬이 움직여주질 않는다. 얼굴이 붉어질 때까지 힘을 주며 돌리는 아이들 모습에 마을 어른들은 웃음을 멈추질 못한다. 커피 농부 다카 아저씨는 펄핑 머신을 나온 파치먼트를 물에 담가 물에 뜨는 쭉정이들을 또 골라냈다. 얼굴이 빨개지도록 펄핑 머신을 돌려 보고 난 친구들은 체리 과육에 섞여 나오는 생두가 너무 아깝다며 얼른 주워서 통에 담는다. 그렇게 힘을 들여 수동으로 펄핑을 마치고 나면 잘 발효를 시켜 커피콩에 묻은 과육을 잘 벗겨내고 말려야 건강하고 맛있는 커피 생두가 된다고 한다.
한 친구는 커피 추수와 펄핑 과정을 수첩에 부지런히 적던 손을 떨구더니 한숨을 내쉰다
“이렇게 하나하나 다 손으로 하는 것일 줄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
아이들이 커피를 추수한다는 일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마는 마을은 온통 어린 손님들 맞이로 분주했다.
아름다운 커피 협동조합 활동가인 만두 선생님은 어디선가 쇠로 만든 항아리와 긴 막대기를 들고 나타나셨다. 작은 모닥불을 하나 더 지피더니 그 위에 항아리를 올려두고 연신 막대기로 젖기 시작하신다. 그 소리와 움직임이 사뭇 궁금해 아이들이 쳐다보니 “커피, 커피”하고 외치시며 보러 오라 하신다.
그 와중에도 커피가 탈 까봐 손은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그렇게 바지런하게 균일한 속도로 20여분을 저어야 하는 네팔 전통방식의 항아리 로스팅... 신기해 하는 아이들에게도 막대기를 한번씩 건네주시지만 커피를 살피는 손끝은 매섭다. 십여분이 지나자 항아리 속에서 거짓말처럼 커피 향기가 퍼지기 시작했다.
지진으로 무너진 마을 한 가운데... 장작불과 항아리에서 볶아진 커피라니... 금방 볶아서 내린 커피는 순하고 부드러웠다. 아이들도 저마다 한 모금씩 맛보고 싶다고 줄을 서고, 커피를 마시고난 아이들 표정이 궁금하신지 마을 분들은 자꾸 쳐다보며 웃으신다.
마당 한 켠에 장작불이 올라오고 여기 저기 텐트를 세우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어느새 캠핑장에 온 듯 도리어 신이 나서 어른들을 거들기 시작했다. 산을 오르느라 한창 배가 고팠던 터라 커다란 솥을 걸고 밥을 짓고 달밧을 끓이는 냄새가 퍼지기 시작하자 모두가 행복해 지기 시작한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마을 아이들이 모여들고, 실뜨기 실이며 공을 꺼내어 서로 어울리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함께 따순 달밧 한 그릇 나누고 산자락에 눅신하니 어둠이 내리니 시작하니 어른들은 추울까봐 다시 불을 지켜 모닥불을 만들어 주셨다. 커피처럼 짙고 부드러운 어둠이 히말라야 산자락과 마을을 고요히 감싸기 시작하자, 건너편 아득 한 산 위의 마을들에 별이 켜지듯 사람의 불빛이 켜진다. 하늘을 보듯 올려다 보아야 하는 높은 마을들에 반딧불처럼 점점이 켜진 따뜻한 불빛들을 하냥 신기하게 보다가 한 친구가 말한다.
“별이 하늘에만 뜨는게 아닌요.. 불켜진 사람들 마을이 저렇게 아름다운 건 줄 몰랐어요”
집이 있다는 것, 그 집에서 저녁에 식구들을 위해 불 하나 밝힐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생경한 일인지 이촉의 밤은 아이들에게 그 불빛의 온기로 가르쳐준다.
“저 불빛 속의 사람들도 우리가 켜 둔 불빛을 보며 위로를 얻을 거야”
아이들은 기타를 꺼내고 오카리나를 꺼내어 연주를 하고, 마을 어르신들은 답례로 북과 기타를 가지고 나오신다. 모닥불 가에 자리를 펴고 남자들은 남자들 대로 여자들은 여자들 대로 서로 원을 그려 앉는다. 한 쪽에서 선창을 하면 즉흥으로 다른 한쪽이 화답을 하는 노래가 몇 순배 오가니 흥이 한껏 올라 춤까지 어이진다.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난 지 한 순배가 돌고 나면 꺄르르 꺄르르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환하게 퍼진다. 밤이 새도록 그렇게 서로 노래를 하며 서로의 마음을 노래로 전한다는 마을의 전통이 그렇게 마당에서 펼쳐지고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흥에 겨워 아이들은 같이 춤도 추고 박자도 탄다. 깊은 밤 모닥불가에 피어오르는 노래는 끝날 줄을 모르고, 저녁 달과 별들이 마을 위로 떠 오른다.
다음날 아침, 일찍 지어주신 아침 밥을 먹고, 카트만두를 향해 다시 먼 길을 떠나며 마을 분들과 인사를 나눈다. 노래와 춤으로 늦은 밤에 잠이 드셨을 터인데 어느새 다들 일찍 일어나셔서 밥을 짓고 아이들을 돌봐주시고, 마을을 나서는 길을 배웅해 주신다
“여러분,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전에는 손님이 오시면 집집마다 홈스테이를 했는데 지난 봄 지진으로 재워줄 수 있는 방이 모두 무너져 버렸어요. 멀리서 온 귀한 손님들을 텐트에서 묶게 해 너무 마음이 무겁고 미안합니다. 다음에 올 때는 집들이 다시 세워지고 꼭 집에서 재울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지진으로 건물이 흔들려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있던 아름다운커피 건물은 어느새 아름다운 카페와 더불어 커피의 여정을 보여주는 커피 박물관이 되어 있다. 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산 위의 마을들을 오르내리느라 분주했을 그 시간들 짬짬히 카페와 박물관을 꾸미기 위해 애쓰고 수고했을 손길들이 눈에 선했다.
박성호 간사님의 안내로 커피 박물관에 들어서자 마자, 아이들은 저마다 아는척으로 소란하다.
“어 먼두 선생님이다”
“우리가 갔던 마을인가봐.”
“야, 펄핑머신이다!”
어떻게 한 알의 붉은 커피 콩이 커피나무로 자라나는지, 그늘과 햇빛이 어떻게 커피를 자라게 하는지, 한 그루의 나무가 커피 열매를 맺기 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과 정성이 들어가는 지, 그렇게 거둔 붉은 커피가 멀리 우리가 사는 곳까지 여행을 와 한 잔의 컵 속에 담기기 까지 얼마나 긴 여행을 해야 하는 것인지... 한 장의 사진 앞에서 커피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의 마음은 이미 커피나무 숲 그늘에 함께 서 있다.
마당까지 열려있는 일층 카페에선 바리스타 대회에서 은메달을 땄다는 바리스타님이 아이들에게 커피 맛을 보여주고 싶다고 라떼아트를 선물해 주고, 아이들은 연신 탄성을 그칠 줄 몰랐다.
커피나무 숲에서 머문 하루
높은 산에서 내려온 한 잔의 커피, 그 커피가 다시 더 먼 여행을 해서 한국까지 다다르면, 그것이 비로서 세상을 바꾸는 한 잔의 커피가 된다는 배우던 붉은 커피나무 숲...
산 위의 무너진 마을 한 가운데서 텐트를 치고 장작불에 밥과 커피를 내어 주시던 커피마을 사람들.... 그 사람들을 위해 산을 오르내리는 아름다운 커피 사람들과 함께 한 여행은 아이들의 마음 속에 에스프레소처럼 깊고 진한 기억의 공간을 만든다. 한 잔의 커피가 세상을 바꾸는 여행을 시작하듯 커피나무 숲에서 머문 하루의 여행이 아이들의 삶에 어떤 새로운 여행의 문을 열어갈지 가늠할 수 없는 설레임으로 다시 길을 나선다.
* 아름다운커피 네팔카페 및 커피 박물관
- 운영시간 오전 10시 ~ 오후 8시
- 커피 가격 80루피(800원) ~ 150루피(1500원)
- 박물관을 방문하려면? 매장 운영시간에 입장, 자유롭게 관람 가능
- 네팔 카트만두 사네파(촉) 사거리 977-1-5529308 (구글지도링크)
- 네팔 카트만두 사네파(촉) 사거리 977-1-5529308 )
▶ 아름다운 커피 www.beautifulcoff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