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학과 신교수의 식탁 일기
신혼 초 아내의 생일이 가까워지면 아내에게 어떤 선물을 사주어야 할지, 어디서 저녁을 먹어야 할지로 고민을 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내의 취향을 알지 못해 내 눈에 좋아 보이고 실용적인 것을 고른다고는 했는데 집사람은 선물 자체에만 감격하고, 막상 저의 선물은 잘 사용하지 않던(?) 기억이 납니다. 예를 들면 이브 생 로랑의 립스틱이라던가, 샤넬의 향수 등입니다. 립스틱 색이 피부톤과 맞지 않는다던가, 향수는 아내의 선호 향이 아닌 것들로 지금도 화장대를 지키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생일날 저녁식사도 마찬가지로 여러 군데 식당들을 섭외하고 다양한 식사자리를 마련했지만, 외식의 즐거움과는 달리 우리 부부의 둘 다의 식탐을 만족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푸짐하고 맛이 먼저인 제 취향의 식당들은 결혼기념일에 어울리지 않고, 아내 취향인 깔끔하고 정리된 분위기의 식당들은 언제나 약간 배고픈 듯(?) 정찬을 먹고 나온 기억이 있습니다.
어느 해 서로 바쁜 아내 생일에 둘 다 저녁도 못 먹고 마트에서 만나 스테이크용 등심을 사 와서 맛있게 구워 먹고 난 후로는 우리 집 아내 생일의 저녁식사는 두툼한 쇠고기 스테이크가 전통이 되었습니다.
신혼초 메인 포크와 나이프 등 커틀러리류도 구색을 맞추지 못하고, 와인도 맥주잔에 따라 마시던 시절이었지만 둘이만 있어도 재미있던 시절이라 더 맛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미각의 기억보다는 신혼의 싱그러움의 추억인 듯합니다.
이렇게 맛있는 '스테이크'는 동물이 가축화가 되어 육류의 생산량이 풍부해진 후에 발전한 요리입니다.
동물의 가축화는 약 1만 5천 년 전 늑대로 시작하여 동물 스스로의 진화와 인간의 육종기술과 사육방법으로 발전을 거듭하여 왔습니다.
인간이 가축화한 포유류는 단 14종류로 첫째, 개와 고양이와 같이 펫(pet)으로서의 기능을 하는 동물과 둘째, 말과 낙타 등 인간의 교통수단과 경작에 이용되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돼지, 양처럼 먹거리로의 기능을 하는 동물 등이 있는데, 가축화된 포유류 중 소는 고기와 우유를 제공하고, 경작에 이용되기도 하며, 온순한 성격으로 집에서도 길러지는 인간의 친구 역할도 하기도 하였습니다.
동물이 인간의 가축이 되기에는 여러 가지 필요조건이 있습니다.
첫 번째, '효율적인 사료(Efficient diet)'-가축화를 위하여 인간과 다른 사료를 먹는 것.
사자와 호랑이를 가축화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위험해서가 아니라 고기를 생산하기 위하여 고기를 먹어야 하는 가장 비효율적인 육류 생산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의 사료 전환율(FCR, feed conversion ratio)은 다른 동물들보다는 낮지만, 인간이 먹지 않는 풀(셀루로오스)을 사료로 이용, 반추위라는 독특한 소화기관으로 소화를 하여 당류로 소화하고 질소 화합물을 만들어 단백질을 생산합니다. 오직 반추동물들만이 풀을 먹고 고기와 우유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고성장 속도(Quick growth rate)' - 고기를 얻기 위한 빠른 성숙률은 가축화된 동물의 중요한 조건으로 돼지나 닭이 이에 해당합니다.
세 번째로는 '억류된 상태의 사육화(Ability to breed in captivity)' - 가축화가 된다는 것은 야생상태의 동물을 잡아서 길을 들이는 개념이 아닌 태어날 때부터 가축화가 된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가축화가 되어 인간의 생태계에 들어온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네 번째로는 '가축의 깨끗한 성향(Pleasant dispositio)' - 가축화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주위에서 항상 깨끗한 성향으로 먹는 습관과 습성이 위생적이어야 하고 인간에게 위해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다섯 번으로는 '온순한 성향(Tendency not to panic)'- 인간에게 늘 온순하고 쉽게 패닉이 오지 않는 동물이 가축화되기 수월합니다.
마지막으로 '계층적 구조(Social structure)' - 사회적 구조를 본능적으로 이해하는 집단생활에 온순하게 적응하며 인간에게 온순한 동물들입니다.
이 모든 조건을 가장 많이 가진 동물은 인간의 친구인 '개'이지만, 인간에게 단백질을 공급하는 측면에서의 최고의 동물은 단연코 '소'입니다. 소는 인류에게 고기와 우유, 치즈와 버터 등 중요한 먹거리인 단백질을 제공해온 고마운 동물입니다. 인간이 트랙터를 발명하는 19세기 이전까지 경작에 이용되는 소의 힘은 농사에 이용되기에 충분히 강하며, 인간에게 위해가 되지 않는 온순한 성격으로 인간에게 농업의 결과물들을 안겨주는 소중한 동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인도에 가면 '소'를 신으로 모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라스코(Lascaux) 동굴의 벽화에서 보듯이 인간이 소를 사냥하여 먹기 시작한 것은 문자가 발명되기 훨씬 이전, 선사시대 이전으로 추측됩니다. 라스코 벽화가 그려진 시기가 기원전 1만 8천 년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보아 인간은 소를 사냥하여 소고기를 먹었을 거라 추정됩니다.
고대 문명의 발달과 함께 소는 사회경제적 부의 척도가 되었으며, 보다 나은 소의 품종을 얻기 위해 육종과 좋은 종자의 선별을 하기 위해 육종기술을 발달시키기도 합니다.
트랙터의 발명 이전까지는 소는 인력의 대체품으로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1960년대에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농촌에서 소 한 마리를 하루 빌리는 값이 당시 인건비의 3배를 받았다 하니 소가 얼마나 귀한 대접을 받았을지 상상이 갑니다. 우리나라 농촌에 소를 가진 가정은 집안에 우사를 주방 옆에 만들고 사람처럼 짚으로 이불을 만들어 깔고 자는 귀한 몸이었습니다. 아들이 초등학교 하교 후 소가 먹을 풀을 베러 가는 모습과 베어온 풀을 소죽을 끓여 먹이는 어머니의 모습은 그 시절 농촌의 일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트랙터의 발명 이후 소는 노동력을 제공하는 역할보다는 고기를 많이 생산하는 역할로 돌아서기 시작합니다.
1848년 세계에 육우 소비의 큰 변화를 맞이하는 역사적 사건이 벌어집니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전쟁의 발발입니다. 이 전쟁에서 미국은 멕시코에 승리하여 '애리조나주부터 텍사스주'까지의 방대한 영토가 미국의 남서부 지방으로 편입됩니다.
초원으로 뒤덮인 소들의 천국인 남서부에서 미국인들은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카우보이들을 등장시킵니다. 멕시코 국경전쟁 이전까지의 미국은 지금과는 확연히 다르게 돼지고기를 선호하는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전쟁 이후 애리조나와 텍사스에서 생산되는 소고기들은 미국인들의 식탁문화를 바꾸어 놓습니다. 이때부터 돼지고기보다는 소고기를 선호하기 시작합니다.
돼지고기 대신에 소고기가 미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단백질 공급원으로 성장하면서, 전 세계 식품산업군의 가장 큰 시장인 '소고기 육류 시장(Beef market)'을 탄생시킵니다.
시카고는 미국의 식품시장, 곡류와 육류의 유통창고 역할을 하는 도시로 육가공 산업이 성장하자 일약 대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합니다. 육류를 가공할 수 있는 대규모 노동력이 집결하자 건축과 상점이 생겨나고, 도로와 전력 등도 정비됩니다. 일리노이주의 시카고는 소를 바탕으로 하여 사료시장과 우유와 유제품 가공공장, 버터와 치즈 시장 그리고 소가죽에 이르기까지 '소고기 마켓'은 거대한 다국적 기업의 형태를 지닌 회사들로 발전합니다. 자본과 인구가 모이기 시작하자 시카고는 20세기 이전까지 미국에서 뉴욕 다음으로 큰 도시로 성장합니다.
OECD의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육류 소비량 중 소고기는 25%로(돼지고기 38%, 닭고기 30%) 3위이지만, 총 생산 '가격'으로는 가장 큰 시장을 차지합니다. 새로운 시장에서 산업화된 소고기는 미국인들의 가장 사랑하는 스테이크로 거듭나고, '스테이크하우스' 프랜차이즈와 함께 전 세계인들의 식문화로 배달되기에 이릅니다.
일반적으로 동물은 다리와 목 근육이 가장 많은 일을 하기 때문에 가장 질긴 부위입니다. 발굽과 거리가 멀어질수록 고기는 더 부드러워지는데 목과 다리로부터 멀어진 부위인 등부분이 가장 맛있는 부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등심과 안심 부위입니다. 영어명으로는 로인(Loin)이라고 불리며, 써로인(Sirloin)과 텐더로인(tenderloin)으로 불립니다. 가장 비싼 부위이고 스테이크용으로 정평이 나있는 부위입니다.
그중에서도 Sirloin 부위는 영국의 제임스 1세 국왕이 1617년 이 부위로 만든 스테이크가 너무 맛있어서 이 부위에 귀족 작위를 내려 '등심의 귀족' 이란 뜻의 '써로인 스테이크(Sirloin steak)'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할 정도로 맛있고 비싼 부위입니다. 사실 이보다 더 귀한 부위는 안심(Tenderloin)으로 소고기 한 마리 식용부위 중 2%~3%만이 나올 정도로 귀하기도 하고, 육질이 부드러워 말 그대로 tender(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입니다. 그중에서도 안심의 아래 부위인 필렛 미뇽은 소 한 마리당 스테이크용으로 네 쪽 정도만 나오는 귀한 부위의 스테이크이니 가격이 비싸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겠지요!
등심과 안심을 합친 '티본스테이크(T-bone steak)는 T자 모양의 뼈를 양쪽으로 하여 큰 고기는 등심부위, 작은 고기는 안심 부위가 같이 붙어 있어 훌륭한 스테이크 부위를 동시에 먹을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이렇듯이 소고기도 참치와 같이 부위에 따라 가격차이가 많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쇠고기인 '드라이 에이지드 비프(Dry aged Beef)'는 냉장고에서 6주간 쇠고기를 말리면서 숙성시킨 소고기를 말합니다. 6주 동안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하고, 글라이코겐을 포도당으로 분해하여 부드럽기도 하고 고기 맛의 원천인 아미노산의 맛과 포도당의 맛을 극한으로 끌어올립니다.
드라이 에이징은 1~3도 온도와 70~85%의 습도, 그리고 원활한 통풍이라는 조건을 모두 갖춰야 하는 꽤나 까다로운 작업 입이기도 하고 소고기를 50% 정도 손실하기도 하지만 가격은 몇 배로 뛰어 귀한 스테이크 재료가 됩니다.
미국에서는 은행강도보다 드라이에이징 창고를 도둑질하는 것이 더 돈을 많이 번다고 할 정도로 드라이 에이지드 소고기는 값비싼 식재료입니다. 은행강도는 중형의 형벌을 받지만, 일반 창고를 도둑질하는 것은 훨씬 경량의 처벌을 받으니 여러 가지로 도둑들에게는 의미 있는 농담일 듯싶습니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소고기를 사랑하다 보니 과다한 소고기의 생산방식이 많은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소에서 내뿜어지는 메탄가스가 지구온난화를 재촉한다고 하며 공장식 생산방식으로 인하여 광우병의 피해를 일으키키도 하고, 무서운 식중독 균인 O-157 균등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습니다.
이에 제러미 리프킨은 그의 저서 '육식의 종말'에서 현대화된 소고기 산업의 해체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지속 가능한 육류를 생산'하기 위해 미국 실리콘 밸리에 위치한 식품기술회사인 '멤피스 미트(Memphis Meats)사는' 줄기세포로 고기를 배양하는 기술을 선보입니다.
2016년 1kg당 생산원가 5천만 원에 이르는 배양 고기로 만든 '미트볼'을 선보입니다. 현재 세상에서 가장 비싼 단백질인 멸종위기의 철갑상어알인 최상급 벨루가 캐비어(beluga caviar)의 최고가 캐비어 중에서도 가장 비싼 최상품 '블랙 골드'보다 비싼 가격입니다.
하지만 이 기술은 빌 게이츠와 버진 항공사 회장인 리처드 브랜손, GE의 잭 웰치 등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투자와 경영의 귀재들이 참가하여 1700만 달러를 투자받는 데 성공합니다.
2017년에는 1kg당 생산원가를 60만 원대로 줄이는 데 성공합니다. 2021년에는 상용화를 한다고 하니 콩고기가 아닌, 유전공학과 현대문명의 기술이 만든 줄기세포 소고기를 먹을 날도 머지않은 듯싶습니다.
스테이크는 가장 만들기 쉬우면서도 어려운 요리입니다.
두툼한 프라이팬을 가열하고 기름을 두릅니다. '치이익~!'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달군 팬 위에 고기를 얹습니다.
한쪽면을 넉넉히 익히고 윗면을 뒤집어 굽습니다. 고기 윗면에 핏물이 보이면 한번 더 뒤집어 살짝 핏기를 제거해 줍니다. 운이 좋으면 초보자도 아주 맛있는 스테이크를 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맛있는 스테이크를 얻는 과정은 운이 좋아서 얻어질 수도 있지만, 항상 맛있는 스테이크를 구우려면 수련과 노력을 동반합니다.
미세한 불의 조절과 조리 전 소고기의 온도와 접시에 올라갈 때까지의 조리된 다른 채소들과의 타이밍에 따릅니다. 접시의 온도는 말할 것도 없고 식사 공간의 온도도 중요합니다. 물론 같이 식사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한 요소이겠지요.
아내가 '오늘 고기 참 맛있다!'하여 '이렇게 좋은 시간을 같이 나눌 수 있어서 참 좋다!'라며 고마운 마음을 표현합니다.
요리는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기 참 좋은 기술인 것 같아 이 직업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