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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영신 Mar 02. 2021

진짜 몰디브를 여행하는 시간 2

쉬는 법을 배우는 섬, 마푸지 아일랜드


                                                                                                                                       Photo by Juheeshin 


몰디비안 게스트 하우스의 탄생지, 마푸지 섬    


말레에서, 빌링길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진짜 몰디브를 여행하려면 어디로 가야 할지 조언을 구할 때면 열에 아홉은 ‘마푸지’를 외치곤 했다. 몰디브 게스트하우스를 소개한 책에는 심지어 마푸지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의 탄생지!” 재미있는 표현에 웃음을 입에 물고 마푸지행 배에 올랐다. 


마푸지를 가는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빌링길리 페리 터미널에서 하루 두 번 오가는 페리를 타는 방법(오전 7시, 오후 3시)이고, 나머지 하나는 훌루 말레 공항에서 말레에 내리는 선착장 옆에서 하루 세 번 정도 있는 스피드 보트는 타는 것이다. 페리를 타면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이 걸리는 그 거리를 스피드 보트를 타면 단 30분 만에 주파한다는 말에 흔들리던 마음은 가격을 듣고 차분히 가라앉는다. 배 삯은 무려  5배 차이! 여행의 결정권은 늘 마음이 아니라 지갑에 놓여 있지 않던가. 배를 타고 바다를 가로지르는 내내 돌고래들이 여객 선 주위를 따라오듯 헤엄친다. 몰디브에선 돌고래 와칭 투어는 굳이 할 필요가 없을 거라던 관광청 직원의 꿀팀이 허풍이 아님을 눈으로 확인한다. 돌고래와 날치들의 퍼레이드 속에 여객선이 마푸지에 가까이 다가서니 말레와 달리 소박하고 아름다운 바다 마을의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몰디비안 게스트하우스, 마푸지 아일랜드 


선착장에 내려서 내비도 없이 어떻게 찾아가죠?

부킹닷컴을 통해 보낸 질문에 숙소에선 "저희 직원이 항구에서 픽업을 도와드립니다"라고 친절하고 정중한 답장이 와 있었다. 우리 숙소뿐 아니라 섬의 대부분 숙소들은 비슷한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모양이었다. 푸지 섬 선착장에 배가 도착하니, 마치 공항처럼 곳곳의 게스트하우스와 작은 호텔의 예약한 손님들 명패를 든 사람들로 즐비했다.  우리가 예약한 펄 인하우스 역시 약속대로 픽업을 보내 우리를 마중해 주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픽업차량을 찾으니, 한 켠에 세워둔 수레를 가리킨다. 프레쉬 코코넛 간판도 떼지 않은 것을 보니 손님이 없을 때는 여전히 코코넛을 파는 매대로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거기에 가져온 트렁크를 차곡차곡 올리고 숙소로 가는 길을 안내받으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어느 골목을 지나든 길 끝으로 이어지는 바다가 보이는 작은 섬의 길들을 함께 걸으니 왜  수레를 끌고 마중을 하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마푸지 섬 안 쪽의 길은 물론 섬을 빙 두른 외곽로 조차도 산호모래로 다져진  옛길이었다. 자동차나 오토바이도 굳이 필요치 않은 누구든 걸어서 섬의 끝에 쉬이 다다를 수 있는 작은 섬. 그러나 마을 어느 구석도 흐트러진 구석 없이 정갈하고 아름다웠다. 군데군데 산호로 지은 옛집과 새로 지은 건물이 너무 맞서지 않고 고루 섞여 조화롭게 새로운 변화를 맞이해가고 있었다. 우리끼리 GPS를 켜고 트렁크를 끌고 이 뜨거운 태양 트렁크를 끌고 걷기엔 무리였겠구나 하는 생각이 몽글몽글 피어날 즈음, 마침 숙소에 도착했다.  그토록 유명한 게스트하우스 섬 마푸지는 생각보다 작고 아담했다. 


 



몰디비안 게스트하우스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게스트하우스의 마당 안쪽도 역시 몰디브 전통가옥이었던 듯 깨끗한 산호모래가 깔려있다. 문을 열고 몇 발자국만 내디디면  맑고 투명한 몰디브 바다에 다다르는 바닷가의 고요한 집이었다. 잠시 마당에 기다리는 동안 한 청년 웰컴 드링크를 내어주고, 깨끗한 물수건을 준비해 준다. 패스포트 넘버를 비롯한 정식 체크인 서류가 나오고, 접수가 끝나니 그제야 방 키를 내어주었다.


우리가 묶을  방은 작은 마당을 빙 둘러 있는 네 개의 방 중 첫째 방^^  허름한 방문을 여니 뜻밖에 정갈하고 소박한 더불 룸이 준비되어 있다. 더운 날씨 속에 걸어온 손님을 위한 배려인 듯 방안은 이미 시원하고 쾌적했다. 깨끗한 에어컨에  평면 TV, 냉장고, 그리고 깨끗한 욕실까지 갖춘 작은 호텔급의 바닷가 더불 룸 가격은  약 5만 원, 문득 누구든 아름다운 몰디브의 바다를 만나고 누릴 수 있도록 집을 내어주고 게스트하우스를 열어준 마푸지 사람들에게, 고마움이 일었다. 



 

가난한 여행자에게도 공평한  몰디브의 바다 


마푸지가 배낭여행자들의 성지로 떠오른 것은 물론 바다 때문이었다.  비싼 리조트에 가지 않아도 몰디브의 바다를 고스란히 누릴 수 있는 섬이 마푸지라는 것을 몰디브 사람들도, 여행자들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언제든 문을 열고 나서면  수영할 수 있는 고운 백사장, 섬과 섬을 잊는 흰 모래톱이 길게 이어지는 투명하고 아름다운 해안은  리조트에 가지 않아도 혹은 갈 수 없는 가난한 여행자들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몰디브의 바다에 가 닿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스노클 장비를 들고 물속에 얼굴을 담그기만 해도 몰디브는 아름다운 산호의 정원과 그곳에 깃들어 사는 수많은 생명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물론 깊은 바다로 나아갈수록 아름다움은 한없이 깊고 넓어졌다. 





관광객의 바다, 마을 사람들의 바다


무엇보다 마푸지엔 배를 타고 나가지 않아도 해안에서 바다를 즐길 수 있는 두 곳의 아름다운 해안이 있었다. 하나는 섬 입구의 비키니 해안, 그리고 섬 뒤켠의 마을 해안이었다. 바닷가에는 마을의 공용 해안이니 비키니를 입는 것은 부두 쪽의 허락된 비키니 해안에서만 해 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그 바다에서 쨍쨍한 햇빛을 받으며 수영을 하는 마을 사람은 찾을 길이 없었다.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은 몇몇 관광객과 가족 여행자들 뿐.... 관광객 외에는 해안에 머무는 사람도 굳이 없어 그런 구분이 무슨 소용이랴 싶었건만 저녁이 되니 비로소, 그 말의 뜻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한낮의 바다가 관광객들을 위한 것이라면 저녁 바다는 마을 사람들의 것이었다. 

낚시를 하는 아이들, 수영을 하는 사람들.. 석양이 짙어질수록 바다에는 점점 더 사람들이 늘어났다. 낮에 관광객들을 태우던 모터보트 업체의 직원들은 마을 형이 되어  아이들을 태우고 바다를 달리고 밀물로 깊어진 방파제 앞에선 바닥가 만들어준 풀에 수영이 한창이다. 또 밀물을 따라 선셋 피싱을 하는 친구들이 조금씩 자리를 옮겨가며 무언가를 자꾸 낚는다. 뭐라도 잡히는지 자꾸 들여다보니, 플라스틱병에 낚싯줄을 감아 낚싯대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기 시작한다. 유창한 영어로 플라스틱병 낚싯대 만드는 법을 설명해주는 예쁘고 똑똑한 아가씨, 알루는 17살 소녀, 하지만 이미 어엿한 직업을 가진 마을 학교의 특수학급 교사라고 했다. 더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일주일에 이틀은 말레에 가서 공부하는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이기도 하다고고...  1천5백 명 남짓한 마푸지에 게스트하우스만 이미 80개가 넘어섰건만, 또 지어지고 있는 몇 채의 건물들을 보다가 궁금했던 것들을 알루에게 묻기 시작했다.


 "혹시 사람들끼리 조용히 살던 섬에 관광객들이 많이 오니까 불편하고 힘든 점은 없어요?"


"ㅎㅎ 사람이 많아지고 서로 문화가 다르니까 당연히 조금 불편하죠. 하지만 집에 손님이 오는데 불편하다고 멀리서 손님이 오는 기쁨을 포기할 수 있나요. 세계 곳곳에서 오는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 또 어업 외에는 일자리가 없던 청년들에게 할 일이 생기는 즐거움도 있어요. 하지만 문화적인 존중이나 종교적 존중 같은 것은 서로 더 노력해 가야 할 부분이라 생각해요"


비키니 금지라고 쓰여 있는 해안에서 한낮에 비키니를 입은 서양 여행자들을 보는 일도 마을 사람들에게 여전히 익숙해질 수 없는 낯설고, 당황스러운 일이라 했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여전히 즐겁고 신선한 활력소라는 알루 덕분에 함께 저녁 바다를 한껏 즐겼다. 선쎗 피싱은 여행자를 위한 일부러 개발한 여행 프로그램이 아니라, 더위를 피해 저녁거리를 마련하는 몰디브 사람들을 일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저무는 바다에서 마주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히잡을 쓴 채 그대로 바다에 들어와 수영을 즐기기 시작하는 한 무리의 여성들 모습이었다. 히잡을 쓰고 아무 장비도 없이 깊은 잠영과 유영을 오가는 그녀들의 자유로운 움직임이 펼쳐내는 거짓말 같은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하고 계속 따라가니, 환하게 웃으며 가족 소개를 해 주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시누이들까지 함께 온 가족의 여자들이 바다에 나왔다. 서로 통성명을 하고 어디 묶는지 이야기를 나누니 우리 게스트 하우스 바로 옆집 사람들이었다.   


 "작은 섬이라 자꾸 만날지도 몰라요" 하더니 까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바다에 살고 있다 해도 믿을 만큼 바닷속에서 자유로운 그 신비한 모습을 자꾸 따라가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히잡을 쓰고 수영하는 일이 불편하진 않나요?"

"히잡보단 구명조끼와 장비들이 더 불편하지 않을까요?ㅋㅋ"


그 말에 한바탕 함께 웃었다. 생각해 보니, 질문을 던지고 있는 우리는 구명조끼에 오리발, 물안경과 스노클까지 거추장스러운 장비를 잔뜩 갖추고도 바다에서 불편하게 떠 있었다^^


히잡을  쓴 채 수영을 한다는 일이 어떤 장애도 되지 않는 그녀들의 모습에 어떤 편견 하나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던 저녁, 그녀들에게 조심스레 다시 물었다.   


"비키니를 입으면 안 된다고 쓰여 있는데 오후 내내 마을 해안에서 비키니 입은 사람들을 보았어요.  여행자인 저희도 마음이 점점 마음이 불편해졌는데 마을분들은 어떠실지..." 

   

"그래서 우리가 매일 저녁 바다에 나오는 거죠. 몰디브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비키니를 입는 해안은 따로 정해져 있어요. 우리도 관광객들의 문화를 존중하니까요.

하지만 마을 해안은 이렇게 열려있기 때문에 관광객들도 우리 문화를 존중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만나면 이렇게 웃으며 잘 설명해 주고 있어요"    


다른 사람을, 다른 문화를 어떻게 만나 가야 하는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나누어야 하는지 그 어려운 경계를 지혜롭게 찾아가는 마푸지 사람들 속에서 다시,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문화를 만나는 법을 배운다.


매일 저녁 다섯 시 반이면 그 바다에 나와 그렇게 함께 수영을 즐기며 사람들을 만난다는 그녀들

그 자유로운 움직임의 한쪽 끝을 붙들고 함께 바다에 머문 시간은 몰디브에서 마주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서로를 존중하는 을 아는 몰디브 여성들


저녁을 지으러 집으로 향하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지는 해를 따라 숙소로 돌아오니 안쪽 마당엔 몰디브 청년 몇과 여자 청년들이 온통 웃음으로 그득했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번져 말을 걸어 인사를 나누니 말레에서 온 여자축구팀이라 한다. 일 년에 한 번 엠티를 하는데 이번엔 마푸지 섬으로 놀러 왔다고... 히잡을 쓴 여성들 모두가 직장인이면서 동시에 축구팀이라는 것이다. 너무 놀라운 자기소개에 눈이 동그래지니 다들 까르르 넘어간다. 


하룻밤 100만 원이 넘는 리조트에 가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몰디브를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여행의 길을 연 게스트하우스. 그것은 멀리서 온 여행자들에게만 새로운 여행의 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인공해안 외에는 수영할 곳이 없는 말레를 벗어나 아름다운 바다와 저녁을 즐기는 몰디브 여행자들의 웃음소리 속에서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작고 소박한 여행의 희망을 본다. 



몰디브에는 모히또가 없다. 


밤이 깊어지니 마당과 골목 곳곳에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와 웃음소리가 퍼지기 시작했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해 질 녘부터 움직이는 몰디브 사람들의 삶은 어둠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녁이 되었다고 여행자들이 깃들어 모히또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몰디브는 존재하지 않는다. 술을 팔지도, 먹지도 않는 모슬렘 국가이니 모히또를 마실 방도는 리조트에 가지 않는 한 딱히 찾을 길이 없다. 대신 저녁을 먹고 음식을 나누며, 술 대신 한 잔의 차를, 이야기와 노래를 나누는 몰디브식 저녁을 보내는 법을 배우고 익힐 일이다. 

저녁을 지으러 가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걸어 마을 한 모퉁이 오래고 허름한 식당에 깃든다. 삼십 분쯤 느긋하게 기다려야 나오는 저녁을 먹고, 아직 가보지 않은 골목길들을 헤아려 총총히 걷는다. 빨리 걸으면 한 시간 만에 섬 한 바퀴를 돌 수도 있는 작은 섬에 몇몇의 길들은 내일을 위해 아껴 두기로 한다.


1%의 육지와 99%의 몰디브를 제대로 여행하기 위해선, 

땅에서 천천히 걷는 법을, 바다에선 깊은 곳으로 나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천천히 만나는 법, 가만히 걷는 법, 바다를 만나는 법

진짜 쉼에 다다르는 법을 가르쳐 주는 여행자들의 섬, 마푸지에서 







몰디브를 여행한다면


1. 몰디브의 섬에선 아무데서나 비키니를 입을 수 없습니다. 게스트하우스가 생겨나며 마을에서 함께 결정한 공동의 바다에서만 수영복을 입어주세요. 


2. 몰디브에선 저녁에 술을 팔지 않습니다. 물론 공항에서도 통과가 되지 않습니다. 몰디브에 여행을 하려 계획한다면 몰디브의 고요한 저녁을 보내는 쉼의 여행을 잘 준비하길 


3. 몰디브 사람들의 게스트하우스와 로컬 투어리즘을 아름답게 발전시켜 갈 수 있도록 몰디브 사람들이 운영하는 숙소와 해양활동 업체들을 선택하고, 몰디브 음식을 맛보는 진짜 몰디 여행을 즐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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