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기록13]해변의 카프카(4)

소요유와 시간 - 자유와 존재에 대하여

by 피안으로

♧소요유와 시간 - 자유와 존재에 대하여♧


울타리와 황야

"일본의 신과 외국의 신은 친척 간인가? 아니면 적인가? 신이란 건 인간의 의식 속에만 존재하는 거라네. 있다고 생각하면 있고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 걸세."

신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면서 동시에 깊은 통찰이다.

천황이 맥아더의 지시로 신성을 부정했을 때, "네, 이제 나는 보통 인간입니다"라고 말했다. 수천 년 신이었던 존재가 한마디로 인간이 되는 아이러니.


신도 결국 메타포다. 사람들이 믿으면 존재하고, 안 믿으면 사라지는.

나약한 인간은 의지처가 필요하다. 그래서 신을 만들고, 이념을 만들고, 울타리를 만든다. 특정세력은 지배를 위한 피지배계층의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모든 문명은 울타리로 구획된 부자유의 산물이야. 결국 이 세계에서는 높고 튼튼한 울타리를 만드는 인간이 유효하게 살아남게 되는 거야. 그것을 부정하면 넌 황야로 추방당하게 돼."

루소가 말했듯, 어떤 땅에 울타리를 치고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선언한 최초의 인간이 문명을 만들었다. 울타리는 소유이고, 경계이고, 분할이다.

나는 어떤 울타리를 벗어나왔다. 그 울타리를 거부하고 나오니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사회적으로 주변부로 밀려났다.

그럼에도 나는 소요유(逍遙遊)를 꿈꾼다.


소요유, 아직 닿지 않은 자유

장자의 소요유. 얽매이지 않는 자유.

명예에도, 돈에도, 타인의 시선에도, 심지어 깨달음에도 얽매이지 않는 것. 붕새(鵬)가 9만 리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처럼.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 -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노니는 것.

아직 나는 그곳에 닿지 못했다. 복잡하고, 미궁 속이다. 경제적 어려움도 있고, 부모님 봉양도 있고,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는 질문도 있다.

그럼에도 소요유가 좋다.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얽매여 있기 때문에, 더 간절하고 더 아름다운 것이다.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에게는 소요유가 필요 없다. 그냥 그 상태니까. 그런데 울타리에 부딪히고, 무게에 눌리고, 질문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소요유는 별이다. 아직 닿지 않았지만, 그것을 보며 걸어가는 것이다.


현재는 없다

"순수한 현재라는 건 미래를 먹어가는, 과거의 붙잡기 어려운 진행이다. 사실은, 모든 지각은 이미 기억이다." - 앙리 베르그송

따지고 보면 현재는 없다. 미래를 향한 지각과 움직임만 있을 뿐. 현재는 찰나 자체도 없다.

우리가 "지금"이라고 느끼는 순간, 그 순간은 이미 과거가 되어가는 중이다. 현재는 붙잡는 순간 사라지는, 실체 없는 경계선 같은 것이다.


불교의 찰나생멸(刹那生滅)이 이것이다. 모든 존재는 찰나마다 생겨났다 사라진다. 고정된 실체가 없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흐름만 있을 뿐.


나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학습하고 경험하면서 끊임없이 변해지고 있다. 나를 아는 순간 나는 과거의 나일 뿐이다.

그래서 "나를 찾는다"는 것도 어쩌면 잘못된 질문이다. 찾을 고정된 나는 없으니까. 오히려 "나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가 맞는 질문이다.


헤겔과 자기의식의 딜레마

"나는 관련인 동시에, 관련하는 것 자체이기도 하다. 우리는 서로 자기와 객체를 교환하고 투사해서 자기의식을 확립하고 있는 거야."

헤겔은 말했다. 나는 타자(他者)를 통해서만 나를 안다고.

내가 나를 보는 시간보다 가족이 나를 보는 시간이 많다. 타자 속에 더 많은 내가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각자 자기 프레임으로 타자를 재단한다.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나는 온전한 나로 존재된다고 볼 수 없다. 보여지는 것만 보고 내면의 나를 온전히 알기 어렵다.

헤겔의 자기의식도 이론일 수 있다. 이상적인 상호인정을 전제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순수하지 않다.

결국 온전한 나는 어디에도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관계 속에서도 온전하지 않고, 나 혼자 있어도 나를 다 알 수 없고.

그게 인간 존재의 비극이자, 어쩌면 자유일 수도 있다. 고정되지 않으니까.


지루함과 싫증

"인간은 이 세상에서 따분하거나 지루하지 않은 것에는 금세 싫증을 느끼게 되고, 싫증을 느끼지 않는 것은 대개 지루한 것이라는 걸. 그런 거야. 내 인생에는 지루해할 여유는 있어도 싫증을 느낄 여유는 없어."

지루함과 싫증,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르다.

지루함은 자극이 없는 상태다. 평온하고, 반복적이고, 변화가 없는. 그런데 이것은 사실 나쁜 게 아니다. 오히려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급박하지 않고, 생존에 쫓기지 않는다는.

싫증은 다르다. 뭔가를 소비하고, 질리고, 버리는 태도. 새로운 자극을 계속 찾아 헤매는 것. 이것은 여유가 아니라 불안이다.

나의 삶은 어쩌면 지루할 수 있다. 세상이 말하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그런데 그것이 나쁜 게 아니다.

오히려 싫증을 내며 이것저것 좇아다니는 삶보다, 지루함 속에서 깊이를 찾는 삶이 더 본질적일 수 있다.


시간은 흐르고, 나는 변하고, 자유는 아직 멀지만, 그럼에도 나는 걷는다.

소요유를 향해. 천천히, 지루하게, 단단해지며.


해변의 카프카(5)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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