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에서 시작한 하루 진흑탕으로 끝난 밤
목욕탕에서 시작된 하루, 진흙탕으로 끝난 밤
아버지가 감기로 몸이 불편하셔서 목욕을 못 하신 지 어느덧 2주가 지났다.
오랜만에 아버지를 모시고 보성으로 향했다. 보성에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전어회 무침과 해수녹차탕이 있기 때문이다.
감기 동안 식욕이 줄어들었는지, 몸무게는 3kg이나 빠져 있었다. 그런데도 오랜만의 목욕에 아버지의 발걸음은 유난히 가벼워 보였다. 냉온욕과 한증욕, 안마 치료까지 꼼꼼히 즐기시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웃음 짓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탕 안에는 부드럽고 따뜻한 시선도, 부러움과 후회를 담은 아쉬움이 묻어나는 시선도. 아버지와 나의 대화를 바라보는 눈빛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있는 듯했다.
목욕을 마친 아버지는 상쾌한 얼굴로 식당으로 향했다. “전어철인데 전어를 안 먹고 지나갈 수 있나.”
전어회무침에 밥을 비벼 한 그릇 뚝딱 비우신 아버지. 사장님도 반가웠는지 전어구이를 넉넉히 서비스로 내어주셨다.
포만감에 몸까지 개운한 채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잠자리에 들기 전 작은 실랑이를 벌였다.
“목욕 후엔 땀구멍이 열려 있으니 따뜻하게 입고 주무셔야 해요.”
“덥단 말이다. 난 싫다.”
결국 나의 승리였다. 옷을 따뜻하게 입혀드리고, 주무시기 전에 소변도 보시라고 권했지만 아버지는 “괜찮다”며 고집을 피우셨다.
새벽녘, 어떤 인기척에 잠에서 깨어보니 아버지가 힘겹게 화장실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늦은 뒤였다. 이불과 요, 옷까지 모두 젖어 있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아마 스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을 부정하고 싶으셨겠지.
그 침묵이 나는 오히려 더 힘들었다. 어디를 어떻게 치워야 할지 몰라 한참을 헤매며 수습을 마치고, 결국 팬티형 기저귀를 입혀드렸다. 목욕탕에서 즐거웠던 하루가 한순간 진흙탕 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날 밤, 나는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덧붙이는 말
돌봄의 시간은 늘 빛과 그림자가 함께 온다.
목욕탕에서 환히 웃던 아버지의 얼굴과 새벽녘 말없이 앉아계시던 그 모습이 한날에 공존한다.
삶의 끝자락에서, 부모와 자식이 나누는 시간은 언제나 기쁨과 고단함을 동시에 품는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아버지 곁에 서 있다. 이 모든 진흙탕 속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다시 배우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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