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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거스 Dec 17. 2022

기계공학부 추가 합격

모든 것의 시작

  나는 새천년이 도래한 2000년에 대학을 간 00학번이다. 부산 모 사립대 멀티미디어공학부에 합격했으나, 추가 합격으로 국립대 기계공학부에 입학했다. 운이 좋다면 좋은 거겠지만, 동기들 중에서도 꼴찌 그룹에 속했다는 얘기다. 내 인생에 그렇게 몇 번 마지막 문을 닫은 추가합격의 기회가 있었다. 


  내 합격 소식을 듣고 이모 댁 둘째 오빠가 한마디 했다. '근데 여자가 공대 가서 뭐하게?' 그런 말 한 번만 들을 줄 알았다. 대학 가서 같은 과 선배에게도 들었다. '근데 여자가 공대 졸업해서 뭐 할 거 있어?'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청개구리 같은 나의 심기를 제대로 긁었고, ‘그래, 과연 앞으로 내가 뭐가 될지 두고 봅시다!’라는 심정으로 대학 생활을 했던 거 같다. 왜 여자는 공대에 가면 안 되는가?!     


  IMF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생활고 때문에 어머니는 내가 고등학교 3년 때 취업반으로 가길 원하셨다. 친구들은 다 대학 가는 인문계 고교에서 나만 취업반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학비가 싼 국립대를 간 덕분에 어려운 형편에도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었다. 그 추가합격이 없었다면, 아주 힘든 대학생활이 되었거나 중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내게도 꿈은 있었다. 있었던 것 같다. 막연하게 그때는. 멋진 공학도가 되어 기술발전과 국가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순진한 신념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때는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은밀히 남몰래 내가 꿈꾸던 과는, 국어국문과 혹은 역사학과였다. 소설과 역사를 좋아하던 내게 그 세계는 정말 꿈과 같았다. 하지만 돈이 안 된다는 부모님 말씀에 왜인지 선선히 소망을 접고 나는 공대로 진학했다. 공학도가 되는 것도 간지 나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므로. 가진 건 없지만 멋지다는 건 중요했다. 


  우리 때 수능 외국어영역 만점자는 유명 사립대학의 관광경영학부 4년 장학생으로 갈 수 있는 특차 제도가 있었다. 수능 당일 마지막 4교시 외국어영역 시간에 한 문제를 남기고 무려 20분이 남았었다. 근데 그 마지막 문제를 읽고 또 읽어도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 한 지문에 여러 문제가 나오던 독해 문제였는데, 글의 분위기를 묻는 질문이었다. 답이 아련한 향수 같은 거였는데, 고민 끝에 찍은 건 정 반대의 답이었다.

  나는 그 한 문제를 틀려서 외국어영역 만점을 받지 못했다. 시간도 많이 남았고, 식은 죽 먹기처럼 풀던 유형이었는데, 왜 그리도 눈을 감은 것처럼 그 문제의 맥락만 보이지 않던지.


  그래서 운명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호텔리어가 된 내 모습은 상상하기 힘드니까. 그 한 문제를 틀렸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 세상의 나쁜 일이 모두 나쁜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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