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으로 내려왔습니다 19
이사 갈 집의 실거래가가 몇 달 새 몇 억이나 뛰었고, 우리 부부는 우리의 이사 결정에 만족해하며 자신만만했다. 그런데 그 행복이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새 집 잔금을 치르기 5일 전, 나는 매수계약 한 집의 부동산 중개인로부터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집이 가처분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가처분이라는 단어가 너무나도 생소해 사실 전화를 받고도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집주인이 해결하겠다고 했으니 일단 기다려보자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남편과 연락을 주고받은 뒤, 나는 가처분이 무엇인지 천천히 검색해 보았다.
가처분: 금전채권 이외의 특정물의 급여·인도를 목적으로 하는 청구권에 대한 집행을 보전하기 위하여 또는 다툼이 있는 권리관계에 대하여 임시의 지위를 정하기 위해 법원이 행하는 일시적인 명령을 말한다. (지식백과)
내용을 읽고 나니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머리에 피가 쏠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람?
당사자가 아니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지만, 기억을 되짚어 보자면 문제는 이랬다. 내가 매수할 집의 명의자가 본래 남편과( 편의상 A라고 하겠다) 아내 둘의 공동명의로 되어있는 집인데, 1년 전쯤 A가 친구 B에게 자신의 지분을 거래해 넘긴 것이다. 그런데, 그 A가 자신의 회사로부터 횡령을 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했는데, B와의 거래가 자신의 재산을 은닉하고자 하는 시도로 포착돼 가처분된 것이었다. 여기에서 문제가 무엇이냐면, 가처분이 걸려있는 한, 지분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도금이 오간 상황이었기에 계약을 파기할 수 없었고, 인테리어 계약, 우리 집의 매도 등이 모두 걸려있었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그 집을 포기할 수 없었다.
A는 계약일까지 가처분을 말소할 테니 믿어달라고 전했다. 중개인은 나와 오랜 취미 생활을 공유하며 친분을 쌓아온 믿을 수 있는 분이었는데, 흔치 않은 일에 너무나 당황해하며 소식을 전했다. 공동중개인만큼 매도인에게 강력하게 이야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일단 믿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하지만 계약 당일까지도 가처분은 말소되지 않았다. 전날엔 심지어 이사를 나가지 않겠다고 버텼고, 이삿짐센터 계약도 철회해서 이사를 나갈 수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우리 측 중개인의 노련한 설득으로 집주인의 이삿짐을 뺄 수 있었다. 그 사이 A는 중개인분에게 온갖 욕을 한 듯했다.
그런 뒤 계약날 A는 씩씩대며 부동산으로 들어왔다. 뒤에는 침울해 보이는 부인이 따라 들어왔다. 그러고는 대뜸 매도인에게 "당신 때문에 내 와이프가 울었어!"라고 소리쳤다. 그러고는 계약을 이행할 수 없다고 버팅겼다. A는 자신이 00 캐피털에서 근무를 했었다고 소개했고 자신은 억울하다며 열변을 토하면서도 으름장을 놓았다. 굳이 자신의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는데, 사실 우리가 들을 필요도 없는 말이었다. 대화의 방향성도 딱히 없었다. 왠지 일부러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고자 궤변을 늘어놓아 혼을 빼는 것 같았달까?
나와 남편은 어쨌든 매수할 물건에 하자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 그만이었고, 팩트에 기반한 그에 관한 설루션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그 매도인 남성은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
중도금을 돌려줄 수는 없고, 계약을 이행하려면 우리더러 잔금을 치르라 했다. 자신은 억울하고 죄가 없으니 매수자에게 미안해할 필요도 없으며, 매수자가 잔금을 치르는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며, 안 그러면 배액배상을 해야 한다고 협박을 했다. 가처분이 말소가 되지 않았는 데 잔금을 치르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가처분 건은 저희가 판단하는 것은 아니고요
그 순간 A의 눈빛에 살기가 느껴졌고, 왜 자신을 죄인 취급하냐며 매도인이 큰 소리로 화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