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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키너 Mar 05. 2018

오늘도 '돈까스'를 먹는다.

조리학과 신교수의 식탁 일기

오늘 저녁은 혼자 먹는 날이라, 간단히 먹을 요량으로 냉장고를 뒤지다가 돈가스 한 조각을 발견합니다.

'그래 오늘 저녁은 너로구나' 생각을 하고,  남아있는 화이트 와인 한잔을 마시며 저녁을 준비합니다.


돈가스를 먹는다는 행위는, 아마도 우리 시대의 루틴한 일상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자주 먹는 순위를 정하라고 한다면 라면 다음으로 많이 먹는 음식일 듯합니다.

오늘 저녁밥상은 냉동실에 남아있는 돈가스 한 조각을 튀기고, 쌀통에서 익어가는 아보카도와 여러 가지 채소를 곁들여 봅니다.



일본의 연와정(Rengatei, 煉瓦亭) 1899년 오픈한 일본의 노포이다.

돈가스의 역사는 로마시대부터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기에 빵가루를 묻히고 튀겨서 로마군에게 제공되었다는 기록이 문헌으로부터 남아 있습니다. 빵을 주식으로 하는 유럽에서는 먹고 남은 마른 빵을 처리해야 하니 빵가루로 활용하기도 하고, 수프를 만들 때 쓰이기도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고기에 빵가루를 묻혀 튀기는 커틀렛 형식의 요리는  부피감도 있고, 맛도 일품인 요리로 탄생되어 유럽에서 인기 있는 형식으로 발전합니다. 각 나라마다 그 나라에서 생산되는 고기나 생선을 튀겨먹는 요리가 커틀렛의 원조입니다.

 

이탈리아는 '코틀레타(cotoletta)'라 부르고, 프랑스는 다진 고기와 감자를 튀겨먹는 '크로켓(croquettes)'이라 하며, 영국에서는 '커틀렛(cutlet)'이라 불리며, 오스트리아에서는 '슈니첼(schnitzel)'로 불리는 우리가 익히 들어본 요리로 자리매김합니다.


일본에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일 때 들어온 '커틀렛(cutlet)'은 일본어의 외래어 표기인  '돈카츠 레츠'로 불리고 축약 현상으로 인하여 '돈카츠'가 됩니다. 우리나라에는 '돈까스'로 최종 정착합니다. 언어의 변천사는 참 재미있습니다.

메이지 시대 일본은 서구화를 빠르게 진행합니다. 식생활 역시 마찬가지로 전통 일본의 식생활에서 서구화로 빠르게 전환합니다. 이때 튀김요리도 빠르게 발전합니다. 커틀렛이 도입되면서 '카츠 레츠'라는 쇠고기 튀김이 인기를 얻기 시작합니다.

돈카츠는 1899년에 일본 도쿄 긴자의 Rengatei(煉瓦亭, 연와정)라는  도쿄 식당에서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연와정은 돈카츠 이외에도 우리가 알고 있는 오므라이스와 하이라이스 등을 만든 식당으로도 유명합니다. 1930 년대에는 "돈카츠 (tonkatsu)"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돈카츠는 우스터소스에 찍어 먹는 밥반찬으로 일본에서 대히트를 하고 카레라이스 역시 비슷한 시기에 도입되어 일본의 양대 산맥 메뉴에 등극합니다.


이 시절 일본에서는 여학교에 가정 시간에 서양요리수업 시간을 만들고 그 시대의 고급요리인 '갓포 요리(割烹料理, 할팽 요리)를 가르쳤습니다. 갓포 요리들은 당시에는 고급 요리였지만 지금은 경양식이 되어 일본인들의 일상식이 되었습니다. 돈카츠와 고로케, 카레라이스와 오므라이스는 '화양 절충(和洋折衷)'의 요리로 오늘날 일본 가정식의 대표 요리가 됩니다.  

갓포는 '칼과 불'을 칭하는 말로 칼로 재료를 잘 자르고 썰고 다져서, 준비된 재료를 불로 조리한다는 뜻입니다. 칼등이 구부러져 있는 일본식 주방용 칼을 산도쿠(三徳, 삼덕) 나이프이라고 부르는데, 삼덕은 갓포의 '갓(割, 할)'의 의미인 자르고, 썰고, 다지 칼의 세 가지 덕(徳)을 이야기합니다.

지금은 갓포 요리는  일본음식문화에서 일본의 정식요리인 가이세케요리와 선술집 요리인 이자카야의 중간 선상에 위치합니다. 돈카츠는 그 시절 갓포 요리로 완전한 일본식 정식도 아니지만 선술집 요리도 아닌 고급 음식으로 일본인들에게 전파됩니다.  



성북동_금왕돈까스


일제 강점기에 전해진 돈까스가 우리가 느끼는 일상이 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 입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자 양돈 산업화의 성공으로 돼지고기의 수급이 안정화되기 시작합니다. 삼겹살과 제육볶음을 많이 먹는 우리나라에서는 '돼지 등심과 안심'이 늘 찬밥신세였습니다.  돈까스는 이런 고민을 한방에 해결해 줍니다. 전국 초, 중, 고, 대학교까지 급식의 가장 인기 있는 메뉴가 되면서 양돈협회 분들의 고민을 한방에 날려 줍니다. 이제는 돈가스가 특별한 음식이 아닌  일상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평범한 메뉴이지만, 돈가스는 발전은 요즘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돈가스 하면 우리에게 익숙한 남산'왕'돈가스가 있지만 왕돈가스는 이제 옛말입니다. 제가 요리사 신입시절 정년을 앞둔 과장님들의 술자리에서 옛날 얘기해주실 때, 누가 똑같은 양의 돼지고기를 가지고 넓은 돈가스를 만드는지가 기술자를 가리는 변별력이었다고 한 기억이 있습니다. 이제는 돈가스의 넓이가 아닌 두께의 시대입니다. 말 그대로 '양보다 질'입니다.

돈가스의 고기를 두껍게 하는 것은 기술이 필요로 합니다. 고기가 얇을수록 밀가루, 달걀, 빵가루로 이루어진 튀김옷이 잘 붙어 있습니다. 하지만 고기가 두꺼워질수록 고기의 수분으로 인하여 튀김옷이 잘 떨어집니다. 2000년대 홈쇼핑 시대에 들어서 돈가스 고기의 두께가 7mm인 돈가스가 업계를 평정합니다. 고기 7mm의 돈가스를 만들려면 우리가 아는 밀계빵(밀가루, 계란, 빵가루)으로는 돈가스를 튀길 때 고기에서 나오는 수분으로 인하여 튀김옷이 다 떨어집니다. 베터(batter, 반죽 옷 ) 전쟁이 시작되고 공장식 돈까스 생산업체들과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고급화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돈가스가 2cm의 두꺼운 고기가 되려면 드라이 에이징(Dry aging) 기술과 베터 믹스의 기술력이 필요로 합니다.              

           

 일상의 메뉴인 돈가스에도 우리가 모르는 이런 치열함이 숨어 있는 걸 보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참 치열하구나'라고 생각합니다.



1970년대, 제가 어릴 적 어머님이 경양식집을 하셨던 터라 그 당시에는 귀한 음식이었던 돈가스, 함박스테이크, 생선 까스등은 자주 접하게 되는 익숙한 음식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주방에서 주방장 삼촌과 함께 마른 식빵으로 빵가루를 갈고, 달걀물 풀어 빵가루를 입히는 주방에서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르기도 합니다. 마요네즈에 피클과 양파를 넣고 타르타르소스를 만들고, 하이라이스 소스를 끓이는 향은 아마 저의 첫 주방의 기억과 경험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때의 아름다운 기억이 요리는 재미있고, 즐거운 일이라고 여겨 요리를 업으로 삼고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추억만 남아 있을 뿐 주방장 삼촌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진 않지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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