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육욕을 불태우며 사랑했던 애나벨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버린 험버트는 로리타를 보고 첫 눈에 반하게 된다. 남자가 아닌, 대부로써 로리타를 계속 흠모하게 되는 구도에 놓이는 부분이 가장 흥미롭다. 오직 흠모의 목적으로, 남편의 자리를 택하게 되는 이 환상에의 과도한 몰입이 아름답다. 지금껏 읽은 소설 중에서 사랑한다는 말(love) 가 가장 많이 보여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각적으로 표현하자면 읽는 내내 입안에 극도로 달콤한 꿀을 한움큼 머금고 있는 느낌이었다.
한편으로 이 작품은 소아성애자 이야기라고 도덕적으로 날을 세우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 험버트 험버트도 자신을 짐승이라 취급합니다 여러분! 그는 절대 모르지 않습니다 ) 그러나 나는 때론 비열하고 때론 용감하고 과감한 그의 모습에서, 무분별하게 사랑에 충성할 수 있는 자유함이 부러웠다. 그는 늙었고 그저 아저씨 일 뿐이다. ( 대부분의 현실은 인간을 여기서 좌절 시키지요 ) 마법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된다. 그 모든 현실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찬란하게 표현되어지는 사랑 시.
그렇다! 난 이 작품을 읽으면서 별처럼 우주 끝까지 수 놓아진 낭만 서사를 읽는 느낌이었다. 이 마법적인 요소를 제외하고 그저 현실적 조건으로 터무니없다고 결론 지어버리면 이 소설 뿐만 아니라 그 어느 작품도 의미가 사라진다. 이 작품은 오직 인간 험버트의 짐승적 육욕이 문학으로 낭만적 서사로 표현되었다는 것,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작품인 것이다. (나보코프씨 의견대로 일단 작품은 도덕적, 사회적, 관념적 관점을 떠나서 아름다움을 자아내야 한다는 말에 나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험버트, 험버트 로리타는 지금 이 시대에도 살아있습니다 도덕적 지탄을 받는 뜨거움으로, 한편으로 나처럼 대책없이 환상적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이들에겐 하나의 꿈이요, 기억으로!
p.s 소설과 영화,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낫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언제나 가장 솔직한 나의 대답은 물론 '소설' 입니다. 하지만 이 답을 흔쾌히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글을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시간과 고뇌를 들여야 하는 작업인데, 나보코프의 소설이 쉽사리 읽히지는 않습니다. 한 마디로 퍼즐처럼 난잡합니다. 험버트 험버트가( 이름 두 번 반복 되는 것으로 참 잘 지으셨습니다 나보코프씨. 어울립니다 인물과) 도덕적으로 느끼는 죄책감, 질투, 감정기복이 분노로 쓰여진 일기처럼 나열되다가 갑자기 과거 사랑 이야기, 그러다 또 사상적 이야기로 빠지기도 하고. 하여간 집중해서 노력해서 읽어야 하는 소설이기에 읽어보라고 권유할 마음이 생기진 않습니다. (저는 제가 책을 읽어보라고 해서 읽은 사람을 거의 못 봤습니다. 물론 저도 그렇습니다. 서보 머그더 도어, 최은영 밝은밤 사놓구선 아직도 1년이 넘도록 읽지 않는 불경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결론은 저 처럼 작품에 진중히 삶을 바치는 분이 아니시라면 영화만 봐도 충분하다는 타협적 답을 드리겠습니다.
(이 명구절은 제가 의역한 부분도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의미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가 아니라 의미를 더 더 더 환희 밝히고 싶은 미친 욕구 때문에요)
1.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세 번 입천장에서 이빨을 톡톡 치며 세 단계의 여행을 하는 혀끝. 롤. 리. 타. 그녀는 로, 아침에는 한쪽 양말을 신고 서 있는 사 피트 십인치의 평범한 로. 그녀는 바지를 입으면 롤라였다. 학교에서는 돌리. 서류상으로는 돌로레스. 그러나 내 품안에서는 언제나 롤리타였다. 그녀 전에 다른 여자가 있었던가? 있어지. 그래 있었어. 사실은 어느 여름날 내가 어느 어린 소녀애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롤리타는 없었을 것이다.
2. 어스름한 여름 저녁, 언덕 아래에서 갑자기 산책자가 들어와서 가로질러가기도 하는 꽃이 핀 산울타리 부근, 작은 날 것들과 함께 향기롭게 저물어가는 저녁에 대해 알고 계시는지요. 보풀거리는 온기, 황금빛 날파리들.
3. 즉시 우리들은 미칠 듯이, 부끄럼없이 고통스럽게 사랑에 빠졌다. 절망적으로라는 말을 덧붙여야 할 것 같다. 그 광적인 소유욕은 오직 서로의 영혼과 육체의 분자 하나하나를 일치시키고 흡수해야만 누그러질 것이었기 때문이다. (애너벨과 사랑 나누는 장면 묘사)
4. 서로를 만지기 위해 세상의 모든 행복한 말들은 동원하면서 모래 속에 반쯤 감추어진 손이 내게로 슬슬 기어오고 그녀의 가느다란 갈색 손가락들이 꿈속에서처럼 가까이 다가온다. (애너벨과의 사랑)
5. 짧은 순간, 오직 누군가 잃어버린 선글라스만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릎을 꿇고 연인을 막 내 것으로 만들려는 찰나에 늙은 어부와 그의 형이 불쑥 나와 잘해 보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넉 달 후, 그녀는 커프 섬에서 발진티푸스로 죽었다. (애너벨의 죽음)
6. 내가 나 자 신의 갈망, 동기, 행위 등을 분석하려 헐 때마다 나는 일종의 회고적인 상상력에 빠져버린다. 분석적인 능력을 끝없이 다른 가능성들로 채우고 미친듯이 복잡한 내 과거의 전경 속에 끝도 없이 이리저리 길을 만들어내는 상상력 말이다. 하지만 나는 확신한다. 어떤 마술적이고 운명적인 손길인지 롤리타는 분명히 애너벨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7. 평범하고 거칠고 상식적인 젊은이들은 이해 못할 것이다. 그녀(애너벨)가 죽고 나서 오랫동안 내 정신과 그녀의 정신은 함께 있었다. 우리는 만나기 훨씬 전부터 같은 꿈을 꾸었다. 우리는 노트를 서로 비교해 봤는데 이상하리만치 닮아 있었다.
8. 그녀의 벌어진 입술 끝과 뜨거운 귓볼에 내 입술을 갖다대자 그녀는 부르르 떨며 몸을 꼬았다. 길고 가는 잎새들의 실루엣 사이에서 우리는 위로 한 무더기 별들이 희미하게 빛났다. 그 떨리는 하늘은 가벼운 옷을 걸친 그녀처럼 알몸이었다. 마치 그 자체에서 희미한 빛이 쏟아지듯 이상스레 또렷한 그녀의 얼굴을 나는 하늘에서 보았다. 그녀의 다리, 사랑스럽게 싱싱한 두 다리는 약간 벌어져 있고 내 손이 막 그곳을 더듬으려 하자 쾌락과 고통이 반씩 섞인 아련하고 괴이한 표정이 그 어린 얼굴 위에 서렸다.
9. 지금 되돌아볼 때 내 젊은 날들은 아침 눈발처럼 희끗거리며 마치 전망차의 뒤에 흩날리는 휴지 조각들을 어느 기차 여행객이 지켜볼 때처럼 그렇게 휙휙 지나간다.
10. 그러나 그 나이의 소녀가 모두 님펫인 것은 아니다. 사실 독자들이 아홉과 열넷을 공간적인 경계로 봐주면 좋겠다. 드넓고 신비한 바다로 둘러싸이고 나의 님펫들이 뛰노는 매혹의 섬 말이다. 그 거울 같은 해변과 장미빛 바위들.
11. 우리는 미숙한 사랑을 했지만 그 열정은 어른의 삶을 파멸시킬 정도였다.
12. 정상적인 남자에게 여학생들이나 걸 스카우트 소녀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아름다운 소녀를 골라보라고 하면 반드시 님펫을 고르지는 않는다. 건전한 아이들 중에서 귀여운 악마를 고르라면 가랑이 사이에서 부글부글거리는 뜨거운 독, 등골을 타고 흐르는 영원한 관능의 불꽃(아, 얼마나 감추고 숨겨야만 하는 가!) 을 가져야만 하는 끝없이 우울한 예술가, 광인이어야 한다. 이들만이 즉시 알아본다.
13. 규칙적인 생활, 집에서 만든 음식, 결혼에 딸린 온갖 관습들, 잠자리에서의 상투적인 절차, 또 누가 알겠는가, 어디선가 도덕적인 가치가 꽃피고 정신적 능력이 생겨나 나를 도울는지.
14. 롤리타의 발견은 내 고통스런 과거 속에 있던 에나벨 기억을 상기시키는 데에 치명적인 결과였던 것이다. 에너벨과 롤리타, 이 사이에 모든 것은 그저 거짓된 기쁨의 흔적들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는 어떠한 환상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재판관들은 나를 풋과일을 좋아하는 천박한 취향의 미친 놈이라고 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내겐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내가 아는 것은 헤이즈 여인과 숨막히는 정원을 걸어 내려가는 동안 내 무릎은 찰랑이는 물 속에 비친 무릎이었고 내 입술은 모래처럼 깔깔했다는 것이다.
15. 이 일기를 쓰는 게 미친 짓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전율을 느낀다.
16. 그녀(로리타)의 향기는 그 옛날 리비에라의 연인(에너벨)과 같다. 아니 그보다 더 강렬하고 거친 느낌이다.
17. 나는 영원히 롤리타를 사랑할 것임을 안다. 그러나 역시 그애가 영원히 롤리타가 될 수 없음도 안다. 그애는 정월 초하루면 열세 살이 된다. 이 년쯤 지나면 그애는 더 이상 님펫이 아닐 테고 소녀가 되고 그 다음엔 여대생이 된다. 그보다 더 끔찍스러울 수 있을까. 영원히 라는 단어는 오직 나 자신의 열정을 가리키고 내 피 속에 반영되는 영원한 롤리타를 가리킬 뿐이다. 아직은 성인이 되지 않은 롤리타, 오늘 내가 만질 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롤리타. 거친 목소리와 풍요한 갈색 머리카락의 롤리타.
18. 아무 소용도 없는 헛된 꿈. 두 달 간의 아름다움, 두 달 간의 부드러움이 영원히 헛된 것으로 사라지다니, 그런데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니, 전혀 아무것도. (롤리타가 캠프를 떠난다고 하자 막을 수 없는 탄식하는 험버트)
19. 나는 그녀를 죽이지 못한다, 물론 누군가는 그럴 수 있다고 믿을지 모르지만. 아시다시피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것은 첫눈에 반한 사랑이고 마지막까지의 사랑이고, 언제나 변함없는 사랑이었다.
20. 여러분은 나를 조롱하고 법정을 모독하지 말라고 야단을 하실 테지만 재갈을 물리고 반쯤 죽는다 해도 나는 내 가난한 진실을 외쳐댈 것이다. 내가 얼마나 롤리타를 사랑했는지 세상 사람들은 알아야만 한다. 롤리타, 창백하고 더렵혀지고 다른 사내의 아이로 배가 부른 여자. 하지만 여전히 잿빛 눈에 검은 속눈썹, 여전히 붉은 갈색에 아몬드빛, 아직도 칼멘시타, 여전히 나의 것. 인생을 바꾸자, 나의 카르멘이여, 어느 곳이든지 결코 우리가 헤어질 수 없는 곳에 가서 살자꾸나. 그녀의 두 눈이 근시안의 물고기로 퇴색해도 그녀의 젖꼭지가 부풀어오르고 갈라져도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젊은 삼각주가 찢기고 더럽혀진다 해도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의 사랑스런 창백한 얼굴이, 목쉰 젊은 음성이 그저 스치기만 해도 사랑으로 가득 차올라 정신이 혼미해진다. 나의 롤리타.
21. 약 이년 전쯤 프랑스 말을 하는 지적인 고해신부의 인도 아래 나는 내 죄의식으로부터 절대자의 존재를 끌어내고 싶었다. 한순간 형이상학적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그 신부에게 신교도의 단조로운 무신론을 다 털어놓고 천주교의 구식 치료를 받으려 했던 것이다. 흰 서리가 내린 얼어붙은 퀘백의 아침에 맘 좋은 사제는 부드러움과 싶은 이해로 나를 도왔다. 나는 말할 수 없이 그에게 감사하고 그가 대표하는 위대한 제도에도 감사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나는 단순한 인간적 사실을 넘어설 수 없었다. 내가 어떤 정신적 위안을 찾는다 해도 어떤 투명한 도자기빛 영원성이 나를 채워준다 해도 내가 저지른 짐승 같은 정욕을 나의 롤리타가 잊게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나의 비참함을 치료할 아무것도 찾지 못할 것이다. 분절적인 예술이라는 우울하고 아주 지엽적인 고통 완화제를 얻는 길 외에는. 옛 시인의 말을 인용하면 ‘인간들에게 도덕적 감각이란 우리가 덧없는 미적 감각에 지불해야 하는 의무다.’
22. 육욕의 깊이란 얼마나 깊으며 그에 따른 절망은 또 어떠한가. 그래서 나는 그녀의 사랑스런 발밑에 꿇어앉아 인간적인 눈물을 흘릴 수 없었고, 그녀에게 그리도 절실한 바깥 세상에서 그녀가 더럽고 위험한 아이들과 어울리며 즐기는 것을 내 질투는 허락할 수가 없었다.
23. 그녀는 자신의 연약함을 고질적인 성급함과 지루함으로 감추었다.
나는 너를 사랑했다. 나는 발이 다섯 개 달린 괴물이었지만 나는 너를 사랑했다. 나는 비열하고 야비했고 거칠고 그 이상 모두였다. 하지만 나는 너를 사랑했다. 너를 사랑했다! 네가 어떻게 느끼는지 눈치챌 때가 있었고 그럴 때면 지옥이었다. 내 귀여운 연인. 소녀 롤리타. 용감한 돌리 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