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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타 Aug 16. 2022

뭐든 자기가 잘해야 재밌는 것

내가 재미없다고 하는 것들은 그냥 못해서 그런 거다

꽤 많은 주변 친구들이 골프를 친다.

나 역시 몇 년 전부터 골프광인 이모, 이모부에게 하루라도 빨리 골프를 시작하는 것이 너의 인생에 얼마나 이로운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오피셜하게는 요지부동인 상태이다.


2~3년 전쯤, 골프 레슨을 받아본 적이 있다. 논현인지 역삼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무튼 교육의 메카 강남에 위치한 곳이었고, 선생님도 뭐 KPGA 프로에 어디 우승 등등 화려한 이력을 가지셨던 분으로 기억한다. 연습장에 들어서서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골프채를 잡자마자 직감했다.

'아, 나는 오늘 오지게 뚝딱거릴 운명이구나.'


그립은 왼손 세 번째 마디에 위치하게 잡고,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왼손 검지 위에 얹으라니? 왜 그렇게 불편하고 비효율적으로 채를 쥔단 말인가? 분명 잡았는데 손과 물체 사이에 빈틈이 생긴 기분도 너무 별로고 일단 스스로 동작이 불편하다 보니 시작부터 전혀 재밌지 않았다. 그냥 빨리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은데 왼손 너클(이라고 부르시던데 나에게는 이번 달이 며칠까지 있는지 알아보는 부위일 뿐임) 두 개가 보여야 한다, 손이 정중앙에 위치하면 안 된다 등 자세 잡는 데에만 천년 가량의 시간을 소비하고 있었다.


어찌어찌 오리처럼 엉거주춤 서서 채를 잡고 휘둘러 보는데 돈두댓의 향연이 이어졌다. 손목을 쓰지 말아라, 팔꿈치를 접지 말아라, 어깨를 들지 말아라. 그 공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이 똑딱이만 지나면 손맛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거라고 하셨지만 어떤 말을 들어도 재미가 없었다.


설상가상 선생님 보는 눈이 굉장히 까다롭고, 그만큼 좋은 분들을 만나왔다고 자부하던 나였는데 이번 코치님은 뭐랄까 나와 골프를 치기보다는 눈웃음치기에 더 바쁘셨다. 집까지 얼마나 걸리냐, 자기도 마지막 수업이라 데려다줄 수 있다, 다음 레슨은 언제 잡을 거냐는데 네 발로 기어가야 할지라도 혼자 가고 싶었고, 다음 레슨 같은 건 이번 생에는 없을 것이라 대답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첫 골프 도전기는 아무도 모르게 종료되었다.


나와 달리 작음이는 운동신경이 좋다. 신체적 한계로 인해 덩크슛을 날리고 코트를 가르며 멋지게 뛰어다니는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서핑이나 보드, 헬스, 요가 등 다양한 종목에 탁월하다.

*작음이: 남자 친구(30대/키가 작음/그러나 타격 0)





대한민국 태생이라면 모름지기 남자는 태권도, 여자는 피아노를 배우는 것이 국룰이기에 작음이 또한 그러한 암묵적 규칙을 착실히 수행하는 어린 시절을 보낸 듯하다.


작음이의 절친한 친구들도 골프에 푹 빠져 함께 필드를 나가곤 하는데 작음이도 아직 골프에 입문하지 않은 상태다. 그리고 우리가 골프를 시작하지 않는 이유는 매우 비슷하다.


- 골프를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음

- 골프가 재미있어 보이지 않음

- 그렇기 때문에 골프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아까워하지 않을 자신이 없음


차이점은 나와 작음이가 골프를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포인트이다. 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내가 못하기 때문에 재미가 없는 것이고, 작음이는 활동적인 운동을 좋아하기에 골프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회식 후 다 함께 간 스크린골프장에서 작음이는 난생처음 골프채를 잡아봤음에도 땅을 파거나 헛스윙을 하지 않고 척척 때려 맞춰 동료들의 놀라움을 자아냈다고 한다. 물론 본인 피셜이니 100% 신뢰할 수는 없지만 과장은 해도 거짓을 말하지는 않는 사람이니 믿어주기로 했다. 일단 시작하면 누구보다 잘할 사람이고, 도무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놈의 사회생활에 필요한 부분이라면 더 늦기 전에 시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기에 조금 더 고민해보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결정할 듯하다.


참고로 지난해 나는 테니스 레슨도 받았던 경험이 있다. 시제가 -ed 것으로 보아 역시나 잘 못해서 진작에 때려치웠음을 알 수 있다. 포핸드, 백핸드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필드를 날아다니고 싶었지만 현실은 공 주우러 다니기 급급한 쭈구리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동방신기의 노래를 듣고 자랐다. 모든 가능성을 끝까지 열어둘 것이다. 왜냐면 골프와 테니스 모두 옷이 너무 예쁘다. 옷 입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나이기에, 아직 일말의 희망은 있다. 그리고 운동신경이 유전이라면 나에게도 가능성이 있다. 아빠는 테니스와 탁구, 축구 등 온갖 운동에 뛰어난 사람이었고 엄마는 종횡무진 무박종주로 이 산 저 산을 옮겨 다니는 산악인이다. 나는 할 수 있다.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다. 골프와 테니스가 너무 재밌다며, 여러분도 어서 빨리 시작하시라며 주책바가지 같은 글을 올릴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은 일단 밀린 유튜브를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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