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것의 장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다양한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 두고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실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는 정말 다양한 상호작용들이 일어나고, 교실에서 담임교사의 역할을 맡은 나는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발단부터 결말 그 전 과정을 함께 하다 보니 몸소 체험하고 배우게 되는 것들이 많다. 특히, 인간관계 속의 지혜를 배우기에는 교실을 관찰하는 것만큼 좋은 수업이 없다. 물론 이러한 교실이라는 공간의 특성, 그리고 교사라는 직업적인 특성만으로 모든 이가 이러한 삶의 장점을 가져가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사 개인이 타고난 기질, 천성도 꽤나 비중 있는 요소이겠다.
타고나기를 내향인으로 태어난 나는 말을 하는 사람보다는 듣는 사람의 역할을 맡는 것이 익숙하고 편하다. 어찌나 말이 없는지 고등학교 2학년 무렵에는 이러한 일도 있었다. 때는 음악 교과 시간의 가창 수행평가 시험이 있던 날이었다. 내가 부른 곡은 ‘샹젤리제’였는데 내 차례가 와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때 앞 쪽에 앉아있던 친구들이 두리번거리며 노래의 주인공을 찾았다. 그러다 노래를 부르던 나와 딱 눈이 마주친 것이다. “어.. 제 말도 할 줄 알아..?” 그때 그 친구들이 나를 보며 했던 말이다. 이미 2학기가 시작된 무렵이었으니 친구들의 반응으로 인해 내가 얼마나 말이 없었는지를 알 수 있다. 따로 누가 말을 하지 말라고 했던 것도 아닌데 그저 나는 그런 사람으로 타고났던 것이겠다. 나는 낯선 공간이나 낯선 사람들 속에서도 묵묵하게 혼자 잘 지낸다. 늘 구석에 앉아 혼자 글을 쓰던가 사색을 하던가 아니면 낙서를 끄적이는 것이 내 평생의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 탓에 누군가는 나를 ‘참 친해지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외향인, 즉 인싸가 사회인의 모범적 모델인 것 같은 세상에서 때로는 나의 아싸로움을 ‘고쳐’도 보고 싶던 때도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성격 덕에 사람에 대한 성찰의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나 스스로 생각도 한다. 조용히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고 혼자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는 내가 진득하니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며 인간관계의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하면 이해가 잘 가려나 모르겠다. 남들에게 귀를 기울이다 보니 그들의 말과 행동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걸 염두하면 그리 이상한 말은 아닐 거다.
이렇게 나의 타고난 성질의 특수성 그리고 거기에 교실이라는 공간의 특수성, 교사라는 직업의 특수성이 적절하게 모두 조합이 되어서 나는 교실 속에서 사람에 대한 깨달음, 삶에 관한 지혜를 매일매일 하나 이상씩은 배워간다. 물론 그 대부분은 전에 알았던 것을 다시 환기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참, 분명히 말해두고 싶은 것은 내가 그러한 기술들을 안다고 하나 실제로 그 기술을 잘 활용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게 잘 알면서 너는 왜 그래?라고 물어보면 나도 딱히 할 말은 없다는 것이다. 그저 ‘이렇게 태어났을 뿐’이라는 핑계를 대겠다. 그럼에도 분명하게 나는 교실 속에서 여러 가지 사람에 관한 문제에 대해 많이 배운다고 자부는 하고 싶다.
자, 그래서 대체 무엇을 배워서 어떠한 성장을 했는지 이제야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우선 나의 사회화에 내가 배운 것들을 활용할 수 있겠다. 언젠가 나를 오래 봐온 대학 동기가 이런 말을 했다.
“너는 1학년 때에 비하면 사회화가 많이 됐어!”
나의 대학교 1학년 때는 이런 모습이었다. - 친구들의 입을 빌려- ‘그 누구와도 친해지지 않겠어’라는 분위기를 내뿜던 사람. 물론 나는 그러한 생각을 하나도 하지 않았지만 나를 보는 사람들의 느낌이 그러했다고 한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삼삼오오 몰려 앉은 책상에서 멀찍하게 떨어져 강의실 맨 앞 구석에 혼자 자리를 잡는 애. 같이 앉자고 말하면 머쓱해하며 괜찮다고 대답을 하는 애. 친해지기 쉽지 않은 애가 나였다. 물론 나는 이러한 나에 매우 익숙하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수십 명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일이었고 학원의 분위기와 일의 특성상 그곳의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나보다는 외향적인 친구들이었다. 나는 늘 근무시간 도중에 점심을 다 먹고나면 혼자 사무실 구석 소파에 앉아 책을 읽었다. 다른 사람들은 사무실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떨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나중에야 안 사실인데 당시에 학원 매니저님께서 내 걱정을 그렇게 하셨다고 한다. 늘 혼자 있는 모습을 보니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있어 걱정이라며 다른 아르바이트생에게 ‘좀 챙겨라’라며 당부까지 했다는 말을 후에나 알았다. 늘 ‘친해지기 어려운 애’가 내가 맡은 역할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대체 일터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식으로 사회화가 되었다는 말일까?
교사는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우리 학급의 20-30명의 학생들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오며 가며 보는 학생들, 다른 학급 선생님들로부터 주워듣는 학생들의 이야기. 어떠한 행동으로 어떠한 결과를 얻게 되는지를 보게 된다. 아주 간단한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반에 매번 최신형 휴대폰을 자랑하는 학생이 있다. 그런데 다른 학생들이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면 알게 되는 것이다. 쓸데없고 잦은 자랑은 인간관계에 썩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또는 나름 심오한 것도 있다. 학생들을 보면 험담을 좋아하는 성격의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학생들 일부는 피해의식이 있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행동에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기에 -그들 나름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험담을 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학생들의 시작, 과정과 결과를 관찰하면 알 수 있는 거의 진리에 가까운 것은 이것이다. 남에 대한 험담을 시작한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험담을 만들어낸 다는 것이다.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확률이다. 늘 편을 가르고 주도에서 누군가를 욕하는 학생들은 결국 나중에 다른 친구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고 눈물을 흘린다. 아마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다. 내 앞에서 다른 사람의 욕을 할 수 있는 애는 내가 없는 곳에서 내 욕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런 사건들을 한번, 두 번 겪다 보면 나는 이런 걸 배운다.
‘입조심’
남에게 해가 되는 말은 하지 말자. 남에게 득이 되는 말을 하자.
분위기에 휩쓸려 상대방을 판단하지 말자. 누가 남의 험담을 하면 같이 엮기지 말자. 등등..
물론 나는 학창 시절부터 편 가르기를 너무 싫어했기에 이러한 배움은 그저 내가 알고 있던 것에 신념에 가까운 확신을 주는 것에서 끝이 났기에 내가 변화한 사회화에 대한 예시로는 다음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그리 외모가 호감인 것도 아니요. 말을 현란하게 잘하는 것도 아니요. 그럼에도 조금은 희한하게 나는 외향적인 친구들에게 관심을 많이 받았다. 몇 년을 단위로 내게는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바로 이런 것이다. 굉장히 활발하고 외향적인 친구가 내게 조잘조잘 말을 건다. 내가 생각할 때는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닌데 막 인사도 한다. 아, 부담스럽다. 그러다가 그 친구가 내게 묻는다.
“너는 왜 나랑은 안 놀아?” 또는 “너는 왜 나한테 질문을 안 해?”
그럼 그때의 나는 굉장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대꾸를 하는 것이다.
“우리 안 친하잖아.” 또는 “너한테 궁금한 게 없어서…” 그럼 항상 친구들이 화를 내며 돌아섰다. 이렇게 적으니 얼마나 사회성이 바닥이었는지 새삼 느껴진다. 사실 어릴 때는 이해가 안 갔다. 물어봐서 대답을 했을 뿐인데 왜 화를 낼까? 이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또 다른 하나의 사건 때문이었다.
내게도 오랜 친구가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를 꼽으라면 자신 있게 이름을 대던 친구였는데 언젠가 그 친구가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다. “땡땡이(나)는 오래 봤는데도 친해지기가 어려워. 담이 있는 것 같아.” 꽤나 충격이었던 것 같다. 나는 저 아이를 좋아하고, 친하다고 생각하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할까? 이 문제에 대한 해결, 그리고 또 다른 성장도 결국 내가 교실에서 학생들을 관찰하면서 실마리가 되었다.
교실에서 친구들에게 친근하다고 여겨지는 학생들은 되묻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르게 표현하면 관심이겠다. 얼마 전에 본 연애 프로그램에 이런 장면이 있었다. 그 기수에 매우 잘생기고 스펙이 좋은 남자 출연자가 있었는데 여자 출연자들이 입을 모아 그 남자 출연자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이유는 이렇다. 본인이 어떠한 질문을 하면 그에 대한 답만 하고 되물어보는 질문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생일이 언제인가요?’라고 물어보면 ‘2월이에요. 생일이 어떻게 되세요?’라고 물어보던 아니면 다른 것에 대한 질문, 관심이 돌아와야 하는데 그 출연자는 ‘아, 2월이에요.’까지만 하고 끝이라는 것이다. 그 장면을 보던 나는 너무 웃겨 빵 하고 터졌다. 왜냐하면 그 남자 출연자의 모습이 내가 사람들을 대할 때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었다. 저렇게 멋진 외모에 좋은 스펙을 가진 사람도 저렇게 행동하면 푸념을 듣는데 나는 어떠한가 싶어 한참을 박수를 치며 웃었다. 살면서 꽤나 대화가 안 되는 사람이었겠구나 싶었다.
교실에서 자주 닮고 싶은 학생들을 본다. 나보다 더 나은 학생들이 반드시 매년 한 명씩은 있다. 그런 학생들을 진득하니 지켜보면 배울만한 점들이 정말 많다. 어려움을 겪는 친구가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자기 일처럼 도움을 주는 모습, 어려운 문제에 좌절한 친구들을 이것도 못 푸냐며 놀리는 게 아니라 곁에서 긍정적인 언어로 힘을 주는 모습, 전체의 일에 ‘이런 걸 왜 해.’라며 팔짱을 끼는 게 아니라 사소하고 작은 일이여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하는 모습, 항상 마주치는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밝게 인사를 하는 모습 등등.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나는 그런 어른으로 성장해야겠다는 점을 배운다. 많이 부족한 내가 전보다 조금은 더 나은 어른이 되어가는 것도 어쩌면 내가 교사로 살고 있는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누군가 내 직업의 장점을 묻는다면 나 자신의 성장 기회를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