휙휙 쪼옥, 한 잔
휙휙 쪼옥, 두 잔
휙휙 쪼옥, 세 잔
휙휙 쪼옥, 네 잔
휙휙 쪼옥, 다섯 잔
휙휙 쪼옥, 여섯 잔
회의 시작 전, 팀 막내가 우리들을 위해
탕비실에서 커피 여섯 잔을 타고 있다.
예전에는 회의를 할 때마다 커피를 타 오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보통은 여직원이거나 팀 막내였다. 지금처럼 각자 알아서 커피나 차를 타 먹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회의가 잡히면 자연스럽게 누군가가 탕비실로 향했다.
우리 회사에도 그런 막내사원이 있었다. 회의가 있을 때마다 그는 묵묵히 탕비실로 가서 종이컵을 줄 세워 놓고 믹스커피를 탔다. 선배들이 "커피 좀 부탁한다"는 말을 하면 별다른 표정도 없이 "예, 알겠습니다." 하고는 늘 같은 일을 반복했다. 불평도 없었고, 귀찮다는 내색도 없었다. 그냥 그 팀의 작은 관습처럼 이어지던 풍경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팀의 한 선배가 잠깐 볼일이 있어 탕비실에 들렀다. 회의 시간이 가까워서인지, 아니나 다를까 막내사원이 또 커피를 타고 있었다. 종이컵 여러 개에 뜨거운 물을 받아 놓고 믹스커피 봉지를 하나씩 뜯어 넣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뭔가 이상했다. 믹스커피 봉지를 뜯어 컵에 털어 넣은 뒤, 그 봉지를 버리지 않고 그대로 들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봉지 끝을 이용해 종이컵 속 커피가 잘 섞이게끔 휘휘 저었다.
여기까지는 별 문제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다음 장면이 문제였다. 그는 그 봉지에 묻은 커피를 입에 가져가더니 쪼~옥 빨아먹는 것이었다. 선배는 잠시 눈을 의심했다고 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장면은 그다음이었다. 막내는 방금 빨아먹은 그 믹스커피 봉지를 다시 다른 종이컵에 넣어 커피를 휘휘 저었다. 그리고 또 봉지 끝을 자기 입에 가져가 쪼~옥 빨았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세 잔...
회의실에 들어갈 모든 커피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종이컵 속 커피는 모두 같은 과정을 거쳤다. 믹스커피, 뜨거운 물, 그리고 막내의 정성스러운 저어 주기, 거기에 덤으로 그의 입 속에 들어 있던 아밀라아제까지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갔다.
물론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잠시 뒤 막내가 들고 온 커피를 받아 들고는 아무렇지 않게 한 모금씩 마셨다. 그 선배는 그날 이후로 회의 때마다 커피를 직접 타 먹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회사의 회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이제는 회의시작 전 어느 누구도 대신 커피를 타 오지 않는다. 각자 탕비실에 가서, 타인의 아밀라아제가 섞이지 않은, 오로지 자신만의 커피를 만들어 마시는 바리스타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