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의 기본 단계
“그럼, 책은 언제쯤 나올까요?”
“음, 수정사항 없는 원고 기준으로 짧으면 2개월, 보통은 3개월 정도 걸립니다.”
“아니, 그렇게 오래 걸려요?”
원고만 있으면 책 나오는 건 뚝딱일 줄 알았는데, 정말 책 나오는 데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일까?
그러자면 편집 프로세스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이걸 말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왜냐하면 편집자가 책 하나를 두고 하는 일을 따져보자면, 하는 일이 많기는 한데,
아주 큰 틀로 보면 원고를 보는 것이 주된 일이고
그 원고를 보고 디자이너에게 수정요청하고, 수정된 원고를 다시 보고 하는 작업이 몇 번이나 반복될 뿐이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지인들이 “편집자는 무슨 일해? 뭐 글자 고치고 그러는 거야?”라는 말에 답이 빈해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교정교열은 너무 기본 작업이라 그것만 한다고 하기는 뭐하고
그렇다고 “이마안큼 해.”라고 하기에는 말해도 전달이 잘 안 될 것 같고.
그러다 보니 결국 “어, 그것도 하고 뭐 컨셉도 잡고 이거저거 해. 서점에 책 내보내는 작업까지 해.” 하고 말아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뭉뚱그린 작업의 과정을 과연 쉽고 간결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완전원고
편집의 시작은 완전원고부터다. 더이상 저자에게 (크게) 수정요청할 것이 없고, 편집을 시작해도 괜찮은 원고다.
파일교
저자에게 받은 원고(혹은 번역된 원고)를 컴퓨터로 편집하는 단계다. 한글이든 워드든 파일로 교정을 보는 것이니 보면서 즉각적으로 수정한다.
깊이 읽으면서 원고의 내용이 더 잘 파악되므로 이 시점에 컨셉이 구체화되고 디자인꼴도 구상된다.
넉넉하게는 3주, 짧게는 2주 동안 본다.
초교지
디자인이 입혀져 러프하게 책 모양을 갖춘 편집본이다. 디자인을 앉혀 프린트 된 것을 교정지라고 하고, 첫 교정지이기 때문에 초교지라고 부른다.
초교지는 첫 교정지라는 뜻으로 사람에 따라 초교지를 그냥 조판지라고 하거나 1교지라고 하기도 한다. 초교지는 정리할 것이 많기 때문에 10일~2주 기간을 잡고 진행하지만, 때에 따라 일주일 내에 정리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디자이너와 용어통일을 합의해야 하는데, 초교지-재교지-삼교지-오케이교라고 하거나 1교지-2교지-3교지-오케이교 정도로 통일하는 것이 혼선이 없다.
재교지
빨간펜을 써 수기로 교정한 교정지를 디자이너에게 보낸다. 초교지의 수정사항을 디자이너가 반영해서 프린트한 교정지가 재교지다. 재교지의 교정 기간은 일주일 정도 둔다.
초교지의 수정사항이 잘 반영되었는지 대조교정(초교지와 재교지를 비교해서 교정사항을 하나하나 찾아서 비교하는 것)을 하고 다시 교정교열 및 편집한다. 초교지에 내용과 틀을 정리하느라 보지 못한 부분과 재차 확인해야 하는 부분을 다시 본다.
삼교지
디자이너가 재교지를 수정해서 프린트하면 그게 삼교지다. 전체 틀에서 수정은 없어야 한다. 디테일한 통일성을 다시 확인하고 확정된 표지를 바탕으로 전체 스타일이 정리되었는지 확인한다. 삼교지가 책으로 나오는 최종 형태라고 본다. 3일 정도 기간으로 본다. 교정을 진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타 저작권 관련 사항은 문제 없는지, 혹여라도 저자 요청 사항 등이 빠지진 않았는지 등 책의 디테일을 확인한다. 면수(쪽수)가 정해졌을 것이므로 가격책정, ISBN신청, 종이 선택 등 편집 외 작업들이 이루어진다.
오케이교
교정의 최종 단계다. 다시 읽으며 교정한다. 꼼꼼히 읽으면서 교정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이므로 집중해서 보는 편이 좋다. 원고 분량이 과하게 많지 않다면 하루면 충분하다. 책의 주요 부분들도 본다. 이 부분들은 초교, 재교, 삼교 때도 봤을 테지만 오케이교에서 놓치면 거의 그대로 나갈 가능성이 높고, 검판(인쇄용으로 뜨는 판) 때 오류를 잡아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검판비라는 비용 손실이 생기는 데다 일정에도 차질이 생긴다. 디자이너의 일정에도 양해를 구하면서 수정해야 하므로 오케이교를 교정의 마지노선으로 생각한다.
검판
인쇄소에 데이터파일이 넘어갔다. 인쇄를 돌릴 수 있는 형태로 하리꼬미(쉽게 말해 인쇄에 적합한 형태로 쪽수가 재배치 되는 것) 하여 나온 필름을 확인하는 것이 검판 작업인데, 3쇄 이상을 찍어내는 저자 혹은 출판사가 아니면 대개 필름으로 뽑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최근에는 대개 CTP 파일로 검판한다. 이 필름이란, 진짜 말 그대로 투명 필름이라고 상상하면 된다.
필름 검판과 달리 CTP 파일은 책 진행 순서대로 파일이 진행되기 때문에 검판 보기가 매우 쉽다. 필름 1장에는 16쪽 분량이 순서대로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위, 아래, 왼쪽, 오른쪽으로 왔다갔다 하며 보는 것보다 효율적이기 때문에 봐야 하는 부분들을 충분히 보고 인쇄에 넘길 수 있다.
인쇄
감리를 가면 좋겠지만, 미리 가제본을 떴다면 샘플을 주고 감리를 가지 않기도 한다. 혹은 별색만 잘 봐도 된다면 별색 칩만 보내기도 한다. 인쇄 기간은 넉넉히 일주일 정도 잡는다.
인쇄 기간 동안 온라인 서점에 돌릴 보도자료를 작성하고, 마케팅에 필요한 부분들을 확인한다.
배본 및 납본
책이 나오면 창고에 배본요청(온오프라인 서점에 책을 발송하는 작업)을 하는데, 1인 출판 혹은 독립 출판이라 창고가 아직 없다면 입고 시키고 싶은 서점들과 거래를 트고 협의하여 초반 물량을 얼마나 넣을지 정해 넣는다. 도서관 납본까지 하면 마케팅을 제외한 편집자의 업무는 마쳤다고 본다.
“그럼 대체 이걸 몇 번이나 읽는 거야?”
“글쎄, 적으면 다섯 번 많으면 일곱 번?”
책 하나가 나오기까지 편집자 한 명이 그 책을 못해도 여섯 번은 읽는 셈이다. 그것도 아주 꼼꼼하고 세심하게.
이제부터는 각 단계마다 어떤 부분을 주요하게 보고 살펴야 하는지 한 단계씩 살펴보자.
긴 여정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