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권해효와 송선미가 부부로 등장하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결혼을 하기 전 둘은 와인을 마실 때는 서로 그 비싼 와인을 사겠다며, 현실적 고충은 전혀 드러나지 않은 채 오로지 낭만적인 호의를 보인다.
그러나 부부로 나오는 그들은 아까와는 현저히 대비된다. 집에 옥탑방이 월세방이 안 나가서 걱정하는 송선미, 영화감독을 그만두고 회고전만 돌아다니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 권해효... 천장에 비가 세서 빗물을 받아놓은 그릇까지... 소박하면서도 행복한 삶을 영위해나가는 듯 하지만 사실 그들은 마음이 향하는 방향이 다르다.
현실적인 송선미는 3년은 돈을 모아서 제주도로 가고 싶었고, 권해효는 지금 당장이라도 돈이 없이 가도 좋다고 생각했다...
권해효가 친구들을 만나러 나간 송선미에게 사랑한다고 문자를 보내지만, 그 문자는 자신의 바로 옆에서 알림이 울릴 뿐이다. 그 순간 권해효가 느낀 감정은 바로 공허가 아니었을까. 나는 이 것이 남녀 사이에 단절을 단적이고도 깊게 보여주는 장면이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