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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타 Aug 02. 2022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그 고래는 향고래일까 남방큰돌고래일까

나는 칭찬 집착증을 앓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칭찬 '사유'에 대한 집착이다. 칭찬이야 사실 들으면 기분 좋고 안 들어도 무방한 인데 만약 누군가가 나를 칭찬하면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가 너무나도 궁금하다. 입장을 바꿔서 내가 누군에게 발언의 이유를 일일이 대답해줘야 한다고 생각해 보면 너무 넌덜머리가 나는데도 되묻는 행위는 나에게 일종의 불수의근이다. 참아지지가 않는다. 궁금하다.


나의 친절한 설명꾼 작음이*는 이걸 알면서도 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지금도 연애 초반이라고 생각하지만 조금 더 극초반이던 시절과 비교하면 작음이에게도 약간의 변화가 있기는 하다.

*작음이: 남자 친구(30대/키가 작음/내가 더 큼)


[연애 초반]

- 작음: 이거 진짜 잘했다~

- 현타: 뭐가? 어떤 부분이?

- 작음: 아, 나라면 이렇게 표현 못 했을 것 같아서! 이런 시각에서 생각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해!

- 현타: 이런 시각이 뭔데 정확히?

- 작음: 음... 보통은 외적으로 비치는 모습만 보니까 이러이러한데, 자기가 한 걸 보면 이러이러한 부분도 반영이 되어 있어서! 신기하고 대단해!

- 현타: 보통이라는 기준이 뭐야? 나도 다를 건 없는 것 같은데

- 작음: (기분 탓인지 약간 살이 빠져 보임)


[현재]

- 작음: 이거 진짜 잘했다. 전공자들도 이거는 이렇게 생각할 텐데, 비전공자인 자기가 이걸 이런 시각으로 해석했다는 건 굉장히 통찰력이 있다고 생각해. 이 부분도 단순히 이렇게 생각한 게 아니라 이러이러하게 봤다는 게 되게 창의적이고 색달라!

- 현타: (만-족) 고마워


분명히 밝히지만 화난 것이 아니고, 싸우자는 것도 아니다. 그냥 궁금하다. 이렇게 써보니 작음이에게 새삼 또 고마워진다. 예쁜 말 제조기인 작음이와 함께하며 배우는 것이 많지만, 위로하고 공감할 시간에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태생적 성향을 고치기란 쉽지 않다. 버릇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살면서 누군가의 칭찬을 받기 위해 특정 행동을 해본 적은 없던 나라서 작음이의 이런 생각의 흐름이 신기하고 귀엽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도 약 2,357,329개 정도의 버릇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지금처럼 쓸데없이 과장된 수치로 오버해서 표현하는 것도 버릇 중 하나다.) 오늘은 이 다양한 버릇 중 아마 절대로 고치지 못할 세 가지를 공유하고 싶다.


첫째, 표정으로 말하기

말 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 있듯이 나는 말 보다 표정이 앞선다. 얼굴이 시끄럽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있다. 예를 들어 '놀라운 표정'이라고 정의되는 표정도 나에게는

- 놀라운데 티 안 내려는 표정

- 놀라운데 이미 알고 있던 거라 숨기려는 표정

- 놀랍지 않은데 대세를 따라 놀라워하는 표정

- 놀랍고 재밌는/불쾌한/안타까운/신기한/이해하기 힘든/할 말을 잃은 표정

등 수십 가지로 나누어진다. 리액션이 풍부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얼굴을 많이 쓰다 보니 표정 주름이 생겨 6개월에 한 번씩 미간과 이마 주름 보톡스를 맞는다.

  

둘째, (신체적 고통 한정)일단 참기

이건 나를 아끼는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나의 버릇 중 하나다. 원래 무딘 체질이기도 하고, 호들갑 떠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성향이라 나이가 들 수록 점점 더 참는 것에 이골이 난 듯하다. 몇 년 전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헬스장에서 어깨 운동을 하기 위해 덤벨을 정수리 위로 들어 올린 순간, 보고 있던 예능 프로에 정신이 팔 나머지 덤벨을 그대로 바닥에 낙하시켰다. 떨어지면서 발가락을 약간 찧었는지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할 건 해야 했기에 마무리 운동까지 마친 뒤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주말이었기에 샤워 후 그대로 침대에 누워 하루를 보내고 일어난 다음 날 아침, 밥 먹으라는 엄마의 말에 땅에 발을 내딛자마자 갓 태어난 송아지 새끼 마냥 바닥에 주저앉았다. (웃을 상황이 아닌데 다시 생각해도 너무 웃기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대로 인어공주처럼 다리를 끌며 엄마를 호출했고, 차로 이송(?)되어 도착한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은 나는 깔끔하게 두 동강 난 발가락과 조우했다. 한 겨울 약 한 달 반 동안 깁스 위에 수면양말을 덧신고 거렁뱅이처럼 출퇴근을 했던 기억은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셋째, 다짐하기

나의 다짐은 '~해야지'와 '~하지 말아야지'의 두 카테고리로 구분되며, 후자의 경우 달성률이 10% 미만이다. 보통 후자의 경우

- 엄마가 같은 거 또 물어봐도 짜증 내지 말아야지

- 칼 같이 말하지 말아야지

- 하루 종일 넷플릭스 끼고 누워있지 말아야지

- 습관적으로 크로플 시키지 말아야지

등 하지 않았을 경우 나에게 무조건 플러스가 되는 것들인데도 지키기가 어렵다. 오늘의 다짐은 "하지 않아야 하는 거 알면서도 지속하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받지 말아야지(?)"로 정했다.


칭찬 사유 집착과 온갖 버릇으로 점철된 나의 인생을 응원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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