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을 읽고 깨달은 것

<도구와 기계의 원리> - 세실 쥐글라

by 박현주
<도구와 기계의 원리> 중 한 페이지

초등학생들이 보는 책을 읽고 감명을 받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특히 최근에 나는 좀 더 어려운 책을 찾고 있었기 때문에(기존 사고를 벗어나기 위해 그동안 내가 꺼려했던 책들을 읽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볼 책의 범주에서는 상당히 멀었는데도 이 책을 보게 된 계기는 올 초에 우연히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란 책을 읽으면서 였다.


그 책에는 저자 김하나와 황선우의 한 집에서 동거를 하며 겪은 에피소드가 담겨 있는데 거기서 생활 방식이 다른 룸메이트에게 감탄하며 책장에 <도구와 기계의 원리>란 책이 꽂혀 있는 것을 언급했는데 어디에 꽂힌 건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래도 글쓴이가 감탄했던 것처럼 나도 그 룸메이트의 집을 관리하는 능력에 놀랐었던 것 같다. 작년 이맘때쯤 미니멀 라이프에 꽂혀서 안 그래도 집을 조금 더 단순하게 유지하는 데 관심이 있던 차에 책 이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내가 일고 싶은 책 목록에 들어가 있었는데, 우연히 강남역에서 시간이 나서 들어간 중고서점에 이 책이 있길래 구매를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책이 아동용 서적에 꽂혀있었고(아동용 책이었고), 아무리 봐도 이 책을 언급을 했을까 싶어서 나중에 한번 더 검색을 해보니 같은 이름으로 또 한 권의 책이 검색되었는데 내 생각엔 아무래도 실제로 이전에 책에서 언급한 그 책은 내가 사지 않은 책이었던 것 같다. 그 책도 아동용 책이기 했지만 내가 산 것보단 좀 더 설명과 디테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의도치 않게 아동용 책과 원래 사려고 했던 책과 다른 책을 사게 되었는데 서점에서 언뜻 보았을 때는 재밌겠다 생각을 했지만 막상 읽어보니 생각보다 놀라운 부분이 많았다.


이 책이 놀라운 이유는 웬만한 어른들도 대답할 수 없는 하나의 궁금증에서 시작되는 질문을 전체 구조를 알려주면서도 쉽게 설명해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전기가 우리 집까지 어떻게 들어오는 걸까?' 물으면 집 안의 콘센트부터 시작해서 땅속에 연결된 전선을 보여주고 케이블이 변전소까지 연결되었다가 변전소는 다시 송전탑에서 전류를 받아오고 송전탑의 전류는 수력 발전기의 터빈이나 풍력 발전, 원자력 발전 등 여러 발전기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까지 하나의 그림으로 알려준다.


챕터도 집, 도시, 이동수단, 놀이, 주방, 멋 내기로 나누어서 다양한 상황에서의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고, 하수처리나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법 재활용한 플라스틱은 어디에 쓰이는지 굉장히 설명이 잘 되어 있었다. 물론 내가 당연히 알아야 하는 부분을 모르고 있는 걸 수도 있긴 한데 모든 책은 어떤 나이에만 읽어야 하는 기준이 아니라 자기 수준을 찾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맨 처음 요즘 내가 어려운 책을 찾아보고 있다고 말한 것과 조금 모순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내 수준보다 어려운 책을 읽어보는 것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처음은 어렵겠지만 이해했을 때 시야를 넓힐 수 있다는 가치가 있다. 그러나 보통은 내 수준에 맞는 책을 잘 찾아야 하는 것 같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책을 읽는 것은 실제로 이해도 하지 못할뿐더러 읽었기 때문에 나는 이런 책도 읽는 사람이란 착각을 할 수도 있고 결국에는 그 분야나 책을 읽는 것 자체에 흥미가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모든 사람들이 모든 분야와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특정 환경과 상황에 따라 제대로 접하고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선택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그 분야나 학문이 나와 맞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지식이 나와 TPO (Time-Place-Occasion, 시간-장소-상황) 맞지 않았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그 이유로 살면서 꽤나 중요했고 앞으로도 중요할 수 있는 것들을 배우지 못했을 수도 있다.


때때로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것들을 모르는 어른들을 만날 때가 종종 있다. 그건 그들이 그런 사람들인 아니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배우지 못한 이유는 이미 스스로 그 단계를 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수준에 맞는 배움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이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 하기보다는 어떤 순간에라도 수준에 맞는 걸 배우는 시도와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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