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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주 Jan 03. 2021

2020년 남겨두고 싶은 글

일기장에서 발췌

이미 새해가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덜 마무리한 2020년을 둘러보다가 매년 일기는 쓰는데 좀처럼 다시 열어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좀 새로운 방식으로 한 해를 회고해보고 싶었는데, 일기장을 훑어보다 내가 쓴 기억조차 나지 않는 오묘한 글을 발견하고 표현이 재밌는 글이나 개인적으로 남겨두고 싶은 글들을 꼽아보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일기이므로 개인적인 이야기도 포함되어있고 (항상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긴 하지만 새삼) 개인의 취향이니 마음에 들지 않을수도 있다.

순서는 시간순이다.




루티너리

루티너리는 와인을 만들어내는 와이너리처럼 좋은 루틴과 습관을 만드는 곳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고, 좋은 품질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숙성, 정제 과정을 거치는 와이너리처럼 좋은 루틴을 숙성시키기 위한 도구와 환경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일기장에서 아이디에이션을하며 기록해뒀었다)


굿모닝

좋은 아침을 보냈고, 좋은 저녁을 보내는 중이다. '좋은 아침~' 이란 상투적인 말이 좋다. 그것이 상투적으로 들리지 않았을 때 정말 좋은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굿모닝이란 어감이 참 좋게 느껴진다.

굿모닝은 굿나잇을 내포하고 있다. 좋은 저녁을 보낸 뒤 맞이하는 아침은 좋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좋은  아침을 보낸 하루의 저녁은  좋을 확률이 높다. 니체의 영원회귀가 생각난다. 하루가 하루에 영향을 주며 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긍정의 마음을 담은 영원회귀다. 내 식대로의 표현이다.


관계

좋은 사람과 하는 대화는 가슴 벅차게 기쁘고 영감을 주는 무언가가 있다. 물질적인 것보다 이런 게 정말 값진 게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눈이 반짝이고 온몸의 세포가 살아나는 이 느낌은 사랑이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감정을 주지 않는 걸 보면 그냥 사랑이라고 하기엔  더 구체적인 무언가가 있다. 걔 중엔 돌아보면 일방적인 경우도 있고 상호적인 것도 있었다. 일방적인걸 당시에는 일방적이라 생각지 못했던 건 결이 너무나 닮아 있어 그 결이 내 결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건 다시 생각해보면 나르시시즘에 가까웠다. 내 것을 비춰주는 상대를 보며 내가 사랑하는 나의 모습을 더 잘 상기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상호적인 사랑은  오롯이 그 사람의 그 자체였고, 나는 그 빛으로 인해 더 밝아지고 나아갈 에너지를 얻곤 했다. 어쩌면 그건 선망과 존경이었고 경외감이었다.


일회용

한 사건에 대한 행복이 얼마나 빠르게 사그라드는지를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최근 행복할 일이 많았단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허무하게도 영원하지 않고 같은 감정을 느껴보려 해도 일회용인 것처럼 같은 인풋으론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행복한 감정이 가고 나면 찾아드는 허무함은 무기력도 같이 가져오려 했다. 많은 사람들이 숱하게 말하던 성공 했다고 무한정 행복하지 않는다는 말이 왜 벌써 이해가 되는 걸까. 과정에 의미를 가져야 함을 다시금 깨달았다.


부모님

졸업하고 사업을 결심하고 실행한 지 4년이 지났다. 부모님의 재촉이 심해지면서 그동안 한 일과 보낸 시간을 다시 돌아본다. 처음엔 어디서 무슨 얘길 듣고 와서 저렇게 조급해할까 생각이 든다. 오전에 아빠까지 전화 와서 언제 자신을 먹여 살리실 거냐며 이야기하는 게 늘 하는 얘기로 넘어가려 했는데 뭔가 더 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신파극 시나리오로는 뻔한 효도 하려고 보니 이미 너무 늦어버린 이야기가 떠오르면서 혹시 하다 얼마 전 문득 엄마가 아무도 안 아파서 얼마나 다행이냐며 얘기한 게 떠올라 안심했다. 그런데 혹시라도 두 분 중 누구라도 몸에 이상이 생기면 나는 얼마나 흔들릴까. 그건 얼른 취업하란 잔소리보다도 겪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잔소리는 별로 큰 타격을 주는 것도 아니다. 내가 하고 있는 최선을 다하는 상황에서 잔소리는 오히려 촉매제이고 각성제다. 추진력이다. (말은 더럽게 안 듣는 딸이다) 아무튼 후회하지 않는 순간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

<당신의 삶에 명상이 필요할 때>를 읽고 있는데 이 책이 섬세하고 알기 쉽게 명상을 하는 법을 알려주는 게 너무 감사하다. 감사하면서도 놀랍고 어떻게 이런 세밀한 감정과 관점의 차이를 묘사할 수 있는지 보면서 감탄이 나온다. 나도 이런 섬세함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에너지 발전소

에너지 발전소가 있다는 발상이 좋다. 내 안이 아니라 밖에 발전소가 있다. 피드백이, 누군가 내가 쓴 글을 보는 게 내 발전소다. 에너지가 생겨난다. 얼른 모인 이 에너지를 발산하고 싶다.


그물망

늘 후회 없는 하루를 보내고 싶다. 그런 생각이 오늘 이게 최선이었을까 고민하게 되는 시발점인 것 같다. 루틴을 아침저녁으로 하고부턴 삶이 훨씬 단순해지면서도 더 긴 시간을 더 잘 보내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삶이 날 아주 행복한 상태까지 보내진 않는다. 물론 순간순간 내가 잊지 않고 이 많은 것들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대견스럽게 느껴지지만, 이게 맞는 걸까?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하는 질문은 항상 날 의심하게 만든다. 생각해보면 그건 루틴을 해서 일수도 있다. 루틴 때문이 아니라.

드디어 삶의 질이나 방향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동안은 흘러가는 시간을 모래 움켜잡듯 손에서 흘려보냈지만 (그러고 보니 정말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지금은 무언가 촘촘한 그물망 하나를 그 아래 넣어서 떨어지는 모래를 거른 (살린) 기분이다. 적어도 이 정도는 남는다는 확신.


우리 집 고양이

고양이는 왜 이렇게 박스를 좋아할까? 귀엽게 고개를 푹 숙이고 안 들리는 척하는 게 너무 웃겼다. 근데 츄르 얘기가 나오니까 귀를 쫑긋 하더니 언니가 방을 나가자마자 쫓아가는 걸보고 역시 알고 있는데 모르는 체 하는 거구나 싶었다. 츄르 먹을 거라고 엄마가 손, 이쪽 손, 요쪽손 하면서 계속 요구하는데도 다 해주고 그게 뭐가 그리 맛있다고 그렇게 좋아하는지 쪼꼬만 한 게 쪼꼬만 머리로 생각을 한다는 게 너무 귀엽다.


발리

발리는 정말 다시 생각해도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환경이 달라지면 아침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는 걸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었으면 내가 언제까지 스스로를  게으른 사람이란 정체성을 부여하며 살았을지 모른다. 그저 일을 적게 할 수 있는 날만 기다리며 지금은 버티는 시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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