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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타 Aug 23. 2022

인간은 죽을 때까지 서로를 평가한다

오르기 싫은데 나도 모르게 올라가 있는 두 가지: 남의 입, 시험대

나에게는 18살 차이 나는 동생(이하 홍이)이 있다. 나이 차이 때문에 동생이라고 이야기해줘도 다음번에 또 이야기가 나오면 그때 그 조카는 잘 지내냐고 묻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엄마가 느지막이 고군분투한 것은 아니고 이모의 딸이므로 정확히는 사촌 동생이다. 친척들이 모두 외동인 탓에 굳이 '사촌'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은 채 언니, 동생이라고 서로를 칭하게 되었고, 거의 매일 같이 연락할 만큼 가까운 사이이기도 하다.


서른 후반까지 공주님처럼 할머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출근한 뒤, 퇴근하면 그대로 침대로 직진하는 공주의 삶을 살던 이모는 마흔을 목전에 두고 실제로 본인을 공주라 불렀던 이모부를 만나 결혼에 골인했고, 원샷원킬 한 방에 나에게 동생을 안겨주었다. 남들에게는 늦둥이지만 사실 우리 가족 입장에서는 초스피드 베이비인 것이다.


홍이는 날 때부터 짙은 쌍꺼풀에 조막만 한 얼굴을 자랑했다. 부모들의 단골 멘트인 '내 자식이라서가 아니라' 누가 봐도 사랑스러운 아이였고, 실제로 내가 귀찮다고 저리 가라고 할 때면 "언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 홍이는 언니를 사랑하는데..."라며 감정 없는 내 무릎을 꿇게 만든 유일한 존재였다.


내가 귀신 보는 흉내만 내도 엉엉 울던 콩알이는 어느덧 중3이 되었다. 온 가족이 현타랑 홍이는 닮아도 너무 닮았다고 할 정도로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중딩으로 성장했고, 실제로 우리는 MBTI도 같다. (늘 E인 나와 달리 홍이는 E와 I가 번갈아가며 나오는 정도의 차이뿐)

그리고 그녀는 1~2년 전부터 나의 남자관계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내가 받는 감시와 협박 카톡은 다음과 같다.


- (금요일 퇴근 후) "어디니? 불금이라고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 가라."

- (주말) "언니 뭐해? 왜 카페야? 누구랑 있어?"

- (인스타에서 데이트 관련 포스팅을 본 후 전달하며) "꿈도 꾸지 마."


아주 웃기지도 않지만 홍이는 매우 진지하다. 방탄 뷔나 엔씨티의 누구(이름도 기억 안 남) 혹은 강태오 정도가 아니라면 아예 만나지도 말고, 만에 하나 결혼 생각이 있다면 외국으로 나가서 살되 한국에 발도 붙이지 말라는 식이다. 아니 도대체 뷔나 강태오 같은 사람을 어디서 만나야 하는 것이며 내가 연애 한 번 하는 게 조국을 포기해야만 가능한 일인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작음이*는 아직까지 홍이에게 없는 사람이고, 고입을 앞둔 질풍노도의 사랑하는 동생을 자극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기에 당분간은 비밀에 부칠 생각이다.

*작음이: 남자 친구(30대/키가 작음/곧 시험대에 오를 예정)





이렇게나 테스트에 과하게 반응하는 작음이지만 슬프게도 나와 함께하고 싶다면 홍이의 시험대를 통과해야만 한다. 작음이는 홍이가 좋아하는 마라탕과 스키, 보드 등을 거론하며 환심을 살 계획을 세웠으나 이 정도의 양념으로는 서슬이 퍼런 중딩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정식으로 이 난관을 이겨내야 할 시기가 온다면, 함께 머리를 싸매고 TF팀을 구성할 예정이다.


만큼 나는 홍이를 사랑하고 또 끝까지 지켜주고 싶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모와 이모부, 특히 이모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크게 작용한다. 이모부는 나에게 있을지 모르는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주려고 부단히 애썼고, 늘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이다. 내 휴대폰 속 이모부는 '정신적 지주'로 등록이 되어 있다. 살가운 성격이 아니라 먼저 전화나 연락을 하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웃긴 것 같긴 하다. 이모부와는 참 많은 스토리가 있고, 살면서 딱 한 번 정말 크게 혼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일은 나중을 위해 고이 접어 보관해두겠다.


생각해보면 이모가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아니 누군가 만난다고 했을 때 나도 입만 열면 이모부 욕을 했다. 사투리를 쓰는 것도 싫고, 공주님 일어나셨어요? 하는 오글거리는 멘트도 싫고, 이모보다 나이 많은 것도 싫고, 이모보다 뭐가 잘났는지 모르겠다며 아주 악담에 악담을 쏟아냈던 것 같다. 그리고 2022년 현재, 물론 깊숙이 자리 잡은 꼰대미는 평생 감내해야 할 부분 중 하나지만 이모부는 나에게 참 배울 점이 많은, 멋진 어른이다. 이런 말을 하면 작음이가 엣헴 소리를 내며 턱을 쳐들고 거드름을 피울 모습이 눈에 선해서 말하고 싶지 않지만, 작음이는 이모부-꼰대력-키(미안 근데 사실이야)+센스+지식+잘생김 사람이기에 분명 홍이도 지금의 내가 이모부를 생각하듯 작음이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모두 아시다시피 중학생은 역변의 시기를 거치기에 현재의 홍이 모습이 궁금하시더라도 참아주시길 바라며, 내가 좋아하는 뽀시래기 시절의 홍이 사진 및 나와의 카톡을 공유하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




Part 1. 지나간 과거


Part 2. 마주한 현실

ENTJ를 간파하고 있는 E(I)NTJ



저번 주도 서로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드립만 치다 돌아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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