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탈북자의 아이가 미국대통령되다(19)방송인터뷰-11

미군 병사 출시 험프리가 한반도 지도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다.

by 버드나무

시각장애인 현석 등 탈북자 인터뷰를 미국 방송국 운영자로서 진행하기 위해 한국전쟁 때 사용하던 한반도 지도를 다시 꺼내어 보고 있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으로 참여했던 험프리는 한반도 지도를 바라보면서 당시 인천상륙작전 후 기세를 몰아서 북한을 완전하게 한국군과 유엔군이 점령했었다면 한국은 분단되지 않았을 것이고 한반도 전체에 통일 한국이 세워졌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지금도 험프리의 가슴에 남아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 성공 후 기세를 이어서 한반도를 완전히 자유 진영이 점령해서 통일 한국이 되었다면 이번에 북한을 탈출한 시각장애인 현석 등 탈북자 같이 수많은 북한 사람들이 수십 년 이상 고통을 겪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미군 병사 출신 험프리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역시 세상의 모든 일은 기세가 오를 때 해 치웠어야 한다는 생각이 미군 병사 출신 험프리의 가슴에 강렬하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지금 한국전쟁 때 수십 년 전에 사용하던 한반도 지도를 보고 있는 미군 병사 출신 험프리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은 후 그는 압록강 근처에서 승리의 기쁨이 있은 후 중공군의 참가로 한국군과 유엔군이 다시 남쪽으로 퇴각하던 상황을 생각하게 되었다.


중공군의 전격적인 투입으로 유엔군과 한국군은 남쪽으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고, 이때 수많은 북한 사람들을 남쪽으로 데리고 갈 것인가 그들을 포기하고 군인들만 퇴각할 것인지가 논란이 되었다.


자유를 희망하는 수많은 북한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을 듯 남쪽으로 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다행히 북한 사람들을 같이 데리러 가기로 결정이 되었고, 미군 병사 험프리가 운행하는 배에 많은 북한 사람들을 태울 수 있었다.


미군 병사 험프리는 몸은 힘들었지만 수많은 북한 사람들을 구하는 배를 험프리 자신이 운행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사명감을 갖고 기쁜 마음으로 배를 운행하던 그날 느낀 감정을 다시 느끼고 있었다.


당시 미군 병사 험프리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운행을 했던 항로가 다시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군인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북한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 배를 운행해야 했던 미군 병사 험프리에게 배의 무게는 매우 무겁게 느껴졌지만 수많은 북한 사람들에게 자유의 공기를 마시게 해 준다는 생각에 험프리의 마음은 너무나도 가볍게 느껴졌던 당시의 마음을 마치 어제 일인 것 같이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험프리에게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압록강 진격한 후 후퇴하지 말고 한국을 통일시켜서 통일 한국으로 만들지 못한 것이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나마도 수많은 북한 사람들을 험프리 자신이 직접 운행한 배로 싣고 와서 그들에게 자유의 공기를 마시게 해 준 것으로 통일 한국을 만들지 못한 아쉬움을 작게라도 달랠 수 있었다.


미군 병사 출신 험프리가 한국전쟁 당시 수십 년 전에 북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운행한 배를 운행할 당시 험프리가 사용했던 한반도 지도 위로 한국전쟁 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미국 방송국을 설립하고 운영자가 된 미군 병사 출신 험프리가 통일 한국이 되지 못한 아쉬움에 흘리는 눈물 몇 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수십 년 전 지금 바라보고 있는 오래된 한반도 지도를 사용하면서 험프리가 참전했던 한국 전쟁 때 한국이 통일 한국이 되었으면 미군 병사 출신 험프리는 지금 수십 년이 흘러서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 일행에 대한 인터뷰를 하지 않았도 되었을 것이고 수많은 북한 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 인권을 탄압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험프리의 가슴에 계속 메아리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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