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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타 Aug 30. 2022

치과: 방탕한 삶의 종착지

선생님 잘못했어요 앞으로는 이렇게 살지 않을 게요

어둠의 자식인 나는 웬만해서는 불을 켜지 않는다. 필요할 경우 간접 조명 정도는 켜지만, 밝고 환한 실내라는 것은 내 사전에 있을 수 없다. n년째 이런 삶을 살다 보니 눈 건강과 자연스레 멀어졌고 눈을 찌푸려 초점을 맞춰야만 글자를 읽고, 사물을 정확히 식별할 수 있는 상태이다. 굳이 세상 모든 것을 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으로 살던 어느 날, 양치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하품이 나와 본의 아니게 눈을 찌푸리게 되었고, 안쪽 어금니에 박힌 먼지 만한 초코칩이 덜 닦인 것을 발견했다. '후후 화장실에서 나가기 전에 발견해서 다행이야~'하며 다시 치약을 쭈욱 짜고 신나게 양치를 한 뒤 늠름한 악어처럼 입을 벌려 구강 상태를 확인했다.



믿을 수 없었다. 검지 손톱으로 긁어 보기도 하고, 눈에 안약을 넣고 두세 번 더 확인했지만 애석하게도 이건 충치였다. 순간 머릿속으로 치과 방문 시뮬레이션이 펼쳐졌다. 발가락 끝까지 들어간 힘과 휴대폰 또는 인형을 꼭 쥐고 있을 가련한 두 손, 그리고 벌린다고 벌렸지만 의사 선생님 성에 차지 않을 입 크기.


암담한 마음으로 작음이*에게 애석한 현실을 공유했고, 작음이는 우리 엄마도 안 하는 말(=내가 너 단 거 먹고 양치 안 하고 할 때부터 그럴 줄 알았다!)을 하며 깐족대다가 나에게 뒷목을 가격 당했다.

*작음이: 남자 친구(30대/키가 작음/쿠팡 중독자)


그러나 작음이는 이미 아주 오래전, 나와 같은 감정을 공유한 경험이 있다. 





역시 예나 지금이나 치과는 무섭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람을 겸허하게 만드는 공간이 분명하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미래의 내가 느낄 고통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을 알고 있기에, 서둘러 근처 치과를 검색했다. 회사와 집의 중간 지점이면서 시설이 깨끗한+비난으로 점철된 악의적 리뷰를 제외한 전반적 평판이 좋은 곳을 찾다가 한 곳을 정했고, 잿빛이 된 얼굴로 발을 질질 끌며 걸음을 옮겼다.


턱을 얹고 촬영하는 엑스레이에 이어 입 속에 기구를 넣어 세부 촬영을 마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를 편견 없이 대하는 나의 삶의 태도를 반영한 듯 위아래로 아주 고르게 썩은 이와 조우하게 되었다. 웃긴 건 예상과 달리 초코칩 어금니는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상황이었으나, 바로 앞 어금니가 자칫 잘못하면 신경치료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개 썩은 이는 모른다더니 간절한 내 기도는 철저히 무시당했고, 요즈음 나는 신경치료를 받고 있다.


첫날에는 마취가 잘 먹히지 않아 무려 다섯 차례나 잇몸을 어택했고, 마지막 마취는 추가 마취인데도 고통이 그대로 느껴져 아래턱부터 정수리까지 저릿저릿했다. 사전에 이 마취는 매우 센 것이라 아플 거라고 말씀하시긴 했지만 이 정도로 아플 줄은 몰랐다. 이는 내 잘못으로 썩은 것이고 그런 나를 낫게 해주고 있는 것이 선생님이라는 것은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알 수 없는 분노와 억울함을 풀 곳이 없어 가려진 초록 천 아래로 의사쌤을 실컷 째려보았다.


이번 주에 왼쪽 아래 어금니 두 개 치료를 마치고 나면 오른쪽 치아 세 개가 남는다. 이제 치아 건강을 위해 모든 군것질 이후 빠르게 양치를 할 것이고, 삶의 행복 중 하나인 얼음 와그작 깨물어 먹기를 자제하기로 결심했다. 추가로 현재 왼쪽 끝에서 두 번째 윗 어금니는 금으로 씌워져 있는데, 안 그래도 큰 입이 웃을 때는 더 커져서 반짝! 하고 존재감을 뽐낸다. 모든 치료가 끝나면 이 홀리데이 최민수 어금니도 치아 색으로 변경할 계획이 있다. 


지지난 주 회식 당시, 어두운 조명 아래서도 위용을 뽐내던 나의 홀리데이 최민수 어금니를 첨부하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


목걸이보다 빛나는 치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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