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있어주세요
하지만 테일러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 그 누구와도.
그래서 결국, 모두 가버렸지. 테일러는 혼자 남았어.
너무 조용해서 테일러는 토끼가 다가오는 줄도 몰랐어.
토끼는 조금씩, 조금씩 다가왔지. 테일러가 따뜻한 체온을 느낄 때까지.
둘은 말없이 앉아 있었어.
이윽고 테일러가 말했어. “나랑 같이 있어줄래?”
토끼는 테일러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었어. 토끼는 테일러가 소리 지르는 것도 가만히 들어주었어. 토끼는 테일러가 기억해 내고…웃는 것도 들어주었어. 테일러가 숨고…상자에 다 넣어버리고…누군가에게 복수할 계획도 가만히 들어주었어. 그러는 내내, 토끼는 테일러 곁을 떠나지 않았어. 때가 되자, 테일러가 말했어. “나, 다시 만들어볼까?” 토끼는 고개를 끄덕였어.
“다시 해 볼래, 지금 당장!” 테일러가 말했어. 「가만히 들어주었어, 코리 도어펠드」 중에서
고등 아이들은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크고 작은 좌절들을 겪습니다. 여러 가지 경험 중에서 성적에 관한 이야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교실에서 아침부터 집에 갈 때까지 잠을 자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너무 깊은 잠에 빠져서 점심 급식도 먹지 않고 잠을 자고, 종례 시간이 되어서야 깨워서 집에 보낼 정도였습니다.
“선생님, 철수, 중학교 때 전교 1등이었어요~.”
“…”
교사로서 그렇게 먹먹한 순간이 또 있었을까 싶습니다.
중학교 때 전교 1등이었는데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깨우지 않으면 집에 돌아갈 때까지 깨어날 수 없는 아이.
그 자체가 충격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아이에게 있었던 일련의 과정들. 그 과정들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하나하나 물어서 알아낼 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아이의 사생활이 드러나는 일이니까요. 그 일이 있고도 아이는 수시로 잠을 자는 모습이 목격되었습니다.
아이를 불러서 상담해 보았습니다.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 뭘 잘하는지도 모르겠구요.”
“…”
상담을 계속해도 아이와 나는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아이가 스스로 깨닫고, 결심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렇게 잠을 자던 아이가 시험 기간에는 일어나서 시험 공부를 한다는 겁니다.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아인데, 뭘 잘하는지 모른다는 아인데, 하루 종일 잠자는 아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언가를 하더란 말입니다.
그리고 더더욱 신기한 것은 공부 외에 학급 친구들과 농구, 축구 등 다양한 운동을 즐겼습니다. 스포츠클럽 기간에는 학급을 위해서 한 종목을 맡아서 대표 선수로 뛰기도 하고, 체육 시간에 뻘뻘 흘리면서 운동장에서 뛰고, 점심 및 석식 시간에 식사를 마치고 농구하다가 학원 시간을 놓치는 일도 있었습니다. 학기 초 아이의 잠자는 모습을 보면서, ‘무엇이 이 아이를 이렇게 무기력하게 만들었을까?’ 걱정스러웠는데, 각도를 달리 보면 이 아이는 무척 건강해 보였습니다.
데생을 전혀 알지 못하던 고등학교 시절, 첫 번째 미술 시간에 선생님께서 「‘원’말고 ‘구’를 그려라.」라는 말씀에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음영처리를 해서 평면의 도화지에 ‘원’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미션이였습니다.
교사가 되어서도 아이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려고 나름대로 노력하지만, 학교 현장에 있으면서 ‘입시’라는 ‘일’을 수행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성적’으로만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이들을 ‘공부’라는 측면으로만 보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한의 가능성과 잠재력이 모두 묻혀 버립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교사로서 종종 범하는 실수. 아이들의 평균치를 생각하고, 그에서 조금 벗어나면 ‘지도하기 힘든 아이다’ 라고 치부하는 일이죠.
「아이들의 평균치」
가끔 부모님들이 상담하면서 많이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 애는 왜 그럴까요? 철수는 3시간은 공부한다는데, 우리 애는 게임만 3시간 해요.”
「우리 애가 왜 그럴까요?」
그럴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언제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생각 없이 게임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이 없는 아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은 생각이 너무 많아서 괴롭답니다.
그냥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만약 아무 생각도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라면, 웃지도 않을 것이고 친구하고 영화도 보지 않을 것이고, 친구들과 모여서 게임을 하기 위해 PC방에 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시험 기간에 마치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첫 시험 마치고 노래방에 가지도 않을 겁니다.
아이들은 집중이 안 되고 뭔가 마음이 복잡하니까, 자꾸 피할 곳을 찾아다닙니다.
방황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무의식에 봉인되어 있던 ‘울화’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려고 할 때가 있죠? 그때마다 바로 잡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즉각적으로 조언을 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오지 않나요?
하지만, 아이들은 이미 방황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잠시 쉬기로 마음을 먹은 아이들을 몇 마디 말로 돌이킨다는 것은 ‘미션 임파서블’일 수도 있습니다.
그저 잠시 옆에 있어 주세요. 그들의 마음에 귀 기울여 주세요. 아이의 또 다른 가능성을 믿고 가만히 지켜보세요. 아이들은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자신을 걱정하고 사랑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느 순간, 스스로 힘을 내서, 짧은 방황을 마치고 아이들은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