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타인의 결혼식에 잘 가지 않는다. 이번 달은 주말 내내 결혼식이 있다는 주변 지인들과 달리 내 주말은 오롯이 나의 것이다. 우선 친구가 많지 않다. 다른 사람과 금방 친해지고 말도 잘하는 편이지만 누군가 그 분과 '친구'냐고 물었을 때는 잘못 삶은 조개처럼 입을 다문다. 내가 생각하는 친구의 범주는 굉장히 한정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이다.
'주 n회 이상 연락하는가?',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가?' 등과 같은 일반적인 기준이 아니다. '웃음과 빡침 포인트가 일치하는가?'처럼 가벼워 보이지만 실은 절대 가볍지 않은 기준도 있고, '서로의 삶을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는가?'처럼 골방 철학자 같은 기준도 있다.
아량이 간장 종지만 한 탓에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만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인간관계는 맺지 않고 있다. 내 종지의 특이점이 있다면 그 옛날 여우와 두루미가 먹었던 그릇처럼 좁고 깊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손을 잡기로 결정하면 내 손을 위로 올린다. 나는 통증에 무딘 사람이라 괜찮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치거나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
두 번째 사유는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 들지 않아서다. 이러한 거부 반응은 대부분 갑작스레 청구서 아니 청첩장을 받았을 때 발생한다. 전달자와도 라포가 없으니 전달자의 배필이 되실 분은 더더욱 낯설고, 정직한 후보병에 걸려있기 때문에 축하한다는 빈말도 쉽지 않다. 그래도 사회생활 n년차로서 눈만 웃으며 "오 축하드르으 흥븍흐스으"라는 말을 전달하는 수준까지는 성장했다. 그 말 한마디 하는 게 뭐가 어렵다고 그러냐는 사람들도 있는데, 말은 원래 어렵게 해야 하는 거다.
이렇듯 프로 불참러로서 입지를 굳혀가던 내가,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고 아무튼 이래 저래 좋았던 지지난주 토요일 축사를 하게 되었다. 어려울 건 없었다. 남들 앞에 서는 게 떨리지도 않고, 예상치 못한 이슈가 생기더라도 뭐 인생이 언제는 내 마음대로 흘러갔냐 하는 스타일이기에 가뿐하게 집을 나섰다. 웨딩 사진은 언니의 실물을 1g도 담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신부대기실에 앉아 있는 오늘의 신부는 너무 아름다웠다. 신랑도 신부도 그리고 나도 각자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고, 언니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며 식장을 나섰다.
기승전멀미
높은 곳 벽 쪽에서 이상한 것을 타고 내려오는 행위는 당시 웨딩의 셀링 포인트였던 것 같다. 나 역시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모를 보며 놀라워 한 경험이 있다. 오늘도 역시나 글로 현장감을 표현해 준 작음이*에게 엄지 척을 날림과 동시에 눈물이 나려고 했는데 억지로 참은 건지, 다 울어서 나도 울어야 할 것 같았는데 눈물이 나지 않아 괜히 눈을 연거푸 꽉 감아본 것인지 묻고 싶다.
*작음이: 남자 친구(30대/키가 작음/다낭 여행 내내 비만 맞고 옴)
앞으로 결혼을 할 친구들을 생각해 보면 코코, 양념이... 가 다인 것에 지금 글을 쓰다가 화들짝 놀랐다. 물론 이현정도 미혼이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너 그 성질머리 고치기 전까지 결혼은 어림없다고 말하는 사이고, 실제로 딱히 급할 것도 없어서 제외했다.
기혼이더라도 아직 아이가 있는 친구들이 거의 없기도 하고, 아이와 별개로 우리의 대화 수준은 여전히 웃긴 짤 보며 낄낄대기 정도라 그다지 큰 변화는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약속잡기가 조금은 어려워졌다. 이제 그녀들은 나의 친구이자 한 가정의 중심축이 되었기에 슬쩍 빼내오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괜찮다. 해외 장거리 연인 컨셉으로 가뭄에 콩 나듯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20대의 우리는 고민은 있지만 딱히 대책은 없이 살았고, 30대의 우리는 찾아오는 고민을 남일 보듯 대하는 스킬이 늘었다. 40대의 우리는 조금 더 똑똑하게 삶을 대하며 살아갈 것이고, 50대의 우리는 서로의 추억을 사고팔며 함께할 것이다. 별일 없이 살다가 칠순에는 힙하게 풀파티를 할 예정인데 상상만 해도 즐겁다. 이제 나는 예측 불가능한 내 인생이 재밌고, 다가올 아사리판에서 마음껏 춤출 각오가 되어 있다.