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린 시절의 나는, 모름지기 친구라 함은 좋아하는 걸 함께 좋아하고 싫어하는 걸 함께 싫어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신이 나서 들고 온 과자를 친구가 맛없게 먹는다거나, 나는 너무 싫은 무언가를 친구는 신나게 즐기고 있는 걸 보면 괜히 흘겨보곤 했다.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을 새로운 경험으로 생각하는 지금의 나와는 아주 상반된 과거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도 좋아하길 바라는 것은 이기적인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걸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것은 나의 기질적 문제다. 예전부터 나는 엄마와 함께 영화를 보거나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떨거나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안타깝게도 엄마는 갑갑한 장소에 갇혀 영화를 볼 시간에 산을 하나 더 타는 게 훨씬 생산적이라고 생각하며, 주문한 커피를 다 마시면 빠르게 자리를 뜨는 것이 익숙하고,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쇼핑을 즐긴다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요즘은 신상 카페, 사진 찍기 좋은 카페들을 검색한 뒤 종종 링크를 보내는 것으로 보아,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금쪽이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건강한 관계인 것 같다.
작음이*역시 나와 함께하고 싶은 것이 많다.
*작음이: 남자 친구(30대/키가 작음/같이 제주도 여행 중)
하고 싶은 것이 많은 것은 좋다. 문제는 '함께'하고 싶은 것이 많다는 것이다. 내가 재미있겠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래? 같이 하자!", 인스타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스팟을 보고도 "여기 좋다! 같이 가자!"라고 하는 사람이 작음이다. 만나서 허구한 날 "우리 뭐해?" 타령을 하는 사람보다야 몇만 배 낫지만 모든 일들을 자웅동체처럼 함께하길 원하는 건가 하는 마음에 머릿속이 복잡했던 적도 있었다. 여러 번의 만남과 헤어짐을 거치며 혼자 생각하고 내리는 결론은 좋지 않다는 것을 배웠기에 이 문제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생각지 못한 말에 화들짝 놀란 작음이는 그 옛날 클론의 초련처럼 손사래를 치며 그런 게 아니라고 했다. 그냥 너와 있는 것이 좋고, 좋은 건 함께할 때 더 좋으니까 그런 거라고 말했다. 자신의 말이 부담스러운 거라면 너에게 충분한 자유시간을 보장해주겠노라고 했다. (그러나 보장하지 않는 중인데 이것도 고소가 가능한지 알아보겠다.)
언제쯤 척척박사가 될 건지 알려줘
앞으로 거절 의사를 밝혔음에도 함께하기를 강요할 경우, 위인전과 동화책을 생각해보라고 할 작정이다. 사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작음이는 나에게 고마운 사람이다. 주말에도 할 일이 많고 바쁜 나를 이렇게 배려해주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간이든 돈이든 여유가 없는 사람은 연애할 자격이 없다."라고 말해온 사람이 나였기에 시간에 쫓기듯 사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배려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에 대해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나 때문에 괜히 고문받듯 같이 카페에 앉아서 시간 허비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다는 말에 자격증을 공부하고 읽을 책을 사들이는 작음이는 참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오늘 저녁은 뭐 먹지?"라는 말에 한참 집중하고 있는데 왜 방해하냐며 뱁새눈을 뜨는데도 "식재료를 미리 구매해야 하나 싶어서요오오오~^o^)/"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지금 나는 제주에 내려와 있다. 왼쪽에는 작음이를, 오른쪽에는 바다를 끼고 앉아 글을 쓰는 이 순간은 이대로 멈췄으면 싶을 만큼 풍족하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전집인가 싶을 만큼 몇 주에 걸쳐 읽고 있는 작음이지만 그래도 귀...여웠는데 그새를 못 참고 딴짓을 한다.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인스타 인기글들을 읽고 있는 거란다. 아이고 머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