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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주 Mar 07. 2021

오래 지속되는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

디터 람스 다큐멘터리

어제 유튜브에서 디터 람스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2018년도에 나온 다큐는 푸근한 모습의 디터 람스 할아버지와 그의 집이 보이면서 브라운에서 일하며 만난 사진작가 아내와 둘이 50년 동안 같은 곳에서 이사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인트로로 시작된다.


그는 독일의 산업 디자이너이고 브라운, 비초에라는 브랜드로 턴테이블, 스피커, 가구 등 다양한 제품을 디자인했다. 애플의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가 영감을 받았다는 점도 그렇고 제품 디자이너나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면서 그가 제품 디자인에서 큰 획을 그었다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지금 사무실에도 디터 람스의 좋은 디자인 10 원칙이 액자로 놓여 있는데, is님이 서프라이즈로 주문한 3종류의 액자 중 하나였다. 나는 보자마자 디터 람스의 액자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나머지 두 개는 그림이었는데 하나는 바스키아이고 하나는 까먹었다) 그가 이야기한 디자인 10원칙을 보니 is님이 왜 그렇게 내가 좋아할 것 같다고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이 다큐를 추천했는지 이해가 간다.


사무실 액자들


이게 그의 디자인 10 원칙이다.

   

1. 좋은 디자인은 혁신적이다

기술이 동일한 수준에 있지 않으면 어떻게 디자인이 좋을 수 있겠는가?


2.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유용하게 한다

좋은 디자인은 목적에 부합하지 않거나 반대하는 모든 요소들을 무시하고 유용성을 극대화시킨다.


3. 좋은 디자인은 미적이다

매일 사용하는 물건은 개인 환경과 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준다.                    

잘 만들어진 것만이 아름다울 수 있다.


4.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제품의 구조를 쉽게 이해하도록 한다.

더불어 이것은 제품을 말하게 할 수 있다. 디자인 그 자체로 설명되도록 한다.


5. 좋은 디자인은 과시하며 드러내지 않는다

목적이 명확한 제품에는 도구의 특성이 드러난다.

제품의 디자인은 중립적이어야 하며 사용자가 알아서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6. 좋은 디자인은 정직하다

정직이란, 제품을 실제보다 더 혁신적이고 강력하며 더 가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것이다.


7. 좋은 디자인은 오래 지속된다

유행에 민감한 디자인과 달리 버려지는 것이 흔한 현대사회에서도 오래 지속된다.


8. 좋은 디자인은 마지막 디테일까지 철저하다

임의적이거나 우연이 아니어야 한다.

철저함과 신중함은 곧 사용자를 존중하는 것이다.


9. 좋은 디자인은 환경 친화적이다

디자인은 환경보호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

자원을 보존하고 물리적이고 시각적인 오염을 최소화한다.


10. 좋은 디자인은 최소한의 디자인이다

단순함으로, 순수함으로 돌아가라.


'원칙'이란 말의 의미를 간과한 건지 몰라도 이런 디자인 원칙이 모든 제품에 적용된다는 것이 신기하다. 휴대폰, 노트북, 자동차 같은 디지털 제품부터 앱에조차 말이다. (사실 나는 이제 유형의 제품이나 소프트웨어가 다르지 않다고 느껴지는데 점점 그 경계가 모호해져가고 있긴 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는 또 사람마다 다를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오래 지속된다'는 부분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매년 새로운 기술이 나오는 과정에서 어떻게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애플이 그걸 해낸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조너선 아이브가 디터 람스에게서 영감을 많이 얻었기 때문에 가능했는지 몰라도 애플의 제품은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다른 디지털 기기에 비해 잘 희석되지 않는다.


그런 걸 보면 '오래 지속된다'는 의미가 '오래 사용할 수 있는가' 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이제 에어 팟을 쓰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오래된 아이폰이나 맥북은 사용하지 못하겠지만 좋은 디자인이라면 단종되고 단절되는 게 아니라 개선되고 연결되어서 또 다른 제품으로 탈피되어 나오는 것이고, 그 과정이 지속된다면 오래 지속된다는 것과 동일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전 제품은 사용할 수 없다 해도 고유한 가치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디터 람스의 휴대용 라디오처럼 말이다.


디터 람스의 브라운 TP1, 라디와 휴대용 턴테이블이다


앱 같은 소프트웨어 제품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플랫폼에 종속적이고, 플랫폼의 제한 또는 발전이 곧 앱의 디자인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 안에서 지속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또 다른 챌린지인 것 같다. 지금은 안드로이드와 iOS가 모바일 앱의 대표 플랫폼이지만 언젠가는 새로운 플랫폼이 나올 수 있을 것이고, 언젠가는 우리가 휴대폰을 쓰지 않고 현재 쓰는 앱이란 형태를 쓰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제공하는 가치는 플랫폼에 종속적인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또 다른 형태로 어쩌면 유형의 무언가로 나올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형태가 달라지거나 새로워진다 해도 오래 지속되고 루티너리가 루티너리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번외


다큐 초반에 디터 람스가 인터뷰를 하면서 '매너리즘을 어떻게 극복하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해야 합니다. 각자의 책임범위 이상의 것들을 매일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이죠. '미래에는 우리 사회가 어떨까'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면서 공감되는 말이기도 했다. 좋은 사람들이랑 같이 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좋은 사람'에 대한 설명이 한 문장으로 잘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루티너리와 함께 일할 기회는 열려있다.

>>> 루티너리에서 동료를 찾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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