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빼미>, 말하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by 임숲

간만에 볼만한 한국 영화가 나왔다. 지난 11월 23일 개봉한 영화 <올빼미>다. 스릴러 시대극으로 홍보된 <올빼미>는 놀랍게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성공했다. 스릴러적 요소를 충분히 가미하면서도 시대극으로 접근하는 데 성공한 데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연출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은 조선 시대지만, 그를 담아내는 방식은 결코 옛스럽지 않다는 의미다. 감초 역의 달인 유해진 배우를 왕 배역으로 캐스팅한 것 또한 신선해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올빼미>의 플롯은 결코 새롭지 않다. 영화의 가장 큰 분수령은 맹인인 줄 알았던 경수가 어둠 속에서는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핸디캡을 가진 인물의 반전이다. 이는 고전작부터 여러 차례 사용돼 온 방식으로, '학습된' 관객이라면 누구나 결말을 예상할 수 있다. 이미 수백 가지 전례를 통해 한국 영화의 '공식'을 습득했기 때문이다. 주인공 경수에게 정도 이상의 능력치를 부여한 것 또한 같은 논리로 이해 가능하다.

그렇다면 또 다른 이야기에 주목해 보자. 영화의 이면을 관철하는 것이다. 경수는 어두운 곳에서는 볼 수 있는 주맹증 환자지만 스스로 맹인이 되기를 자처한다. 자신이 보는 것을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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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맹인 침술사로 살아온 덕분에 어의 이형익의 눈에 들어 입궐에도 성공한다. 이형익과 인조 사이 비밀스레 오간 독살 계획을 수행하기 적합하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이형익의 숨겨진 의중까지는 몰랐겠지만, '보고도 못 본 척' 생존 방식은 결과적으로 그의 목표를 이뤄 준다. 많은 사람들이 권력 앞에서 침묵하는 이유다.

대개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일이 아니라면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한다. 괜히 엮였다가 불필요한 피해를 보고 싶지 않아서다. 다수가 연루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만 아니면 조용히 넘어가는 데다, 당장의 이익까지 주어진다면 관여할 명분이 사라진다. 목소리를 내는 일보다 침묵하는 편이 훨씬 쉽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침묵도 힘을 가진다. 그 힘은 대개 권력자에게 돌아간다. 마땅히 일어나야 할 상황에서조차 움직이지 않는 대중에게 그들은 '개돼지'라는 이름을 붙였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들입니다. 뭐 하러 개돼지들한테 신경 쓰고 그러십니까." 영화 <내부자들>에 등장하는 대사다. 경수도 인조의 눈에 그렇게 비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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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권력자는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다. 파멸 가능성이다. 침묵이 어떤 형태로든 깨지는 순간, 무소불위하다는 권력의 전제는 파괴된다. 종이는 그 자체로 위협이 되지 않지만, 불쏘시개로 쓰일 땐 넘볼 수 없는 파급 효과를 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


영화 후반부의 경수는 권력을 향해 목소리를 내기로 마음을 바꾼다. 스스로 규정한 맹인에서 탈피해 모든 것을 보았음을 알리고, 변심할 수 있는 상황에서 다시 한번 용기를 낸다. 침묵하는 대중에서 벗어나 권력을 비판하는 감시자로 우뚝 선 것이다. 방관자에서 참여자로 바뀌는 데는 단지 '선택할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경수는 침묵을 관뒀다. 권력자의 기만에 맞서 대중의 정신이 깨어 있음을 보였다. 이제 우리의 차례다. 그는 우리에게 말한다. 당신의 눈이 열려 있느냐고. "제가 다 보았습니다" 하고 소리 내 말하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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