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에서 말레나는 연예인처럼 매우 아름다운 여자로 비쳐집니다. 시대적 배경은 세계 2차 대전 전쟁 중 입니다. 등장인물은 말레나 외에 크게 소년, 그리고 마을 사람들로 나뉩니다. 말레나는 남편을 전쟁 지원 병사로 보내고 혼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임자없는 상황에 놓여진다는 점이 그녀를 사람들로 하여금 시기와 뜬금없는 소문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리죠. 여기서 그녀를 향한 시선은 남자, 여자가 극명하게 갈립니다. 남자는 철저히 육체적 욕망의 대상으로, 그런 남자들은 둔 여자들은 무조건 질투의 대상입니다. 대부분 이 영화는 마을 남자들의 도덕성, 특히 남자들이 여자를 성적 대상화 하는 것을 비판하는 영화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그런 해석은 이 영화를 평면적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왜냐구요? 이러한 도덕적 비판 의식에서 비롯된 주제 의식은 너무도 단순하기 때문이지요.
이 영화에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말레나란 인물이 소년 레나토의 시선에 의해 거의 관조되고 있다는 점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영화의 제목은 '말레나'지만, 소년 레나토의 이야기라고 봐도 될 정도 입니다. 그렇다면 제3자에 의해 계속해서 관조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말레나' 란 인물이 소년 레나토와 마을 사람들에 의해 해석 되어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이 영화를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선, 소년 레나토와 마을 사람들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레나토는 12살 소년이고 집안은 가난합니다. 여기서 이 소년에게 아버지가 꽤 중요한 인물로 나옵니다. 영화 초반부에 소년이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친구들을 때리면 때렸지, 맞고 왔다고 혼을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 때문에 긴 바지를 못 입어, 친구들 사이에서 미숙한 어린 애라고 놀림 받습니다. 아무래도 레나토가 남들보다 체구가 작은 것으로 나오는 것을 보니 남성성이 또래보다 좀 부족하고, 가난 때문에 놀림의 대상으로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랬던 그가 말레나를 처음 봤을 때 성기가 발기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후 소년은 말레나 집 앞에 가서 담배 심부름 드는 것을 상상 한다거나 밤에 몰래 창으로 들여다 보면서 그녀를 관찰합니다. 집안에서 관찰된 말레나는 밖에서 보다 더 관능적인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젖가슴이 살짝 보이기도 하는...... 집에서까지 말레나를 상상으로나마 불러들이기 까지 합니다. 그렇습니다. 레나토는 말레나에게 첫 눈에 반하면서 처음으로 남자로써의 정체성을 갖고 싶어진 것입니다.
그는 바닷가 절벽에서 자기 망상에 빠진 연애 편지를 써보고 버리기를 반복합니다. 이것은 흔히 사춘기 시절 미숙한 아이들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와 비슷해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미숙한 사랑은 차라리 마을 어른들의 탐욕스런 욕망 보다는 훨씬 순수해보입니다. 미숙하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말레나의 아버지는 귀머거리 교사 입니다. 어느 날 누군가 아버지에게 밀고를 합니다. 말레나가 여러 남자들하고 자고 다닌다고 말이지요. 그래서 유일하게 경제적 지원을 해주던 아버지마저 말레나와 손절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을 남자가 단순히 집에 놀러온 것 뿐이었는데 상간 행위로 오해 받아서 법정에까지 서게 됩니다. 이 때 누구보다도 말레나를 계속 지켜보던 소년은 분개합니다. 소년이 보았던 말레나는 계속 남편을 잊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결국 변호사에 의해 법정에서 승소하지만, 그 변호사는 수임료를 성관계로 지불하라며 겁탈을 합니다.
결국 떠나간 남편을 잊지 못 하는 착한 말레나는 머리를 붉게 물들이고 창녀가 되어 마을 사람들 앞에 나타납니다. 남편이 아예 죽었단 소식까지 들려온 상태라 현실적인 여건이 아예 갖춰질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 것입니다. 여기서 말레나의 상징성이 드러납니다. 전쟁을 치루고 읺는 마을 사람들의 의식 상태를 반영하는 인물이라는 겁니다. 그녀가 처음부터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남편은 전쟁에 나갔지만 언제든 돌아올 것이란 희망이 있었고, 나름 혼자서 음악도 듣는 낭만을 즐기곤 했습니다. 그러니까 즉, 말레나가 창녀가 되었다는 건 전쟁은 진행 중 이지만 의구심, 불안, 열등감을 가질 지언정 적어도 희망이 공존하는 상태에서 점점 타락해갔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게다가 말레나가 독일 남자까지 상대했다고 나옵니다. 타국 남자까지 몸을 섞는 상황이 수치스러웠을 것 입니다. 그래서 마을 여자들이 결국 그녀를 때려 죽일 듯이 패고 옷을 찢기고 하는 것은 전쟁으로 인한 수치심을 말레나를 향한 폭력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말레나가 연민의 대상으로써 처참해보이지만 실은 전쟁으로 인한 내적인 굶주림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소년 레나토 이야기를 다시 해야겠군요. 그러나 소년 레나토에게 있어 말레나가 가지는 상징성은 처음에 미숙한 사랑이었지만, 말레나가 창녀로 변신한 이후 '성장' 이라는 것으로 변모해갑니다. 말레나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서 소년은 사경을 헤매듯이 고통스러워 합니다. 이에 가족들은 미신적 행위를 치르며 소년이 낫기를 바라지만 아버지가 이건 아니라며 레나토를 창녀촌으로 데려갑니다. 내 아들에겐 이제 여자가 필요한 것이라고 하면서요. 여러분들은 아마 이 장면을 보며 이상하게 생각하셨을 겁니다. 아버지가 창녀촌을? 하지만 이것은 서사적 장치로써 이해되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아버지는 소년에게 남자다움을 요구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소년이 사경을 헤매는 것을 보고 이제 전환점이 온 것이라고 직감한 것이지요. 그래서 이제 어른이 되어가는 한 과정에 놓인 그를 물 속에 떠밀 듯이 여자를 품어보라고 그 곳에 데려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버지의 입장이고 사실 소년에게 있어서는 더욱 심오한 의미를 지닙니다. 말레나가 창녀가 됨으로써 자신이 그토록 망상적으로 사랑했던 말레나를 깨버리고, 이제 그 환상에서 탈피하기 위한 작업인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에선 신기하게도 말레나와 아주 비슷한 창녀가 레나토와 잠자리를 갖는 것으로 나옵니다. 이로써 소년은 과거에서 탈피해 더욱 성숙한 소년으로 성장해갑니다.
그 이후 죽었다고 생각했던 말레나의 남편이 한 쪽 팔이 불구가 된 채 마을에 다시 돌아옵니다. 그 사이 말레나의 집은 가난한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자리잡고 앉아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전후에 혼란스런 상황을 의미합니다. 말레나가 관능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그 안락함, 아름다움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죠. 마을 사람들이 말레나의 남편에게 그녀는 창녀로 살다가 망신살을 당하고 멀리 떠나갔다고 모진 말을 합니다. 그러나 레나토가 남편에게 진실을 전합니다. 말레나는 오직 당신만을 기다렸다고. 그리고 말레나가 떠나간 곳을 알려줍니다.
레나토의 도움으로 남편은 말레나와 함께 돌아옵니다. 팔이 없어진채로 그녀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는 장면은 아직도 인상적입니다. 말레나는 예전과 같은 관능은 없어보이지만 어쨋든 수수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레나의 이 모습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치유입니다. 말레나의 관능이 낭만과 흥취를 의미한다고 앞서 말씀드렸는데요, 그녀의 수수한 모습은 이 낭만과 흥취를 잃은 뒤에 사람들이 갈구하는 화합과 치유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말레나가 이상하게도 마을 여자들이 뒷담화 하다가 인사를 건내니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저 받아주지요? 말레나가 수수해져서 여자들의 질투를 사지 않아서 라고 보여집니다만, 아닙니다. 말레나가 일종의 상징을 갖춘 인물이기에 수동적으로 마을 사람들의 의식 상태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일 뿐입니다. 말레나에게 인사를 했다는 것은 이제 화합과 치유에 대한 희망을 가져보겠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마지막에 소년이 말레나에게 다가가 떨어진 과일을 주어주며 응원한다는 말을 건냅니다. 소년의 마지막 말 한 마디가 더욱 희망적으로 들리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치유만을 말하진 않습니다. 마지막에 나레이션에 소년이 말합니다. 많은 여자를 스쳐갔지만 평생 말레나를 잊을 수 없었다구요. 소년이 말레나를 잊을 수 없는 이유는 가장 힘든 시절, 성장해야하는 때 자신의 내적 성장과 남자로서의 정체성에 다가갈 수 있도록 의지를 달궈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전쟁과 함께 한 인간의 삶과 성장 또한 보여주기에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더 뭉클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