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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타 Aug 09. 2022

당신의 소울푸드는 무엇인가요

저는 떡볶이, 와플, 곱창, 치킨, 육회, 김치찌개··· 응?

"주말에 와? 대보름이라 나물 했어. 찰밥에 비벼먹자."

"딸, 중복인데 점심 맛있는 거 먹었어? 삼계탕이라도 사 먹지."


나는 엄마의 끼니 안부를 통해 절기를 배운다. 각종 조리사 자격증을 섭렵한 요리 만렙 엄마 밑에서 자란 탓에 음식 맛에 대한 기준도 높고 까탈스럽다. 요리에도 취미가 없는 데다 배달 음식도 선호하지 않는 성향 때문에 혼자 사는 나에 대한 엄마의 걱정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걱정이 될 법도 한 게 엄마의 케어를 벗어난 나의 식습관은 더할 나위 없이 엉망이다. 하루 종일 과자로 식사를 대신할 때도 있고, 밤 10시 이후에 입이 터져서 마카롱을 먹다 잠이든 적도 있다. 물이나 과일이라도 많이 먹으면 좋을 텐데 물은 식사 후에도 잘 마시지 않고, 과일은 내 돈 주고 사 먹어 본 적이 손에 꼽는다.


이처럼 빈틈없는 나를 꼬시기 위해 작음이*는 더욱더 노력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웃긴 일인데 왜 내 프로젝트가 끝난 걸 기념해서 본인이 회를 사고, 아기 예수의 생일을 맞아 나에게 소고기를 산단 말인가ㅋㅋㅋㅋㅋ

*작음이: 남자 친구(30대/키가 작음/현재 1cm라도 더 크기 위해 자세교정기 착용 중)


처음 함께 먹었던 음식은 곱창이었다. 사실 그날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제대로 조우한 작음이가 작아도 너무 작아서 술이 땡긴 듯함) 곱창은 끝내주게 맛있었다. 나중에 연애 초기 썰을 풀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대략적으로만 이야기하자면 그날 집에 가서 본인은 나름 젠틀하게 잘 들어갔냐고 카톡을 보냈는데 내가 다음날까지 답이 없어 "...? 요놈 봐라?"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두 번째로 같이 먹었던 음식은 소고기다. 어떻게든 구실을 만들고 싶었는지 꽃새우살을 아냐며, 아주 맛이 좋아 너에게도 소개를 시켜주고 싶다고 만남을 제안했는데 그날은 공교롭게도 개수작을 부리기 안성맞춤인 크리스마스날이었다. 먹는 것에 진심인 집안에서 자랐기에 이미 온갖 고급 부위를 섭렵한 나였고, 작년 크리스마스의 서울은 영하 16도의 한파가 몰아쳤기에 밖으로 나갈 생각이 1g도 없었다. 눈치는 빨라가지고 집 근처 소고기 맛집을 예약한 그의 정성에 못 이기는 척 나간 나를 반겨준 건 쭈구리처럼 헤헤 웃으며 기다리는 작음이와 이름 모를 꽃다발. "흐앙 이게 뭐야ㅠㅠ? 고마워ㅠㅠ"를 기대했겠지만 "악!" 하며 온 몸으로 오그라듦을 표현한 나에게 아마 작음이도 내심 서운했을 거다. 그래도 꿋꿋하게 꽃말까지 읊어댄 너를 다시 한번 칭찬해.





좋아하는 음식 많이 먹는 건 여전하구나.

꽃새우공격을 받은 날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우리는 연인이 되었고, 커플이라면 자고로 맛집을 순회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우리는 외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 작음이는 나를 위해 준비된 오마카세 요리사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김치찌개가 유독 당겼던 날, 먹고 싶은 것이 있냐는 작음이의 물음에 김치찌개라고 대답했고 예상치 못하게 본인이 해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사실 걱정스러웠다. 작음이네 집 김치가 내 입맛에 맞을까, 생각이 표정으로 드러나는 나인데 맛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 요리가 완성되기 전까지 오만가지 생각으로 복잡했던 머릿속은 국물을 한 모금 맛보자마자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그 뒤로도 작음이는 소고기 팽이버섯 말이, 어묵탕, 골뱅이 소면, 육전, 샤브샤브 등(쓰다 보니 전부 술안주인 건 안 비밀) 육해공을 넘나드는 발군의 요리 실력을 펼치며 나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물론 고마운 마음을 담아 설거지는 내가 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늘 혼자 요리를 준비하는 작음이에게 미안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이게 본인의 기쁨이라고 답을 하는 그가 어서 빨리 생선회를 떠줬으면 좋겠다.(농담)


백문이 불여일견. 각설하고 자료를 첨부하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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