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연차 일수, 뭣이 중한디!
- 직장생활을 하면서 보고들은 일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노동관계 법령 및 사회적 인식의 변화 등으로 인해 조직문화나 제도가 바뀌는 상황을 현장에서 마주하게 된다. 그 일례가 바로 연차 사용이다.
근로기준법 제60조에서 연차 유급휴가에 대해, 1년간 80퍼센트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는 15일의 유급휴가를 주도록, 1년 미만 근로자에게는 1개월 개근 시 1일의 유급휴가를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연차에 관한 내용은 2018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발전적 변화를 맞았다. 개정 전에는 기존에 1년 차에 발생한 유급휴가를 사용한 경우(최장 1년에 11일), 2년 차에 쓸 수 있는 연차 유급휴가일수란 15일에서 그 사용 일수를 공제한 만큼인 4일(15일-11일=4일)이었다. 그 사실을 확인한 2년 차 때 매우 뜨악하며 씁쓸해 했었던 기억이 난다. 즉, 입사 후 2년 도합 최장 15일의 유급휴가가 부여되었다.
그러던 것이 2018년 근로기준법 제60조 제3항이 삭제되면서, 1년 차에 출근율이 80% 이상이어서 11일의 유급휴가를 이미 사용한 경우라도, 2년 차에 별도의 15일의 유급휴가가 부여되게 되었다. 즉, 개정 후 2018년 경력직 또는 신입으로 입사하신 분들부터는 입사 후 2년 동안 도합 최장 26일의 유급휴가를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때 얼마나 진심으로 부러워했던가!
법적으로 사유 불문하고 당연히 쓸 수 있는 유급휴가권, 즉 개인의 권리라는 인식과 워라밸의 중요성이 사회적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면서, 몇 년 전부터 연차휴가신청서에 사유를 적는 란이 없어지기도 했고, 회사에서 관리자들에게 연차휴가 사유를 되도록이면 구두상으로도 묻지 못하도록 교육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팀원들의 연차휴가 사유를 알고 싶어 하는 꼰대(?) 같은 상사가 아직도 있기 마련이라, 사내변호사의 입장에서 슬며시 또는 은근히 그런 행위가 바람직하지 않음을 설명해 주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내가 정작 하고 싶은 얘기는 여기에서 더 나아간다. 사용할 수 있는 연차사용휴가 일수가 모자라더라도 배려를 당부하고 싶은 부분이 꼭 있어서다. 어쩌다 보니 이전 글 '이직기'에서 밝혔듯, 현재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4번째 회사를 다니고 있다. 평생직장 개념으로 수십 년 간 한 회사에서 근속하신 직장인 또는 공무원 조직에 오래 헌신한 분들은 잘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변호사들의 이직은 매우 활발해서 나의 이직 횟수가 동기들 평균 이하 또는 한 때는 한 직장을 가장 오래 다닌 사람인 때도 있었음을 밝힌다.
아무튼, 회사를 옮기다 보니, 본의 아니게 앙숙인 관계들과 그 사정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 여럿 모인 회사라는 조직에서 일을 하다 보면 당연히 의견차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가끔 다툼이 발생하기도 하고 화해나 또는 적당한 무마로 넘어가기도 한다. 그런데, 돌이킬 수 없는 앙숙이 된 관계가 두 회사에서 있었다. 모두 상(장례) 전후의 연차 사용 때문이었다.
먼저, A라는 회사에서는, a팀장님이 계셨는데,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할머니가 손자, 손녀들을 키워주셨다고 한다. 그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여, 놀란 마음에 경황없이 바로 지방으로 내려갔는데 인사팀장님께서 전화를 걸어 연차 휴가 사용신청을 하고 내려가지 않았다 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다투게 되었고 이후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았다고 한다.
두 번째, B라는 회사에서는, 같은 팀 팀원의 부모님 한 분이 돌아가셔서 상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지친 마음에 휴가를 더 쓰고 싶어 했으나 연차를 계산하는 과정에서 1일이 남았네, 모두 소진했네 하면서 다툼이 었었고 이후 팀원이 실제로 휴가를 쓰면서 무단결근 등의 이야기가 나오고 회복 불가능한 관계가 되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는 타인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가 부족한 것에서 기인한 것이라 판단되었고, 관련 법과 제도를 형식적으로, 어쩌면 너무 원칙적으로만 적용하려다가 그런 상황을 맞게 된 것으로 보여 안타까웠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취업규칙 또는 단체협약에서 (다음 연도) 연차 당겨쓰기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 그리고 사용 가능한 연차일수를 초과하여 사용하고 퇴직하게 되는 경우 인사팀에서 연차휴가수당에서 초과일을 제하여 퇴직 당월 급여를 정산 지급하는 등으로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인사팀에서 하는 일이다.
그러니, 직장 생활을 하며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에게 당부를 드리고 싶다. 가까운 이들의 상(장례)과 관련된 연차 사용에 크게 토를 달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이다. 내가 상(장례)을 당하는 반대의 상황이 될 수 있음을 깨닫고, 그들의 마음을 좀 더 따뜻하게 헤아려주기를 진심으로 부탁드린다.
연차 일수, 그 까이 꺼 뭣이 중한디!
*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