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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타 Oct 11. 2022

첫인상 불변의 법칙 VS 모든 일엔 예외가 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다/없다?

사회 초년생 때까지만 해도 나는 좋게 말해 시크하고 쉽게 말해 싸가지 없어 보이는 내 첫인상이 좋았다. 가타부타 함부로 하는 사람도, 시답잖은 농담을 건네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비교적 삶의 난이도가 쉬웠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좋은 첫인상을 가진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타인에 대한 첫인상이 그 사람을 대하는 행동 방식의 기준이 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처음 만난 사람이 내가 꺼려하는 습관을 가졌거나 몇 마디 나누어 보니 나와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실내외 할 것 없이 나는 어느샌가 색안경을 끼고 있었다.


첫인상과 다르게 좋은 사람인 경우도 있지만 슬프게도 나의 경우 높은 확률로 '그럴 것 같더라니'였다. 그래서 나 스스로 누군가에게 '그럴 줄 알았다'가 되지 않기 위해 첫 만남부터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다. 


내 주변 친구들도 대부분 첫인상부터 좋았다. 유일한 예외가 이현정이다. 친구들의 이름을 성 떼고 효인이, 지혜, 민정이<-라고 부르는 내가 유일하게 풀네임으로 부르는 친구이기도 하고 처음에는 친해질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아니 안 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현정이 역시 속으로 '내가 저런 애랑 왜 친구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흥 웃기지도 않는다.


이현정은 맨날 딴짓하고도 1등을 놓치지 않는 아주 고약한 인간이었다. 수학의 시옷자만 나와도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나에게 모든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현정이는 신기하고 괘씸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나는 이해력이 떨어졌고 현정이는 설명에 젬병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현정이가 어떻게 설명해도 내가 이해하지 못했을 거다. 나는 현정이에게 너는 왜 너만 잘 풀고 남한테는 설명을 똥으로 하냐고 소리를 질렀고, 현정이는 나에게 너야말로 왜 사람 말을 똥으로 듣냐고 그따위로 할 거면 집어치우라고 했다. 여고에서 벌어진 피 튀기는 똥 싸움의 현장이었다. 


모두의 예상대로 현정이는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에 갔고 나는 그냥 그럭저럭 좋은 학교에 갔다. 그다지 접점도 없고 굳이 만날 일도 없던 우리였는데 신기하게 대학생활 중에도 뜨문뜨문 연락을 이어갔고, 입사 후에도 인연이 지속됐다. 그리고 우리는 속마음을 숨기며 살다가 어우 도저히 못 참겠다 싶으면 서로에게 연락해서 속 시원하게 욕을 퍼붓는 서로의 대나무 숲이 되었다. 그녀는 나의 소중한 예외 케이스가 된 것이다.



내 남자 친구는 약간 말리는 시누이 타입이다


한번 아니다 싶으면 속으로 1차 손절 후 지켜보며 각을 재는 나와 다르게 작음이는 여러 번의 기회를 준다. 그리고 그 기회의 순간 중 한 번이라도 변화의 시그널이 보인다면 천천히 기다리는 편이다. 이것이 작음이와 나의 수많은 차이점 중 하나다. 처음과 시작을 소중하게 여기는 만큼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면 기꺼이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작음이*의 첫인상은 '엥?'이었다. 

*작음이: 남자 친구(30대/키가 작음/엊그제 제주도 갔다 와놓고 현재 다낭 여행 중)


얼핏 나보다 작은, 잘 쳐줘도 나 만한 사람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남자를 보는 나의 1순위 조건은 키(였)다. 그래서 작은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고, 만날 생각도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자본주의 미소를 지으며 먼 산을 응시했을 텐데 그날은 달랐다. 그가 귀여웠다. '조잘조잘 떠드는 것도, 끼를 부리는 것도 내 역할이고 내 특기인데 왜 저 남자가 하는 거지? 그리고 나는 이걸 왜 보고 있는 거지? 응?'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작음이는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만난 인류였다. 좋고 나쁨이 아닌 '놀라움'이라는 첫인상을 가진 사람.


내 브런치를 꾸준히 읽는 분이시라면 "얘 너 그렇게 니 남자 친구 작네 어쩌네 하면서 어떻게 만나니?" 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키 빼고는 모든 게 다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사귀기 전 작음이에게 "아우 이거 이렇게 쪼꼬매서 어디다 써?"라고 말한 적이 있다. 키에 대해 자격지심이 있다거나 열등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너 그 키 타령 좀 그만해라고 하기에도 충분했을 텐데 그때의 작음이는 달랐다. "웅 나는 구심점이 낮아서 웬만해선 안 쓰러져! 나한테 기대도 돼!"라고 말했다. 사귀자는 말을 듣기도 전이었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조만간 이 사람이 나에게 고백을 한다면 기꺼이 받아줘야지.


ps. 아 물론 자잘 자잘한 빡침 포인트는 분명 존재한다. 예를 들면 자꾸 (내 눈에는 쓸모없고 그에게는 세상 유용한) 무언가를 사들인다거나 졸려/바빠/피곤해 죽겠는데 자꾸 말을 시킨다거나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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