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빛 눈물이 남강을 채우고
진주성 성벽엔 한(恨) 서린 영혼
그 통곡이 내 가슴을 저민다.
마치 냉면의 시린 국물처럼
1593년 진주성은 다시 일본군에게 포위되었다. 1년 전 진주대첩의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일본군은 대규모 병력을 동원했고, 성 안에는 피난하지 못한 군인과 백성들이 함께 남아 있었다. 전력의 차이는 분명했고, 전투는 시작부터 불리한 상황이었다. 결국 진주성은 함락되었다.
함락 이후의 상황은 전투라기보다 살육에 가까웠다. 저항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까지 공격의 대상이 되었고, 군인과 민간인의 구분은 사라졌다. 생존 자체가 의미를 갖기 어려운 시간이 이어졌고, 도시는 빠르게 기능을 잃었다. 제2차 진주성 전투는 하나의 패전이 아니라, 대규모 희생이 발생한 사건이었다.
남강은 그 사건을 지나온 공간이다. 강물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지만, 많은 생명들이 그곳을 마지막으로 통과했다. 진주성에 남은 것은 승패의 기록이 아니라, 전쟁 속에서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의 흔적이다. 대부분의 이름은 역사 속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전쟁은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삶을 중단시킬 수 있으며, 그 과정은 기록으로만 정리된다. 제2차 진주성 전투는 그 구조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 있다. 감정적 평가보다, 그런 일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점 자체가 오래 기억될 필요가 있다.
* 2025년 제74회 개천예술제 디카시 공모전 낙선 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