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벌새>와 <우리들>을 중심으로
우리는 많은 영화들을 보면서 살아간다. 누군가는 범죄 오락 영화를, 또 누군가는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영화에 대한 관점도 취향도 저마다 다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입장으로서, 영화 속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바로 동시대의 쟁점을 담아내는 방법이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들은 따로 첨언하지 않아도 우리 시대의 현실을 비추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안다. 실제로 일어난 팩트만을 가지고 만든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며 사회적 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대책을 생각하며, 그에 따른 실천을 결심한다. 예를 들어, 환경 다큐멘터리를 봄으로써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체감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캠페인 참여나 의식적인 절약 등 구체적인 실천까지 옮겨 본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가 다큐멘터리와 같은 특정 형식 내에서만 발동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영화에는 그만의 방식으로 동시대의 쟁점들을 담거나 드러내는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를 증명하듯, 전혀 다른 장르를 택하고 있는 작품에서도 동시대 상과 더불어 심층적인 생각거리를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영화 <추격자>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보도방 주인 중호가 연쇄살인마 영민을 쫓는다는 단순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동시대의 무능한 경찰상을 보여 줌으로써 범죄에 있어 안일한 경찰의 태도와 부정부패를 지적하고 있다. 영화 <책상 서랍 속의 동화>는 슈쿠안 초등학교의 대리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된 13살 소녀 웨이민지가 도시로 떠난 학생 장휘거를 찾는 과정을 영화로 제작함으로써, 도시와 시골 간의 빈부 격차와 시골 학교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 주면서 비판하고 있다. 또 영화 <칠판>에서는 선생들이 학생을 찾는 과정을 스토리로 사용하면서 교육을 받지 못하고 밀수품을 운반하는 아이들의 삶, 고향을 찾아 이리저리 떠도는 유랑민의 삶 등을 잘 보여 준다. 이렇듯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은 그들만의 표현 방식으로 동시대의 쟁점들에 조명하고 있다.
영화 <벌새>에서도 이를 찾아볼 수 있다. 영화는 14살 은희를 중심으로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전개되는데, 199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미국 월드컵, 김일성 사망, 성수 대교 붕괴까지 굵직한 사건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벌새>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보편적인 특별함’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을 만한, 또한 아무렇지 않게 보이는 사소한 일들의 연속이지만 당사자인 은희에게는 그렇지 않다. 가부장적인 집안 분위기, 이해할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 바람을 피운 남자 친구, 가장 친한 친구와의 다툼, 학기가 지나자 무서울 정도로 관심이 사그라든 후배.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그 시기를 거쳐 왔기에 과거의 일 중 하나로 넘길 수 있지만, 그 시절을 살아가고 있는 은희에게는 인생의 그 어떤 것보다 무겁고 숨 막히는 것들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언니의 교육 문제로 전등을 깨면서까지 크게 싸운 부모님이 다음날 함께 웃으며 티브이를 시청하는 모습은 은희에게 어떠한 이해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시간이 흐른 뒤 발견된 전등의 유리 조각은 삶의 순간순간 속에서 은희 자신도 모르게 받은 상처들이 상흔이 되어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렇듯 관객은 삶의 모든 것들이 당연해서 힘들었던 은희의 삶을 보며, 과거의 자신을 대입하여 공감하기까지에 이른다. 동시대, 즉 다수의 사람이 공유하는 의식의 일환으로 작용한 것이다.
<우리들>도 <벌새>와 비슷한 키워드를 가지고 전개되는 영화다. 초등학교 4학년 선이와 지아의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데, 학창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미묘한 감정들이 화면을 통해 전해진다. 가장 마지막에 뽑히는 체육 시간, 맞는 말임에도 귀 기울여 주지 않는 교실, 반에서 인기 있는 아이에게 무시당하는 은근함. <벌새>와 마찬가지로 지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들이 그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선이에게는 가장 힘겨운 폭력으로 다가간다.
<벌새>와 <우리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조력자의 유무이다. <벌새>는 은희가 다니던 한문 학원에 새로 온 영지라는 선생님을 등장시킴으로써, 은희 그리고 관객에게 희망과 미래를 보여 준다. 영지는 은희가 처음으로 만난 진정한 어른이다. 더 정확하게는 은희가 느끼기에 가장 이상적인 어른의 존재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은희는 영지를 통해 당연한 것들이 꼭 당연한 것만은 아니기에, 괜찮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운다. 영지의 조언들이 꼭 정답이라 할 수는 없지만, 은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게 은희는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방법들을 부모님이 아닌 영지를 통해 배운다. ‘누구라도 널 때리면 어떻게든 맞서 싸워’와 같이 당연하지만 어떤 어른도 해 주지 않았던 말들을 영지에 의해 처음 접하면서, 은희는 용기를 얻고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은희와 같은 조력자가 등장하지 않는 <우리들> 역시 단순히 과거를 늘어놓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영화 후반, 선이가 겪었던 상황들이 고스란히 지아에게로 이어지게 된다. 선이는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의 친구들처럼 지아를 외면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길을 택하여 자신을 모른 체하기도 하고 심한 말도 했던 지아에게 선뜻 먼저 손을 내밀어 준다. 이는 반복될 수도 있었던 굴레를 끊음으로써 나아진 미래가 기다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벌새>와 <우리들>을 모두 본 관객이라면, 앞서 언급한 내용과 별개로 시선이 가는 부분이 하나 더 있을 것이다. 바로 두 작품 모두에 출연한 설혜인 배우의 존재이다. 필자 역시 설혜인 배우의 연기를 <우리들>에서 인상 깊게 봤던 터라, <벌새>에 등장하는 장면들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사실상 <우리들>과 <벌새> 두 작품 모두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엄청난 사건보다는 타인과의 심리전을 연기하는 배역을 맡았다. 따라서 퍼포먼스적인 부분보다는 표정과 연기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는데, 너무나 완벽하게 해낸 것이 놀라웠다. 아이들 간의 미묘한 감정 싸움과 관계 변화를 표정과 대사 톤, 호흡만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많은 기대가 되는 배우다.
각설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벌새>와 <우리들>을 포함한 모든 영화들은 저마다의 시선으로 동시대의 쟁점들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다. 명확한 답을 넣어 놓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답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영화 <트루먼 쇼>를 보자. 신선한 소재, 가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트루먼의 모습, 주인공의 당혹과 코믹스러움 모두를 능청스럽게 잘 표현한 짐 캐리의 연기 등만 보아도 왜 명작이라 불리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그 어떤 요소보다도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영화의 끝에 나왔던 두 경비원의 대화였다. 전 생애를 세트장에서 보낸 트루먼이 용기를 내 탈출하는 장면을 보고도 ‘그런데 다음 채널은 뭐 하지?’라고 이야기하며 흥미가 떨어졌다는 듯이 채널을 바꾸려는 모습이다.
필자는 이 부분이야말로 <트루먼 쇼>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자, 동시대의 문제를 예리하게 꼬집는 명장면이라 생각한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그 영향으로 사람들은 확실하고 빠른 쾌락을 원하는 경향이 생겼고, 이는 스낵에 비유될 정도로 심각할 정도에 이르렀다. 자신의 취향에 부합하지 않으면 쉽게 버려지기 일쑤인 우리 사회에서, 영화가 자신에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듣기 위한 노력을 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작품을 보든, 자신이 최대로 공감하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