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다/없다?
내 주변 친구들도 대부분 첫인상부터 좋았다. 유일한 예외가 이현정이다. 친구들의 이름을 성 떼고 효인이, 지혜, 민정이<-라고 부르는 내가 유일하게 풀네임으로 부르는 친구이기도 하고 처음에는 친해질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아니 안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현정이 역시 속으로 '내가 저런 애랑 왜 친구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흥 웃기지도 않는다.
이현정은 맨날 딴짓하고도 1등을 놓치지 않는 아주 고약한 인간이었다. 수학의 시옷자만 나와도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나에게 모든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현정이는 신기하고 괘씸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나는 이해력이 떨어졌고 현정이는 설명에 젬병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현정이가 어떻게 설명해도 내가 이해하지 못했을 거다. 나는 현정이에게 너는 왜 너만 잘 풀고 남한테는 설명을 똥으로 하냐고 소리를 질렀고, 현정이는 나에게 너야말로 왜 사람 말을 똥으로 듣냐고 그따위로 할 거면 집어치우라고 했다. 여고에서 벌어진 피 튀기는 똥 싸움의 현장이었다.
모두의 예상대로 현정이는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에 갔고 나는 그냥 그럭저럭 좋은 학교에 갔다. 그다지 접점도 없고 굳이 만날 일도 없던 우리였는데 신기하게 대학생활 중에도 뜨문뜨문 연락을 이어갔고, 입사 후에도 인연이 지속됐다. 그리고 우리는 속마음을 숨기며 살다가 어우 도저히 못 참겠다 싶으면 서로에게 연락해서 속 시원하게 욕을 퍼붓는 서로의 대나무 숲이 되었다. 그녀는 나의 소중한 예외 케이스가 된 것이다.
한번 아니다 싶으면 속으로 1차 손절 후 지켜보며 각을 재는 나와 다르게 작음이는 여러 번의 기회를 준다. 그리고 그 기회의 순간 중 한 번이라도 변화의 시그널이 보인다면 천천히 기다리는 편이다. 이것이 작음이와 나의 수많은 차이점 중 하나다. 처음과 시작을 소중하게 여기는 만큼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면 기꺼이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작음이*의 첫인상은 '엥?'이었다.
내 브런치를 꾸준히 읽는 분이시라면 "얘 너 그렇게 니 남자 친구 작네 어쩌네 하면서 어떻게 만나니?" 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키 빼고는 모든 게 다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사귀기 전 작음이에게 "아우 이거 이렇게 쪼꼬매서 어디다 써?"라고 말한 적이 있다. 키에 대해 자격지심이 있다거나 열등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너 그 키 타령 좀 그만해라고 하기에도 충분했을 텐데 그때의 작음이는 달랐다. "웅 나는 구심점이 낮아서 웬만해선 안 쓰러져! 나한테 기대도 돼!"라고 말했다. 사귀자는 말을 듣기도 전이었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조만간 이 사람이 나에게 고백을 한다면 기꺼이 받아줘야지.
ps. 아 물론 자잘 자잘한 빡침 포인트는 분명 존재한다. 예를 들면 자꾸 (내 눈에는 쓸모없고 그에게는 세상 유용한) 무언가를 사들인다거나 졸려/바빠/피곤해 죽겠는데 자꾸 말을 시킨다거나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