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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 YI NA May 13. 2023

5월 13일

기차, 핏줄, 분노



1. 단번에 날아가는 비행기보다 기차를 타는 것은 훨씬 애잔한 일이다. 그것은 기차의 형상을 비유화하고 싶은 충동이 드는 한 인간의 아름다운 술수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리. 기차는 마치 청춘의 핏줄을 시간을 가감 없이 스치며, 지나온 과거의 퇴색함을 떠올리게 만든다. 잃어버린, 희미한 유년시절. 여전히 내 영혼 안에서 생소하게 울리는 사랑의 말들. 그러나 인생은 온갖 어두운 짐을 진채 서글픈 광채를 내는 아침을 맞이해야 하는 일. 가만히 쇠락해 가는 창밖의 풍경을 바라볼 때, 나의 빈 귓속을 울리는 바람의 공허하고 거친 물결 소리. 나는 한 없이 나의 그리움을 결별해 가는 존재의 그림자에 던져본다.


2. 페이소스를 불러일으키는 존재에 대해 사소한 배려를 행했다가 불쾌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홀로 전동 휠체어를 끌고 다니는 늙은 남자였는데, 엘베가 닫힐 까봐 열림 버튼을 눌러주고 나중에 내리려 그랬다. 그런데 그 남자, 고요한 분노가 서린 눈빛을 던지더니 신경 쓰지 말고 내리라고 단호히 내게 말했다. 나는 알겠습니다,라고 얘기하고 얼른 그 엘베 안에서 내렸다. 존중이라는 것이 지겨울 수 있는데, 나는 그의 고독을 방해한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아마 또다시 아픈 사람들을 보면 엘베를 잡을 것이다. 그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학습된 본능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사회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한  겉치레스런...  충돌은 언제나 고통스럽지만 냉정한 개인주의에서 벗어난 기적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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