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M YI NA Mar 25. 2024

자식같은 사람

   


그 사람의 삶에 있어서 제 2막이 곧 시작될 즈음, 우리는 헤어졌다. 그 곧 이라는 시간이 한 달, 1년은 아니다. 아마 짧으면 3년, 길면 5년 후 일 것이다. 그 사람은 나에게 존재하는 철학적 태도를 허물어버리고 여리고 유약한 존재들을 위한 모성애를 자극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여리고 유약한 존재였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 사람은 굉장히 자기 중심적이고 철이 없는 사람이고, 자면서 많은 코를 골았다. 상황에 맞지 않는 눈치 없는 말을 해서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과오를 저지른 적도 한 두번이 아니다. 그 사람은 강하다. 약하지 않다. 그러나 어떤 면에선 마음이 약하고 여리다. 나는 그 사람의 그런 모습을 느꼈다. 그래서 새벽에 자다가 소리 지르고 욕을 하고 폭력적으로 굴었을 땐 몹시 당황스러웠고, 그런 일이 없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사랑하는 사이에 그런 게 중요하겠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저 사랑하는 마음만 남았다. 다음 날 아침이 되면 그 사람을 바라보는 내 눈엔 꿀이 뚝뚝...


또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열차를 기다리면서 벤치에 앉아 있을 때 나는 그 사람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는데, 그 사람은 고개를 빳빳히 세우고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불안해진 나는 그 사람에게 물었다.


" 오빠는 왜 앞에만 보세요? 제가 부담스러우신가요? 그냥 보지말까요..."


"내가 널 안 봐도 넌 날 봐야지."


결정적으로 이 대사가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나타내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중에 그 때 왜 그랬는지 물었을 때, 아침이라 세수를 못 해서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게 부끄러워서 앞만 보고 있었다고 그는 그랬다. 근데 그렇게 부끄러우면서 왜 나한테 그럼에도 바라보라고 한거죠? 부끄러움도 있었지만 사랑받고 싶은 욕심을 버릴 수가 없었겠죠,,


그 사람과는 부침개 하나에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있어도 행복했다. 이 세상 모든 훌륭한 것들 보다 그 사람과 함께 하는 부질없는 것들이 나에겐 완전한 행복이고 사랑이었다.


그 사람 인생의 제 2막에 어떤 일이 있을지,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 지 알 수는 없지만, 잘 살아갈 수 있을거라 믿는다. 이번 생에 우리가 더 깊게 이어지지 못한 게 슬프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당신이 엄마를 떠올리면서 매일 나를 사랑하는 마음일 것이라 했듯이, 나는 뱃 속으로 낳은 자식처럼 미운 모습도 사랑스럽고 무엇이든 전부 다 해주고 싶었던 마음으로 당신을 오랜 시간 떠올릴 것 같네요. 이젠 나란 사람에게서 졸업했기를...


잘 살아가세요, 당신.


03 25 2024


작가의 이전글 시간과 죽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