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수기7]노인은 도서관이다

by 피안으로

도서관이 문을 닫을 때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 재활의학과에 갔다. 보행 장애에 도움이 될 조언과 처방을 받기 위해서였다. 진료과 앞에 휠체어를 세워두고 “금방 다녀올게요”라고 말씀드린 뒤, 서둘러 접수 창구로 향했다.


그때였다.

복도 한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나는 집으로 못 간다. 네 아버지랑은 같이 못 있는다.”


칠십 대쯤 되어 보이는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그 옆에 선 딸은 아직 어려 보였다. 스무 살은 넘었을까. 어머니의 말을 듣는 딸의 표정이 스치듯 보였다.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는 듯하면서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얼굴이었다. 능력 밖의 일이 현실로 닥쳤을 때 사람이 짓는 바로 그런 표정. 나는 마음이 아팠다.


접수를 마치고 아버지께 돌아왔다. 그날따라 병원 안에는 휠체어에 탄 노인들이 유난히 많아 보였다. 모두 안색이 좋지 않았고, 어딘가 넋이 나간 듯했다. 마치 자신의 정체성조차 흐릿해진 사람들처럼 보였다.


나는 평소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노인은 도서관이다.”


살아오며 쌓아온 지식과 정보, 삶의 지혜. 헤아릴 수 없는 이야기와 기억이 그 안에 저장되어 있다. 그래서 노인은 도서관과 같다고 생각해왔다.


도서관 건물이 낡고 기능이 멈췄다고 해서, 그 안에 보관된 책과 자료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찾지 않는다고 해서 그 지식이 쓸모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문을 닫아버린 순간부터 그 도서관은 잊히기 시작한다.


노인도 마찬가지다.

신체적 기능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해서, 그 사람이 평생을 살아오며 축적한 지혜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지혜는 우리가 쉽게 얻을 수 없는 깊이를 지닌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병원 복도에서 마주친 그 어린 딸. 감당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에 돌봄과 갈등의 무게를 떠안은 얼굴. 휠체어에 앉아 어디론가 실려 가던 노인들. 그 표정 속에는 존중받지 못하는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는 노부모님을 모시며 산다.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막막하다. 하지만 그분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무심히 건네는 한마디 조언 속에서 나는 어떤 책에서도 찾기 힘든 삶의 지혜를 만난다. 살아 있는 도서관을 곁에 두고 사는 일은 분명 축복이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은 노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뒷방의 짐으로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우리 곁의 도서관으로 존중할 것인가.


그리고 그 어린 딸처럼, 감당하기 벅찬 돌봄의 무게를 홀로 짊어진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문을 닫은 도서관이라도, 그 안의 책들은 여전히 살아 있다.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도서관은 버려지는 순간, 정말로 죽는다.


사람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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