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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엔나 옥탑방 Dec 03. 2022

어쩌다 빈소년_1

/ 동요 하면 안 됩니다

팀장님 말씀을 너무 잘 들은 게 문제였다. 내 사수였던 오** 부장의 말은 늘 정확했고, 그녀의 조언은 항상 내게 좋은 방향을 열어주었다. 그날도 그녀가 툭 던진 말에 훅 낚였다.


오부장) 우리 딸 친구가 올봄에 빈소년에 갔는데…

나) (깜놀) 예에? 아는 애가 빈소년요?

오부장) 그렇다니까~~

             야, 내가 아들이 있으면 끝까지 함 해본다!


그.. 그래? 나는 아들이 있으니까 함 질러볼까? 업무 차 빈소년합창단 한국 공연 기획사 김** 차장을 만난 자리에서 사알짝 물어보았다.


나) 저.. 빈소년 오디션요.. 올해는 안 하나요?

김차장) 작년 공개 오디션은 일회성 행사였고요,

             올해는 단장이 같이 안 와서 계획이 없어요.

             근데 누가 오디션 보려고요?

             아드님이 노래하나요?

) .. 지금 서울시소년소녀합창단에 있긴 한데...

      없으면 됐어요~ ^^a


여기서 끝난 일인  알았... 는데 갑자기 연락이 왔다. 예정에 없던 단장 방문 일정이 잡혔고, 특별 오디션을  테니 준비하란다. 겨우 이주일 밖에  남았는데?


) 감사합니다. 근데  갑작스러워서...

     혹시 오디션은 몇 명이나 보나요?

     저희 애 합창단 친구들도 관심이 많아서…

김차장) (단호박) 아드님 포함 딱 두 명만 ㅎㅎ

             다른 친구는 안될 것 같습니다.

나) 그래요? 그럼 준비를 어떻게 하는지 팁이라도…

기획사) (골똘) 작년에 보니 한국 애들이 팔 벌리고

            서서 똑같은 포즈로 “동요” 부르는 거

            되게 싫어하더라구요.


아하, 외국인 눈에는 그게 이상한 거구나! 하긴 콩쿨 나가면 애들이 전부 팔 늘어뜨리고 뻣뻣하게 서 있거나 손 모아 쥐고 동그라미 그리는 거 나도 싫었다고!! 오케이, 팁 하나 얻었고~~


원래도 빈소년을 좋아했거니와 단장을 직접 만날 기회라니... 떨어져도 우리가 그런 사람을  언제 만나보겠나 싶어서 일단은 해보자 했다. 그런데 오디션 정보가 너무 없어서 막막한 거다.   사람이 많아야 얘기도 넘치는 법인데 이건 아는 사람조차  안되니... 염치 불고하고 작년 공개 오디션에 붙어서 빈소년에 갔다는 ** 어머니에게 다짜고짜 연락을 드렸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꼬치꼬치 물어오니 성가실 법도 한데 고맙게도 경험한 것을  알려주셨다.


작년엔 1절씩만 불렀고, 아이들만 오디션 장에 들어가고 부모는 모두 밖에서 대기, 인당 10분도 시간을  줘서 사실 대화할 일이 없었다 등등. 그리고 실제 빈소년에 입단해서 겪은  많은 흥미로운 것들에 대하여..


들은  대로 아들은 2 동안 <Die Forelle> <Panis Angelicus>  곡을  1절씩만 연습했다. 동요를 싫어한다니 빈소년 레퍼토리로 하는  맞겠고...독일어 이력서도 있으면 좋겠지? 그래도 명색이 오디션인데 형식은 갖춰 보자고!


서울시합창단 캠프를 떠나는 아들에게 목 관리 잘 하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했건만, 오디션 전날 아들은 목이 다 쉰 채로 돌아왔다. 아이고 두야~ 얼마나 신나게 소리 지르고 놀았으면 T T

아들은 이래서는 못한다며 오디션을 안 보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래 뭐 니가 자신 없는 건 알겠는데.. 안 하더라도 가서 직접 얼굴 보고 못 한다 하는 거야. 약속해 놓고 일방적으로 나타나지도 않는 건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알겠니?


하아아.. 오디션은 말로만 듣던 거와 크게 달랐다. 첨부터 부모도 같이 들어오란다. 엉? 애만 가는 거 아니고? 나 영어 울렁증 심하게 있는데...


인상 좋은 빈소년 단장 게랄드 비어트(Gerald Wirth)가 인사를 건네는데.. 아.. 벌써부터 아득해졌다. 기획사 쪽 통역사가 있긴 했지만 그가 우리만 쳐다보며 얘기를 하니 떠벌떠벌 되도 않은 영어로 대답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아들이 목이 별로니 감안해 주세요”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벌써부터 기에 눌려 혼이 나가서는 저 먼 안드로메다까지 달리는 중이었고, 아들은 아들대로 첨 만나는 외쿡인에 바짝 쫄아서 안 하겠다 못하고 시킨 대로 했다.


그의 반주에 맞춰 준비해 간 악보를 부르는데 1절 이상은 못 부르는 이상한 오디션 ㅋㅋㅋ

Mr. 비어트가 왜 그 뒤는 모르냐 묻는데 작년엔 이랬다고 들었다 어쨌다 할 수가 없는 거다. 어떡하긴? 했던 부분 또 해야지 ㅋㅋㅋ


피아노 옆에서 불러 봐라, 옥타브를 올려 봐라, 저기 앞으로 가서 3천 명의 관객 앞에서 부른다고 생각하고 솔로를 해 봐라, 내 피아노 소리를 듣고 음으로 따라 해 봐라, 계명창으로 부를 수 있겠어? 그걸 몇 도 이상 올려 봐라 내려 봐라, 이 음의 3도 위는 무슨 음? 이 박자를 듣고 다음 박자를 칠 수 있겠어? 노래는 누구한테 배웠어? 무지하게 디테일한 갖가지 주문을 쏟아내고는 이어지는 긴-긴 인터뷰...


Sheen, 노래 좋아해? 얼마나 좋아해? 아~ 많이? 그래, 음악은 행복한 거니까~~ 엄마는 얼마나 오래 떨어져 있어 봤어? 이삼일이 전부라고? 그럼 그 보다 더 오래 떨어져 있을 수 있니? 방학 때만 엄마 만나는 거 가능하겠어? ... ... 어디 보자, 말러 3번을 연주한 적이 있구나? 빔 밤 빔 밤~~ 같이 해볼까? 그렇지 좋아! ... 오, 맥베드 오페라도 했어? 플리언스가 아빠와 헤어질 때의 느낌은 어땠니? 넌 그걸 어떻게 연기했지? 보여줄 수 있겠니? ... ...


크아.. 엄마는 끼어들 여지도 없이 10 이상 애한테만 집중되는 질문 공세를 보고 있자니 진작에 영어 공부  시킬  후회막급이었다. 떠듬떠듬 손짓 발짓 엉터리 대화를 하느라 아들은 허옇게 질려 있었고 그렇게 진땀을 빼고 나니 이미  시간이 흘러 있었다. 빈으로 돌아가서 1-2 안에 연락을 주겠다는데,  잘할  아쉬워해도 소용없는 시간. 노래도 맘에  들고 인터뷰는  맘에  들고... 이걸로 됐다. 좋은 경험했으니 이제 맘에서 내려놓자. 그래 빈소년은  빈소년이냐 ㅎㅎ 송충이는 솔잎이 제일 맛있는 거다.


쳇, 이럴 줄 알았으면 셀카나 같이 한 장 찍자 할 걸.. 우리가 언제 저 사람을 또 만날 거라고.. 그림자만큼 기다란 후회가 돌아오는 내내 뒤따라왔다.

_2017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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