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말하자면 칭찬 '사유'에 대한 집착이다. 칭찬이야 사실 들으면 기분 좋고 안 들어도 무방한 말인데 만약 누군가가 나를 칭찬하면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가 너무나도 궁금하다. 입장을 바꿔서 내가 누군가에게 발언의 이유를 일일이 대답해줘야 한다고 생각해 보면 너무 넌덜머리가 나는데도 되묻는 행위는 나에게 일종의 불수의근이다. 참아지지가 않는다. 궁금하다.
나의 친절한 설명꾼 작음이*는 이걸 알면서도 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지금도 연애 초반이라고 생각하지만 조금 더 극초반이던 시절과 비교하면 작음이에게도 약간의 변화가 있기는 하다.
*작음이: 남자 친구(30대/키가 작음/내가 더 큼)
[연애 초반]
- 작음: 이거 진짜 잘했다~
- 현타: 뭐가? 어떤 부분이?
- 작음: 아, 나라면 이렇게 표현 못 했을 것 같아서! 이런 시각에서 생각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해!
- 현타: 이런 시각이 뭔데 정확히?
- 작음: 음... 보통은 외적으로 비치는 모습만 보니까 이러이러한데, 자기가 한 걸 보면 이러이러한 부분도 반영이 되어 있어서! 신기하고 대단해!
- 현타: 보통이라는 기준이 뭐야? 나도 다를 건 없는 것 같은데
- 작음: (기분 탓인지 약간 살이 빠져 보임)
[현재]
- 작음: 이거 진짜 잘했다. 전공자들도 이거는 이렇게 생각할 텐데, 비전공자인 자기가 이걸 이런 시각으로 해석했다는 건 굉장히 통찰력이 있다고 생각해. 이 부분도 단순히 이렇게 생각한 게 아니라 이러이러하게 봤다는 게 되게 창의적이고 색달라!
- 현타: (만-족) 고마워
분명히 밝히지만 화난 것이 아니고, 싸우자는 것도 아니다. 그냥 궁금하다. 이렇게 써보니 작음이에게 새삼 또 고마워진다. 예쁜 말 제조기인 작음이와 함께하며 배우는 것이 많지만, 위로하고 공감할 시간에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태생적 성향을 고치기란 쉽지 않다. 버릇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살면서 누군가의 칭찬을 받기 위해 특정 행동을 해본 적은 없던 나라서 작음이의 이런 생각의 흐름이 신기하고 귀엽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도 약 2,357,329개 정도의 버릇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지금처럼 쓸데없이 과장된 수치로 오버해서 표현하는 것도 버릇 중 하나다.) 오늘은 이 다양한 버릇 중 아마 절대로 고치지 못할 세 가지를 공유하고 싶다.
첫째, 표정으로 말하기
말 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 있듯이 나는 말 보다 표정이 앞선다. 얼굴이 시끄럽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있다. 예를 들어 '놀라운 표정'이라고 정의되는 표정도 나에게는
- 놀라운데 티 안 내려는 표정
- 놀라운데 이미 알고 있던 거라 숨기려는 표정
- 놀랍지 않은데 대세를 따라 놀라워하는 표정
- 놀랍고 재밌는/불쾌한/안타까운/신기한/이해하기 힘든/할 말을 잃은 표정
등 수십 가지로 나누어진다. 리액션이 풍부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얼굴을 많이 쓰다 보니 표정 주름이 생겨 6개월에 한 번씩 미간과 이마 주름 보톡스를 맞는다.
둘째, (신체적 고통 한정)일단 참기
이건 나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나의 버릇 중 하나다. 원래 무딘 체질이기도 하고, 호들갑 떠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성향이라 나이가 들 수록 점점 더 참는 것에 이골이 난 듯하다. 몇 년 전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헬스장에서 어깨 운동을 하기 위해 덤벨을 정수리 위로 들어 올린 순간, 보고 있던 예능 프로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덤벨을 그대로 바닥에 낙하시켰다. 떨어지면서 발가락을 약간 찧었는지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할 건 해야 했기에 마무리 운동까지 마친 뒤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주말이었기에 샤워 후 그대로 침대에 누워 하루를 보내고 일어난 다음 날 아침, 밥 먹으라는 엄마의 말에 땅에 발을 내딛자마자 갓 태어난 송아지 새끼 마냥 바닥에 주저앉았다. (웃을 상황이 아닌데 다시 생각해도 너무 웃기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대로 인어공주처럼 다리를 끌며 엄마를 호출했고, 차로 이송(?)되어 도착한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은 나는 깔끔하게 두 동강 난 발가락과 조우했다. 한 겨울 약 한 달 반 동안 깁스 위에 수면양말을 덧신고 거렁뱅이처럼 출퇴근을 했던 기억은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셋째, 다짐하기
나의 다짐은 '~해야지'와 '~하지 말아야지'의 두 카테고리로 구분되며, 후자의 경우 달성률이 10% 미만이다. 보통 후자의 경우
- 엄마가 같은 거 또 물어봐도 짜증 내지 말아야지
- 칼 같이 말하지 말아야지
- 하루 종일 넷플릭스 끼고 누워있지 말아야지
- 습관적으로 크로플 시키지 말아야지
등 하지 않았을 경우 나에게 무조건 플러스가 되는 것들인데도 지키기가 어렵다. 오늘의 다짐은 "하지 않아야 하는 거 알면서도 지속하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받지 말아야지(?)"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